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당선에 현대가(家) 울상 짓는 내막
MB당선에 현대가(家) 울상 짓는 내막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8-01-17 10:25
  • 승인 2008.01.17 10:25
  • 호수 716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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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현대家, 앙금 풀어지나?

경제부흥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최초의 CEO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이런 가운데 한 때 같은 지붕아래서 동고동락했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MB)과 현대가(家)의 인연이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국가 최고통수권자에 오른 MB가 범 현대가와의 ‘옛 정’을 생각해 ‘어떻게든 뒤를 돌봐주지 않겠느냐’는 게 주된 관심사다. 현대건설 재직 때 보좌했던 정주영 명예회장은 타계했지만 정 명예회장 자녀들은 여전히 재계를 주름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년간 쌓여왔던 그들의 애증관계를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얽히고설킨 그들의 옛 인연의 필름을 되돌려봤다.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 때 이 당선자 대신 MK 구속

‘샐러리맨 신화’에서 ‘국가 최고 통수권자’ 자리까지 오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MB가 어떤 수를 써서든 현대가를 보살펴 줄 것’이란 얘기가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뭣 모르고’ 하는 말이다. 1965년 현대그룹 모태였던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 당선자가 정 명예회장의 전폭적 신뢰를 입어 승승장구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들 관계는 끝이다. 이 당선자와 현대가 2세들의 관계는 오히려 ‘원수’에 가깝게 바껴 버렸다. 이명박 당선자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 ‘월급쟁이 사장과 회장아들’ 편을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당선자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할 때인 1980년대 초의 일이다. 런던지사를 맡고 있던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필씨가 아버지 부름을 받고 해외담당전무로 본사에 돌아왔다. 그때 사원들은 사장인 이 당선자와 함께 총수아들인 몽필씨에게도 결재서류를 올렸다.

여기에 마음이 상한 이 당선인은 즉각 몽필씨를 불러 “현대건설 전무인 이상 사장인 내 명령을 따라 주시오. 명령을 따르기 싫다면 정 회장께 말씀드려서 다른 회사로 옮기시오”라고 훈계했다고 한다.


현대가 2세와의 애증관계

이 당선인과 현대가 2세들 간의 신경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간의 악연은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개발에서 비롯됐다.

1970년대 후반 현대건설은 대규모 아파트단지 개발사업을 구상 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집 없는 서민용이란 인상이 강했다.

이에 현대건설은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을 세워 국민들에게 새 주거문화공간이란 인식을 심어주고자 했다. 그때 한국도시개발(주) 사장은 정몽구 현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아파트 붐이 일면서 엄청난 웃돈이 붙기 시작, 1978년 7월 6일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 사건은 무주택 사원용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정·관계, 검찰, 언론계 인사들에게 분양해 말썽을 빚었다.


특혜분양 관련자 구속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7년 6월 그 때 한국도시개발은 1512가구를 지어 952가구를 사원용으로 특별분양키로 했다. 그러나 952가구 중 291가구만 사원들에게 분양되고 나머지는 차관급 1명, 전직장관 5명, 국회의원 6명 등 고위공직자 150명과 회사간부 친·인척들이 나눠 가졌다.

사건은 서울지검에 송치됐고 즉시 수사가 이뤄졌다. 이 와중에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 당선인은 무혐의로 풀려났다.

반면 한국도시개발 정몽구 사장과 김상진 상무는 감옥에 들어갔다. 또 곽후섭 서울시 부시장, 주택은행 임원 등 특혜분양 알선자 5명도 구속됐다.

결국 정 회장은 대법원에서 뇌물수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징역 6개월에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심 재판 때 무혐의처분을 받아 사실상 구금된 날짜는 75일간이었다.

하지만 이게 영 못마땅했던 정 회장은 감옥에서 나온 뒤 노골적으로 이 당선인을 견제했고, 두 사람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는 지난해 한나라당 총선 때 이 당선자 저격수로 나선 김유찬씨가 낸 검증자료에도 잘 나와 있다.

김씨는 자료를 통해 “이 당선자가 정주영 회장 생존 때 행사에 참석했다가 2세들에 의해 쫓겨난 적 있다”고 폭로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정 명예회장 부인인 변중석 여사가 타계했을 때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무렵 현대가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문상온 이 당선자를 본채만 채 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그 때 이 당선자는 정몽준 의원과 얘기를 나눴을 뿐 정몽구 회장과는 문상을 마치고 떠날 때 잠깐 인사만 나눌 수 있었다.

이 당선인과 정 명예회장이 완전히 등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왕 회장’(정주영 명예회장)이 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부터다. 정계진출을 선언한 정 명예회장은 현대 신화를 일궜을 때처럼 이 당선자가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것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왕 회장’과 한 배를 타지 않고 민주자유당 행을 택했다.

심지어 이 당선자는 ‘왕 회장’이 창당한 국민당 핵심공약이던 ‘반값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30년 악연 풀리나

이 당선자와 현대가 간의 ‘악연’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 선거가 있기 약 2주전부터다. 그것도 현대가에서 직접 내민 화해의 손짓이었다.

정몽준 의원이 이 후보에 대한 공식 지지를 천명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

현대그룹의 공식적 대표는 현정은 회장이다. 하지만 범 현대가를 대표하는 인물은 정몽준 의원이란 점을 감안할 때 정 의원과 이 당선인의 화해는 현대가와의 ‘화해’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재계일각에선 “MB가 차기대통령이 될 것 같으니까 현대가 이제서야 해묵은 갈등을 풀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 현대家, 대 이은 검찰과의 악연
노태우 정권에 전면전 선포 뒤 극한 대립

검찰과 현대가의 ‘30년 악연’이 눈길을 끈다. 정주영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의 돈독한 친분 덕에 현대는 1960~70년대 고속성장을 꾀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통치 말기인 1978년 여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이 터지면서 정부와 현대 관계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후 출범한 5공화국에서 현대는 전두환 정권과 ‘밀월’을 즐겼다.

현대가 청와대에 매년 천문학적 규모의 ‘통치자금’을 준 사실은 ‘5공비리’를 둘러싼 국회 청문회나 검찰수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현대와 정권 간의 이런 밀착은 노태우 대통령 취임 후 금이 가기 시작한다.

1991년 검찰은 현대상선 법인세 불성실신고혐의 수사에 나서 271억원의 탈세를 적발했다. 이 사건으로 그 때 정몽헌 현대상선 사장이 검찰에 구속되는 ‘치욕’을 겪었다.

정주영 회장이 6공 말기 국민당을 창당, 노태우 정권에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현대와 검찰의 대립도 극에 이른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민자당의 김영삼 후보와 맞붙은 정주영 회장은 큰 표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이때부터 검찰을 동원한 정권의 ‘보복’이 가속화됐다.

서울지검 특수부는 대선 직전 ‘부산지역 기관장 지역감정 조장발언 사건’을 폭로한 정몽준 당시 국민당 의원을 불법도청방조 및 범인도피혐의로 그해 말 불구속기소했다.

‘패장’인 정주영 회장에 대한 처우는 한층 가혹했다.

서울지검 공안부는 1993년 1월 그를 출국금지한 뒤 소환조사에 나서 선거법 위반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출석한 ‘왕 회장’이 방송카메라에 이마를 부딪혀 피를 흘리던 장면은 아직도 국민들 기억 속에 생생하다.

김영삼 정권이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를 선언하고 ‘5·18 특별법’을 만들면서 현대는 다른 대기업들과 함께 또다시 검찰수사대상이 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 들어 현대는 대북사업을 주도하며 정권과 ‘코드’를 맞춰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무리한 ‘퍼주기’는 화를 불렀다. 대북사업과 관련된 현대의 각종 비리의혹이 도마 위에 오른 것.

이에 대한 책임으로 현대가 후계자인 정몽헌 현대그룹 이사회 회장은 투신자살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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