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섬기는 조직으로 거듭나라”

풍수지리에서는 산세, 지세, 수세를 따져 집터를 고르게 돼있다. 그러나 이상하게 집터가 곧 묘터가 되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288조원의 자산, 6만명이 넘는 임직원이 소속돼있는 초 메머드급 호화조직인 농협이다. 최근 이곳을 진두지휘하는 수장이 바뀌었다. 흉가에 가까운 집터를 최고의 명당으로 바꾸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농협의 새로운 수장이 된 최원병(61)회장. 그는 과거 3명의 민선회장이 모두 차가운 철장행을 당한 고사(枯死) 직전의 농협을 산세가 아름답고, 지세는 기름지고, 수세는 맑게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최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동지상고 후배다. 포항 ‘최고 명당’에서 잇따라 배출된 2번째 거목인 셈이다. 최 회장은 농협의 그동안 전례를 과감히 끊고 안전하게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버리지 않을 것인지, 농협이라는 험난한 집터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내가 중앙회 이사였다면 농협중앙회 회장이 독단적인 경영을 못하게 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중앙회 운영기준이 있었느냐. 권력 있고 힘 있는 지점 농협에는 수백억원이나 지원하는 게 말이 되는가. 지방에 쓰러져 가는 영세 조합수가 너무 많다.”
신용과 경제 분리, 개혁 등 과제 산적
사활을 건 마지막 소견 발표에서 1197명의 조합장들은 최원병 후보의 개혁에 대한 발표를 숨죽여 들었다.
규정시간을 초과해 마이크는 꺼졌지만 최 후보는 더 큰 목소리로 개혁을 외쳤고 몇몇 청중석에서는 ‘옳소’가 연발됐다.
결국 개혁에 대한 열망, 윤리경영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최원병 후보를 회장으로 이끌었다. 최 회장은 유효투표수 1183표 가운데 51.9%인 614표를 얻어 신임회장으로 등극했다.
최 회장은 당선소감에서 “어려운 시기에 부족한 사람에게 중책을 맡겨준데 대해 감사한다. 조합장을 중심으로 농협개혁위원회를 조직하겠다. 많은 개혁을 준비해 국민의 사랑과 농민의 존경을 받는 농협이 되도록 하겠다.”며 한결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경쟁으로 치달았던 민선4기 농협회장 선거는 윤리경영에 대한 의식을 했던 탓에 각 후보들은 자신이 가장 적임자임을 강조하며 방만한 조직, 각종 이권 개입, 독선적인 경영, 줄 서기 관행 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네거티브전 양상도 나돌았다. 회장이 된 최 회장이 중심이 됐다. ‘조합장 출신이 중앙회를 잘 운영할 수 있겠나’라는 것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같은 고교후배를 의식해 ‘최원병이 회장되면 권력유착이 우려 된다’는 설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최 회장도 “12번의 선거를 치렀지만 이번처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 회장과 이 대통령 당선자의 관계가 새로운 회장으로 뽑히게 된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다. 새로운 정권과의 원활한 소통은 농협으로서는 악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소중한 호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2017년 신용과 경제를 분리해야하는 농협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개혁차원에서 일정과 방향을 대폭수정할 가능성도 있어 신임회장과 정부와의 유대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 됐기 때문이다.
신임 최 회장은 앞선 3명의 민선회장이 모두 비리혐의로 구속 되어 안팎의 견제와 감시가 강화될 수밖에 없고,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불가피해 이를 반발하는 조직원들을 추슬러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있다.
정치권 뺨치는 네거티브 농협선거
또 농민을 외면하고 돈 장사만 급급하다는 비난여론에 따라 신용보다는 경제 사업을 강화해야하지만 시중은행과의 생존 경쟁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하는 부담감도 있다.
지난 1988년 회장을 선출직으로 변경된 이후 94년 한호선 초대 회장, 99년 원철희 전 회장, 2007년 정대근 회장까지 역사상 유래 없이 3연속 회장의 구속이라는 진기록을 남긴 농협. 수장의 침몰로 그때마다 위기설에 휘말린 치욕의 농협호는 민선 4기에 접어들고 있다.
4년이라는 임기마저 힘겨운 농협회장이라는 영욕. 최 회장은 정경유착이라는 유혹의 사슬을 끊고, 비리라는 오명을 피해 영예로운 퇴임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최 회장의 선출로 희망이라는 근거를 확인받을 차례가 됐다.
# 최 원 병 신임 농협회장 약력
▲ 생년월일(연령) : 1946.7.1.(만 61세)
▲ 출 신 지 : 경북 경주
▲ 학 력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
위덕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위덕대학교 경영대학원 재학 중
▲ 경 력
안강농협 조합장(1986~현재)
경상북도의회 4,5,6,7대 의원(4선)
경상북도의회 부의장(6대), 의장(7대)
(현)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 회장
석탑산업훈장 수훈(2003)
대통령표창 수상(2000)
백은영 기자 about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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