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이구택 포스코 회장

지난 한 해 국내 경제동향을 여느 ‘족집게 도사’보다 잘 맞춘 그룹총수가 있다. 이구택(62) 포스코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하락세를 면치 못한 채 곤두박질치던 포스코 주가가 그의 말 한마디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가 하면, 인수합병(M&A)의사를 밝힌 지 두 달도 안 돼 해외철강사를 ‘먹어치우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입만 떼었다하면 100% 적중률을 자랑한 셈이다. 날고 긴다는 점쟁이도 이 회장 앞에선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야할 정도다. 말만하면 현실화되는 이 회장의 언변을 쫓아가봤다.
포스코 주가가 이구택 포스코 회장 입을 따라가고 있다. 이 회장이 밝힌 포스코 주가 전망치가 그대로 들어맞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4월 이후 이 회장은 세 번 정도 희망목표가를 밝혔다. 그리고 모두 정확하게 맞혔다. 이 정도면 웬만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보다 나은 분석력이다.
이 회장이 최초로 목표가를 언급한 것은 2006년 4월 중순.
그는 그 때 사내학습에서 “주가 25만원을 기준으로 포스코 시장가치를 20% 올려 시가총액이 260억 달러가 되면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30만원대가 목표주가임을 밝혔다.
그 무렵 포스코는 미탈의 적대적 인수합병(M&A)설에 휩싸이며 시장의 주목을 받던 때였다.
주가가 올라 적대적 매수 세력이 인수하기 힘들 정도로 시가총액을 올려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었다.
따라서 그 무렵도 포스코의 모든 관심은 주가를 어떻게 하면 끌어올린 것인가에 쏠렸다.
‘애널리스트’ 이구택
이 회장의 이런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8개월 뒤인 2006년 12월 14일 포스코주가는 사상 처음 30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물론 적대적 인수합병설이 주가상승 이유로 작용했다.
이 회장의 주가부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16일 ‘2007 포스코 아시아포럼’에서 “최근 주가가 많이 올라 (적대적 M&A) 가능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포스코)주가는 적어도 50만원은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날 포스코주가는 종가기준 41만5000원이었다.
두 달이 지난 2007년 7월 15일 포스코주가는 51만원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이 회장의 예상치를 따라갔다.
이 회장은 한 달 뒤인 8월 20일 현대가의 변중석 여사 빈소에서 기자들에게 한 단계 높아진 60만원의 희망목표가를 내놨다. 그 때 포스코주가는 47만9000원.
실제 포스코주가는 이 회장 발언 후 20거래일만인 9월 14일 61만2000원을 기록, 사상 처음 종가기준으로 60만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10월 7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철강협회 총회에서 신임회장으로 선임된 이 회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 회장은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 투자은행 대표를 만났다. 적대적 M&A에서 자유롭기 위해선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를 넘거나 우호지분이 40%는 돼야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어 “최근 시가총액이 커져 마음을 어느 정도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해 시가총액 1000억 달러가 새로운 목표임을 시사했다.
전날 환율로 추산할 경우 10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은 약 105만원의 주가를 말한다. 이에 따라 이번에도 포스코주가가 이 회장의 전망치를 따라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먹힐 바엔 먹겠다”
이 회장의 족집게 예언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철강협회 이사회에서 이 회장은 “포스코도 M&A를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언제든 좋은 대상(회사)이 나타나면 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지난해 12월 26일 포스코는 1563만 달러를 들여 말레이시아 유일의 전기도금강판 생산업체인 MEGS사 주식지분 60%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이 회장이 M&A에 대해 언급한 지 두 달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이에 재계에선 ‘이구택 회장 입만 보면 포스코의 2개월 뒤 일을 알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되고 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