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아시아·중동 달러의 힘
세계가 놀란 아시아·중동 달러의 힘
  • 정우택 기자
  • 입력 2008-01-02 11:11
  • 승인 2008.01.02 11:11
  • 호수 38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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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빠진 미국경제 ‘구원 투수’

아시아ㆍ중동의 달러가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으로 곤경에 빠진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을 잇달아 지원, 달러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다 자본주의 원조 격인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이 하나씩 아시아ㆍ중동의 손에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이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미국 씨티그룹의 어려움을 덜어주더니 이번엔 중국 국영투자공사(CIC)가 미국의 모건스탠리에 긴급자금을 지원했다. 유럽연합(EU)의 간판은행인 UBS는 싱가포르와 중동에 신세를 졌다.


아시아와 중동의 몇몇 국가들은 넘치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해 골치를 썩고 있을 정도다. 달러가 너무 많아 외환관리가 안 되는 나라도 있다.


모건스탠리 중국서 50억 유치

국내 물가에도 악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넘치는 달러를 외국기업의 지분인수나 경영권 인수에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최근 중국투자공사로부터 50억 달러를 유치했다. 대신 지분 9.9%를 내줬다. 서브프라임에 대한 투자로 인한 자산상각을 보충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CIC는 현재 가격에 20%의 프리미엄이 붙은 값에 모건스탠리 지분을 인수, 2대 주주로 떠올랐다.

CIC는 연간 9%의 투자수익을 보장 받았다. 투자수익이 높은 대신 이사회 의결권은 갖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CIC는 2007년 5월엔 미국의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에 30억 달러를 투입했다.

2007년 한 해 동안만 8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 주요 금융기관의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CIC는 중국 정부가 출자한 투자기관으로 자본금이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공룡기업이다.

미국에선 중국이 모건스탠리와 블랙스톤에 80억 달러나 투자한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서브프라임 파문을 이용한 투자를 통해 세계금융의 중심지인 월가를 점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서브프라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앞으로도 더 많은 수혈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엔 UAE의 아부다비투자청이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에 75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대주주가 됐다.

아부다비투자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씨티그룹은 서브프라임에 대한 지나친 투자로 엄청난 손실이 생겨 최고경영자 (CEO)가 교체되는 고통을 겪었다.

씨티그룹은 세계에 거미줄 같은 영업망을 가진 세계 최대 금융그룹으로 중동의 UAE에서 긴급자금을 조달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씨티그룹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UAE에서 75억 달러를 수혈 받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EU의 간판은행인 UBS는 130억 스위스 프랑 (한화 10조원)의 전환사채를 발행,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인 싱가포르투자청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중동의 투자가에게 팔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투자청에 110억 스위스 프랑, 중동이 투자가에게 20억 프랑 어치를 팔았다.


UBS는 1998년 이후 첫 손실

업계는 싱가포르투자청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돌릴 경우 UBS주식 9% 정도를 갖게 돼 최대주주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말하자면 주인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UBS는 1998년 이후 처음 연간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씨티그룹, 모건스탠리, UBS는 모두 미국의 서브프라임상품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았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세계 최대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줄줄이 고통 받는 것을 보면 서브프라임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파문이 일시 진정됐을 뿐 아직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질 경우 자금압박으로 위기를 맞는 기업들이 급격히 늘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서브프라임 파문을 계기로 투자패턴이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브프라임은 투자은행과 투자기관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수익’을 얻기 위해 모험적으로 투자했다는 점을 떠올리고 있다. 해당 금융기관 CEO들이 줄줄이 물러나고 있는 것도 책임 때문이다.

서브프라임은 2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볼 때는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대형 은행과 투자기관 발목을 잡았다.

반대로 달러를 많이 갖고 있는 중동이나 아시아 국가 입장에서 보면 미국 대형 금융회사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인한 직접 피해는 없지만 바짝 신경 써야 한다.

서브프라임은 미국에서 터진 일이지만 그 파문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금융시장을 언제 강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한폭탄’인 서브프라임은 콧대 높은 미국 금융기관에 달러 위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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