삼성암센터에 대형병원들 바짝 긴장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암 전문병동인 삼성암센터 개원에 맞춰 국립암센터를 비롯한 대형병원들이 집안단속에 나섰다. 원내 암 전문의들이 삼성암센터로 빠져나가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삼성암센터의 미지근한 태도도 대형병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650여 병상을 운영하기 위해선 대규모 인력충원이 불가피한데도 아직까지 뚜렷한 채용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삼성암센터가 1월 개원을 앞두고 대규모 인력모집에 나선 것이다. 뺏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의 팽팽한 신경전 속으로 들어가 본다.
대형병원들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생일(1월 9일)에 맞춰 문을 연 삼성암센터 채용방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적 수준이자 아시아 최고를 목표로 2004년 8월 26일 공사를 시작한 삼성암센터는 초대 센터장으로 국내 폐암수술 대가인 심영목 교수를 임명, 본격 인사에 나섰다.
이와 관련, 모 대학병원 고위관계자는 “아마도 대다수 대학병원들이 삼성암센터의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라며 “특히 스타급 암 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들은 더욱 그러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그는 또 “이름 있는 의료진이 이동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더 큰 고민은 주니어스텝들이 혹시나 움직이지 않을까하는 것”이라며 “병원의 미래를 이끌 주니어스텝들이 이동한다면 절망적일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대형병원 고위관계자 또한 “국내에 이름 있는 암 전문의는 정해져 있는데 652병상(지상 11층, 지하 8층) 규모의 대규모 암센터가 들어서니 대규모 인력이동은 당연한 수순 아니겠느냐. 언제, 누구를 데려가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이런 일부 대형병원들의 고민을 눈치라도 챈 듯 삼성암센터는 “대규모 인력이동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몇몇 암센터 의료진만 보강한 채 최근까지 이렇다 할 인력충원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때 삼성암센터는 “지금으로선 삼성암센터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에 의료진이 다소 부족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면서 “하지만 개원을 며칠 앞두고 대규모로 인원을 보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대규모 인력이탈을 걱정했던 일부 대형병원들은 삼성 쪽 공식입장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삼성암센터가 개원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기존의 입장을 180도로 바꿔 ‘실력이 검증된’ 다른 병원의 스타급 암 전문의들을 물밑으로 찾아내 대규모 채용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은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애써 키운 핵심인력을 삼성이 다 뺐어간다’는 불만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삼성암센터 쪽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스카우트가 성사된 것은 극히 일부이고, 그 밖의 채용은 모두 ‘공개모집’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마치 삼성이 ‘인재를 몰래 빼앗고 있다’는 식의 오해를 받고 있는 까닭이다.
자기네들이 찾아온 것
이 같은 소문이 급격히 확산된 것은 지난 2일 삼성암센터가 진료를 본격화하면서부터다. 병원계에선 삼성암센터가 652병상으로 아시아 최
대 규모인데 반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신빙성 있게 나돈다.
세계 최고 암전문병원인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와 메이요클리닉을 벤치마킹한 삼성암센터는 수술실 20개, 외래진료실 51개, 외래치료실 67개를 갖춘 아시아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삼성암센터가 발표한 하루 평균 예상 외래환자 수가 약 2250명으로 하루 평균 수술건수(50여 건) 등의 목표율을 감안할 때 ‘핵심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외부 주장은 설득력을 더해준다.
한 대형병원 의사는 “삼성에서 일선교수들에게까지 스카우트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삼성이 인력충원에 애를 먹고 있다는 말이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같은 병원의 또 다른 의사는 “삼성에서 여러 명의 교수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고 들었다. 우리 병원에도 2명의 교수에게 제안했지만 그대로 있기로 결정해 술렁이던 분위기가 잠잠해졌다”고 전했다.
실제 성사여부를 떠나 ‘삼성 스카우트설’로 병원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이 같은 불만이 폭발, 삼성과 다른 병원 교수진들 사이에서 팽팽한 감정싸움도 벌어졌다는 후문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삼성이 우리 인력을 빼 갈 움직임이 포착됐고, 이에 지난 연말 삼성과 우리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삼성이 다른 때보다 공격적으로 스카우트에 나서고 있어 다른 병원들 불만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른바 ‘핵심인력’에 대한 스카우트 외에도 전문의나 전문간호사 공개채용으로 최근 많은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
1년간 10여명 스카우트
한편 삼성 쪽에서 가장 입맛을 다시고 있는 곳은 단연 국립암센터 전문의였다. 국가기관이란 큰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국립암센터는 삼성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의료기관 전문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 초까지 국립암센터에서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전문의는 10여명에 이른다. 이 기간 국내 위암수술 대가로 손꼽혔던 국립암센터 배재문 전 기획조정실장이 삼성암센터로 옮겼다.
한 대형병원 고위관계자는 “처음엔 국가중앙 암전문기관이란 자부심과 연구비 집중지원으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지원금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데다 자립경영까지 주문하니 많은 전문의들이 이직을 결심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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