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특허 죽이려 SK·LG·KT 담합”
“중소기업 특허 죽이려 SK·LG·KT 담합”
  • 현유섭 기자
  • 입력 2008-01-07 15:32
  • 승인 2008.01.07 15:32
  • 호수 39
  • 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독보도 SK·LG·KT ‘불편한 진실’
중소기업 특허권 무효를 위해 이동통신가 소송에 합의한 정황이 담긴 내부문건.

경제인들은 같은 공식을 놓고도 서로 다른 대답을 내놓기 일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 중소기업인의 말을 빌리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내놓는 공식은 3개의 한자성어를 합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대외적으로 내놓는 구호이다. 반면 속마음은 아전인수(我田引水)와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다. 반면 중소기업이 들어야하는 대기업의 대답은 ‘매번 착한 척 할 수는 없다’다. 대기업의 공식은 양측 간 특허권 분쟁에서 더욱 여실히 나타난다.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특허를 침해한 사례는 지난 2004년 64건에서 2006년 말 현재 106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본지가 단독 입수한 이동통신사의 특허권 분쟁 관련 대기업의 내부문서는 중소기업의 특허권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경쟁업체와 공동 작업을 펼친 흔적을 담고 있다. 대기업들이 국내 시장 확장을 위해 중소기업의 특허권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대기업과의 상생을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돈이 될 듯싶은 기술을 갖고 대기업을 찾아가면 이미 소유권이 변해버린다.”

지난해까지 애드링시스템 경영을 맡은 박원섭씨는 대기업과의 특허권 분쟁에 대한 개인적인 감회를 털어놨다.

박씨는 “미련이 남지 않았다” 며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을 참지 못한 눈물을 비쳤다.

지난해 7월 SK텔레콤과의 특허권 분쟁을 놓고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하면서 회사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11월에는 회사 법인등기까지 말소해야 했다.


SK와 법정투쟁 회사는 끝내 부도

박씨와 SK텔레콤과의 특허권 분쟁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년간의 긴 법정 싸움은 박씨가 자신이 운영 중인 애드링시스템의 특허를 SK텔레콤이 침해했다고 경고장을 발송하면서부터다. 특허권 분쟁 대상은 통화 연결음 서비스인 ‘컬러링’이었다.

박씨는 애드링의 특허가 ‘통신 단말기 및 이를 이용한 광고방법’으로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고, 호주와 싱가포르 등에 등록이 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동통신사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어 신규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박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에 따라 박씨는 2002년 11월 SK텔레콤을 상대로 특허법 위반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SK텔레콤의 통화 연결음 서비스가 고객들의 인기를 끌면서 경쟁사였던 LG텔레콤도 같은 서비스를 실시했다. 박씨는 LG텔레콤에도 특허권 침해중지 요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박씨는 2달 동안 이동 통신사의 잇따른 특허무효심판 청구를 받아야 했다. 가장 먼저 특허무효소송을 시작한 곳은 LG텔레콤.

이어 같은 내용의 청구가 보름 간격으로 이어졌다.

소송 과정에서 박씨와 이동통신사들은 거대 기업을 상대로 대박을 노리는 한탕주의와 소규모 특허를 무단 사용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에 대해 박씨는 이동통신사 법무팀이 중소기업의 특허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담합해 소송을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본보가 입수한 내부문서에서도 나타났다. 내부문서는 2003년 당시 유선전화 통화 연결음 서비스 ‘링고’를 준비하는 작업을 거론하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지난 2003년 통화연결음 서비스 ‘링고’의 특허권 관련 분쟁은 콘텐츠 업체(MCP) 책임 하에 대응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 초 이통 3사의 법무 담당자 모임에서 링백톤 관련 특허의 원천 무효를 위해 단체 소송을 제기키로 합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통 사업자 대응 계획에는 ‘이통 3사가 합동의 원천 특허 무효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문구도 확인됐다.

내부문서대로라면 박씨를 상대로 잇따른 특허 무효 소송이 이동통신사 3사의 협의에 따라 이뤄진 셈이다.


이통사 법무팀 조직적 답합 증거

이동통신사 3사의 특허무효소송 담합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정위은 지난 2003년 6월 이동통신사 3사를 상대로 통화발신 특허권 분쟁과 관련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

공정위는 피조사인들의 특허무효심판행위만으로 법률에 명시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한 부당한 공동행위로 볼 수 없어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이동통신사 3사의 법무팀이 사전 협의를 통해 소송을 준비한 정황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공정위의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며 “공통된 사항에 대한 공동 소송은 특허법에도 허용된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 “박 씨가 특허침해 경고장과 언론을 통해 거짓된 정보를 흘려 회사 이미지와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줬기 때문에 특허 무효소송을 하게 된 것이며, 애드링의 특허권 주장을 특허로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관계자는 특허분쟁 공동 소송 내부 문건에 대해 “5년 전 일이기 때문에 당시 담당자들도 자세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씨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거대 통신사가 담합해 소송을 준비한 것은 개인의 특허를 죽이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이 아니냐” 며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표방하고 있는 점을 감안 도덕적인 문제는 있다”고 반문했다. 또 “이통3사들의 크로스라이센싱(특허 공동사용)하는 부분을 감안하면 거대기업들이 사익을 위해 중소기업 죽이기에 조직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들의 IT부문 특허권 분쟁 담합 관행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2006년 SBS 뉴스추적은 ‘거리로 나선 사장님’이라는 보도를 통해 국내 모 기업의 특허분쟁 세미나 동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대기업 특허 담당이 중소기업과의 특허권 분쟁 대응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세미나에 참석한 대기업 특허 담당은 “특허 분쟁을 하는 기업은 특허를 못 쓰게 만들어 버려야 한다”며 “업체들끼리 공동 대응을 해서라도 특허를 죽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IT중소기업 웰게이트와 분쟁도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표적인 분쟁 사례다. 분쟁의 대상은 부가서비스 히트상품인 ‘캐치콜서비스’사업이다.

웰게이트는 지난 2006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 직접 제안해 개발한 캐치콜서비스 계약을 1년 만에 일방파기하고 특허 무효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기오 웰게이트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원 계약대로 캐치콜서비스가 이행됐더라면 매출액의 30%인 연 72억원을 계산하면 4년 동안의 누적금액 약 250억원을 받았을 것”이라며 “대기업 상대로 특허·민사·형사 등 여러 건의 송사에 4년간 휘둘리며 잘나가던 회사가 만신창이가 됐다 ”고 심정을 털어놨다.

박 대표는 독점권을 주장하며 경쟁사에 대해 특허권 침해소송을 제기할 것을 웰게이트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사업아이디어와 기술력은 있었지만 특허등록이 2003년 2월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지난 2005년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심 판결에서 박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독점권을 부여했다고 보기 어렵고, 계약해지 후에도 계속 캐치콜서비스를 제공했으므로, 웰게이트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다시 뒤집혔다.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은 손해배상 요구액 39억 원 중 만료를 1개월 앞서 계약을 해지한 데 따른 미지급금 1억8700만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2005년 3월 특허심판원은 웰게이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지만, 지난 2006년 7월 특허법원의 2심 판결은 승소했다.

대법원 소송은 현재 계류 중이다. 현재 양측의 법정공방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을 남겨놓고 있다.


갑작스레 뒤집히는 법원판결

중소기업인들은 대기업과의 특허권 분쟁이 비즈니스 모델 특허 부문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새로운 개념을 담은 신규성과 기존 기술이나 개념보다 발전된 기술과 개념, 상업적 이용가치 등이 충족돼야 한다.

이처럼 특허권 해석의 애매성에 따라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파워게임을 해야 하는 실정인 셈이다.

박 씨는 “특허권 분쟁 과정에서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고객을 잡기 위해 쌍방대리 문제를 목격했다”며 중소기업의 한계를 토로했다.



#약육강식 얼룩진 특허 현주소

대기업, 중소기업 특허 침해 66% 급증

대기업은 국내 특허 출원과 등록건수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기술 비즈니스 모델(BM) 특허 부분은 취약하다.

BM은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대기업 내부의 BM은 대부분 단기 실적용 아이디어 수준이다.

반면 중소기업은 BM을 개발해 시장화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투자와 관련 기술 개발 등 사운을 걸어야 한다.

때문에 중소기업의 BM특허는 사업성 요건을 충분히 갖춘 사례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BM특허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의 상생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서 개발해낸 특허 등을 침해하는 사례가 줄지 않고 있다.

최근 특허청이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조정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이 중소기업 특허관련 침해 건수는 지난 2004년 64건에 불과했지만 2006년 들어 106건으로 66%가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들어서도 상반기 100여건이 넘는 분쟁 심판 소송이 제기됐지만 중소기업 승소율은 절반에 그쳤다.

또 연도별 특허권 심판에서 중소기업의 승소건수는 2004년 30건 중 15건, 2005년 40건 중 17건, 2006년 45건 중 21건, 2007년 8월말 현재 32건 중 10건 등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영세업체가 특허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사실상 장기화되기 때문에 승소 여부를 떠나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소송에 앞선 중재 제도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유섭 기자 HYSON@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