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유진그룹에 인수된 하이마트 비밀문건

하이마트 초고속 성장 이면에 숨겨진 검은 커넥션의 전모가 드러났다. 하이마트는 자본금 136억원에 250개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2조1600억원, 당기순이익은 870억원이다. 그동안 국내 가전유통시장에서 독보적 존재로 부상한 하이마트는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며 유통시장의 공룡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유진그룹에 1조9749억원에 인수돼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배경을 들춰보면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거대한 커넥션이 있었다. <일요경제>가 취재원으로부터 단독입수한 비밀문건을 확인한 결과 ‘독점·내부·
불공정거래’ 등을 통한 대우전자-하이마트간의 결손금 지원, 대리점 관리 위탁 이면계약 등 여파로 대우전자 1000여 대리점은 부도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하이마트를 양성할 목적으로 기존에 존재했던 대우전자 대리점 주인들을 감쪽같이 속인 것이다. 나하나 살자고 대리점 주인들의 몰락을 지켜봤던 하이마트 성장의 비밀에 감춰진 속내를 파헤쳐 봤다.
2001년까지 대우전자 대리점을 11년간 운영한 이모씨는 하이마트와 대우전자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평범한 가장이던 그가 11년간 사업을 하고 남은 건 빚밖에 없었다. 그리고 1500장 분량의 소송 자료들은 그의 전유물이 돼버렸다.
남은 건 1500장 분량 소송자료
1984년 대우전자에 입사해 평범한 직원으로 근무하던 이씨에게 솔깃한 제의가 들어왔다. ‘대우전자 대리점을 운영해 봐라’는 임원의 제의였다. 이씨는 1990년 수억원을 투자해 대리점을 개설했다. 당시 대우전자는 잘나가던 시기라 창업 초기 수익이 괜찮은 편이었고 전국 대우전자 대리점도 1000여개로 확산됐다.
그러나 대우전자가 1998년 국내영업 부문 한국신용유통(하이마트)과 서비스 부문 대우전자(대우일렉트로닉스)로 분리하면서 이씨를 비롯한 1000여개 대리점들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대리점은 2000년대 들어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대우그룹의 몰락이 아닌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간 독점·내부·불공정거래가 주원인이라고 이씨는 근거자료와 함께 의혹을 제기했다. 하이마트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양사가 합의하에 일방적으로 대리점을 죽였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 <일요경제>가 입수한 2001년 대우전자가 하이마트를 상대로 제기한 물품대금 청구 소송 재판기록과 물품공급계약서 등 증거자료 등을 보면 실태가 드러났다. 대우전자와 하이마트의 관계와 하이마트가 대형 할인마트로 성장하는데 있어 대우전자의 역할 등을 비롯해 결과적으로 대리점이 부도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방증할 요소들이 조목조목 들어있다. 그동안 세간에서는 하이마트가 대우전자의 위장 계열사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간에는 단순한 물품 공·수급업체를 뛰어넘는 ‘밀월’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하이마트의 전신인 한신유통이 대우전자의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데다 직원들의 구분도 사실상 무의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두 회사는 ‘계열사 관계였다’라는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최경아 홍보팀장은 “과거의 일이라 그때 직원이 남아있지 않고, 우리는 법정에서도 무혐의 처리를 받은 것으로 안다”며 “지금으로써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회사 간 욕심이 부른 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자료와 두 회사의 핵심관계자들의 증언에서 부당내부거래의 단서가 나타났다.
소송 당시 증인으로 출석했던 대우전자 B모 전 경영기획이사는 “대우전자 내부에서는 하이마트를 국내사업부와 해외사업부서 정도로 생각했다”며 “사실상 하이마트는 대우전자의 자회사이므로 대우전자가 방침을 정하는 자리에 하이마트는 참석만 할 뿐”이라고 증언했다.
하이마트에 특혜 가격차별 “연쇄부도”
하이마트 H모 전 세무관제팀장도 “계속 결손이 발생하자 대우전자는 모회사로서 자회사가 부실해 지는 것을 볼 수가 없어 결손금 지원을 해왔다”면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사이는 주종 관계”라고 위장 계열사임을 시인했다.
뿐만 아니라 재판 증거자료로 제출된 90년대 초 작성된 하이마트(한신유통)의 결재 서류들에는 대우전자 대표이사나 국내영업본부장이 최종 결재까지 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라면 남의 회사에 가서 결제를 받은 셈이다. 또 대우전자는 하이마트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할 때도 매입분 478억원을 지원하고 유가증권 매입분 161억원도 지원했다.
지난 98년 대우전자는 하이마트에게 국내 영업부문을 넘겨줬고 2002년 양 회사가 소송으로 감정의 골이 극에 달하면서 조용히 채권을 청산함에 따라 ‘밀월’ 관계는 끝난 셈이다.
그렇다면 대우전자는 하이마트를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지원을 했을까. 대우전자 대리점에 직격탄을 날렸던 것은 하이마트와 대우전자 대리점 간 가격차별 지원과 하이마트에 물품공급 독점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리점주 모르게
하이마트로 대리점 관리위탁
지난 97년 말까지 대우전자는 하이마트에 물품을 공급하면서 이체원가율(마진율) 85%를 적용해, 공장도 가격의 15%를 할인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대우전자는 92년부터 97년까지 결손금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하이마트에 연 평균 100억원을 별도로 지원해줬다.
그러나 이후 98년에 들어 하이마트에 대한 물품대금 할인율은 더욱 눈에 띄게 커졌다. 98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대우전자는 하이마트에 이체원가율 71.5%를 적용해 공장도 가격의 28.5%를 할인해주는 조건으로 물품공급 계약을 맺었다.
최근 입수한 대우전자 물품공급계약서에는 ‘국내영업 판매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판매를 위한 모든 영업행위를 위임 한
다’는 내용과 ‘대리점에 대해서도 하이마트에 위탁관리 한다’는 계약도 체결했다.
결국 대우전자를 간판으로 내건 대리점들은 하이마트를 통해 물품을 공급받는 동시에 양판점인 하이마트의 관리·감독 하에 들어간 것이다.
결국 하이마트는 대우전자대리점들에게 공장도가격(100%)으로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대리점을 통해 28.5%에 달하는 ‘추가 이익’을 챙긴 셈이다. 100%공급 받은 대리점들이 10% 마진을 붙였다 가정해도 사실상 가격경쟁력을 상실해 영업부진으로 이어진 부도로 줄 폐업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게다가 인기상품이나 신상품은 구하기도 힘들었다는 게 대리점주들의 증언이
다. 이와 관련해 하이마트 홍보실 양동철 과장은 “현재 사측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98년 당시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간의 가격 지원과 대리점 관리 위탁계약 등이 일선 대리점주들은 모르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씨는 “싼 가격으로 하이마트에 공급하면서도 대리점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아 대리점이 가격 경쟁에서 원천적으로 상대가 안됐다”고 토로했다. 또 “하이마트가 28.5%나 할인을 받으면서도 대리점에는 공장도 가격으로 물건을 팔았다면 대리점은 이중적으로 가격차별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우전자, 80년대 말부터 양판체제 도입 수순
하이마트를 육성하기 위한 대우전자의 지원은 공급가격 부분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우전자는 국내 영업부문을 하이마트에 이관하면서 대우전자의 영업 인력 등 인적 조직을 승계하는 한편 하이마트 채권 4765억원을 동결하고 그 변제기한을 유예해주기도 했다.
대우전자는 80년대 말부터 국내에 양판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수순을 밟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전자는 80년대 일본 가전 양판사인 죠우신(JOSHIN·上新)전기와 기술 역무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대우전자는 89년부터 96년까지 직원들을 팀별로 구성해 일본에 장·단기 교육을 보내거나 죠우신전기 관계자들이 직접 대우전자를 찾아 출장 지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락해도 답변없는 담당 변호사
대우전자 이러한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 대우전자와 하이마트 측은 분명한 입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러 당시 관계자들로부터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대우전자의 하이마트에 대한 독점적인 판매권 부여를 비롯해 차별 지원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이 드러나면서, 이씨의 주변부터 시작해 눈물을 머금고 간판을 내렸던 전 대우전자 대리점주들도 집단소송 움직임도 꿈틀거린다. 이씨는 2003년 1월 경 변호사를 선임해 대우일렉으로부터 지급받지 못 한 판매 장려금을 돌려받기 위해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조정기일에 참석해 달라는 변호사 연락을 받고 재판에 참석했다. 당시 재판장은 적당한 금액에 합의를 권고하며, 한 달 이내로 합의가 되지 않을 시 선고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이씨는 담당변호사의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이씨는 변호사사무실을 찾아간 후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심 재판이 끝난 후 소송기록을 돌려받고 변호사가 임의로 소송금액을 5000만원에서 5억원까지 조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소송금액도 다섯 번씩이나 변경했다. 사건을 담당 했던 변호사는 본인명의로 접수한 2차 소장내용에 대해 처음 보는 서류라며 잡아 땠고, 당시 사건을 담당 한 사무장이 모든 일을 다 처리했다는 핑계로 책임회피에만 급급합니다. 사무장은 소송이 진행되던 중 돌연 잠적해 현재까지도 연락두절 상태입니다. 그는 금액을 높이면 판사의 판단을 흐리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런 행동을 한 걸보면 사무장과 커넥션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대한변호사협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씨의 소송은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일지도 모른다.
#‘전자유통 공룡’이끄는 선종구 사장은
다점포전략 공격경영, 교체설도 나돌아
선종구 하이마트 사장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제일고와 연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1983년 대우전자에 입사해 인사, 총무, 구매 등 여러 업무를 맡았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신용유통 상무이사와 전무이사를 거친 뒤 1999년엔 하이마트로 옮겨 판매본부장을 거쳐 2000년 사장에 올랐다. 정통 대우 영업맨 출신이다.
선 사장은 전국 250여개 점포에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거대 기업의 대표답게 그동안 유통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하이마트가 전자유통의 리더위치를 고수할 수 있도록 다점포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달 유진그룹에 인수되며 교체설도 나돌았으나 그동안 성과와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하이마트 미스터리 성장사
하이마트, 김우중 회장이 설립했다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이마트는 지난 1993년 한국신용유통에서 다이너스카드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하이마트가 탄생했다”면서 “김우중 회장이 사비를 털어 하이마트 설립을 진두지휘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대우의 국내영업부를 이전시켜 한국신용유통이란 위장계열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바로 하이마트의 전신. 당시 자금은 김우중 회장이 15%를, 이수화학·신한기공·신성통상 등 관련회사가 85%를 댔다.
이는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출신인 정주호씨가 지난 2002년 선종구 하이마트 사장을 상대로 제기한 당시 소송에서 “하이마트 지분 15%(7만8000주)는 김우중 회장이 그룹 임직원을 통해 출자한 차명주식”이라면서 “이 주식을 선 사장이 임의로 처분했다”고 밝힌 것과 같다.
그는 “하이마트 설립 당시 주요 출자사로 계획됐던 계열사 중 한 곳이 기업공개(상장) 문제로 당초 배정된 15억 원의 자본금 중 7억 원은 출자하기가 곤란하다고 했다. 김 회장께 보고를 했더니 그렇다면 7억 원을 줄 테니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면서 “그 돈으로 직원들 이름을 빌려 차명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훈 기자 f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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