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양치기 소년'은 누구?
진짜 '양치기 소년'은 누구?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7-12-26 15:26
  • 승인 2007.12.26 15:26
  • 호수 713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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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 '돌아온 중국집 요리사'에 긴장한 내막

올해 초 심각한 자금난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휴대전화기 회사 팬택계열(이하 팬택)이 원기를 회복하기도 전에 또 다른 ‘복병’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팬택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20대 중반의 배용호(26)씨. 중국집 요리사 보조였던 그와 팬택과의 ‘악연’은 2006년 4월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해 팬택이 야심차게 내놓은 스카이 ‘IM8500’모델을 배씨가 사면서부터다. 자기 월급의 1/4을 ‘뚝’ 떼어 50만원 상당의 팬택휴대폰을 산 그는 값비싼 제품에 흠집이라도 날까 애지중지 써왔다. 그러나 그의 핸드폰은 산지 일주일도 안 돼 제구실을 못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배씨와 팬택 간에 ‘한판 전쟁’이 벌어졌다. 두 쪽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1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다. 그들의 이유 있는 ‘전쟁’ 속으로 들어가봤다.

2006년 4월 중순 중국집 요리사 보조였던 배용호씨는 없는 살림에 팬택에서 만든 스카이 ‘IM8500’을 큰 맘 먹고 샀다. 그러나 얼마 안 돼 소리가 ‘뚝뚝’ 끊어져 들리는 현상이 거듭되기 시작했다. 생활비를 쪼개 어렵게 장만한 휴대폰인 만큼 배씨는 당장이라도 대리점으로 달려가 “새 것으로 바꿔 달라”고 항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건상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평일엔 퀵
서비스 배달 일을, 주말엔 중국집 요리사 보조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일시적으로 오전시간이 빈 그는 한걸음에 서울 용산 아이파크 8층의 팬택 A/S센터를 찾았다. 상담원에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한 그는 직업특성상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완벽히 점검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상담원은 이어폰을 새것으로 바꿔줄 뿐 왜 고장 났는지에 대해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직원의 불성실한 태도에 화가 난 배씨는 “휴대폰에 이상이 생겨 다시 A/S센터에 올 일이 생기면 그땐 본사 사장한테 찾아가 얼굴에다 휴대전화를 던져버리겠다”고 말한 뒤 박차고 나왔다.


‘중국집 배달원 사건’ 전말

A/S센터를 방문한 직후 배씨의 휴대폰 결함은 더욱 심각해졌다. 원래 갖고 있던 문제점은 그대로였다. 게다가 카메라 후레쉬가 늘 켜져 꺼지질 않았다. 또 액정이 검게 변하면서 먹통이 되기 일쑤였다. 배터리를 뺏다 다시 끼면 한동안 정상적으로 작
동되긴 했지만 그것도 일시적 현상이었다. 자연히 A/S센터 방문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또 다시 그런 불쾌한 일을 겪고 싶지 않았던 배씨는 인터넷 고객상담실을 통해 이 런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팬택 쪽에서 방문 수거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그럴 수 없다. A/S센터 직원이 친절히 대했음에도 무작정 욕설을 퍼붓지 않았느냐. 우리의 A/S는 잘못된 게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 때 상황에 대해 배씨는 “그런 식의 답변이 돌아올 때 마다 난 욕으로 사이버 상담코너를 도배했다. 회사 최고경영자를 휴대폰으로 때려죽이겠다고 한 것도 이때부터”라며 “내 분에 못 이겨 부탁과 협박, 욕을 죽어라 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엔 그들에게 답장조차 받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두 쪽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그 뒤로 두 달 간 이어졌다. 배씨는 두 다리 쭉 뻗고 자지도 못했다. 심지어 다니던 직장에서도 쫓겨나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휴대폰 하나 잘못 사서 잃은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고객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고위간부가 멀쩡한 휴대전화를 갖고 와 정중히 사과한 뒤 불량품을 거둬가지 않으면 사장을 해코지하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그 때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팬택은 묵묵부답이었다.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무작정 팬택 앞 벤치에서 오너인 박병엽 부회장을 기다렸다.

그렇게 박 부회장 얼굴과 자동차 번호를 확인한 배씨는 그날 이후 오토바이를 빌려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거짓말쟁이는 누구일까

배씨와 팬택 입장이 일치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 뒤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선 양쪽 입장이 다르다. 한쪽은 “팬택이 조폭을 대동, 무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흉기를 가진 파렴치범이 박 부회장을 헤치려 했다”고 맞받았다.

우선 배씨 주장에 따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박 부회장 뒤를 밟기 시작한지 3일 째 되던 날 밤 갑자기 부회장 차가 막다른 골목길에 멈춰섰다. 눈 깜짝할 사이 건장한 사내 예닐곱이 배씨를 에워쌌다.

이후 차에서 내린 박 부회장은 “왜 나를 뒤쫓느냐. 무슨 볼일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배씨는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일렀고, 그의 말을 귀담아 듣던 박 부회장은 “휴대폰을 새 제품으로 바꿔주는 것은 물론 금전보상까지 해주겠다”고 말했다. 또 “지금은 급한 약속 때문에 가봐야 하니 나중에 다시 만나 이야기 하자”며 후일을 기약하기도 했다는 게 배씨 주장이다.

“곧 회사로 부회장님을 찾아뵙겠다”고 답한 배씨는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며칠 뒤 그는 약속대로 박 부회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여의도동 팬택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곳엔 뜻밖에도 너댓명의 건장한 청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 지하주차장으로 끌려간 배씨. 그는 그곳에서 “어린애가 겁 대가리 없이 너무 나댄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좋은 말할 때 이쯤에서 그만두라. 한번만 더 분수도 모르고 까불었다가는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쉽게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 배씨는 다음날 또 다시 팬택사옥을 찾았다. 이날 그는 CS팀 과장을 만났다. 과장은 “우리가 잘못 했으니 이쯤에서 끝내고 조용히 가라”고 말하며 핸드폰 두 대를 그에게 건넸다.

그러나 배씨는 “박 부회장이 제시한 정신적 피해보상은 물론 깡패를 대동, 무력을 행사한 점도 분명 사과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배씨는 “팬택에서 현금 300만원을 통장으로 입금했다. 하지만 난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박 부회장 사과를 반드시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통장을 들고 다시 팬택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팬택측은 “박 부회장 사과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배씨 요구를 무산했다. 또 다시 격분한 배씨는 비서실장 휴대폰으로 박 부회장 사과를 요구하는 협박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쯤 지나자 그에게 발신자번호 표시제한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를 더 주면 이 짓을 그만둘 것이냐”는 것이었다.

배씨는 “난 단지 박 부회장 사과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팬택은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내가 집 한 채 값을 달라고 하면 줄 거냐고 따지듯 묻자 상대편이 그럴 줄 알았다며 그럼 비서실장 휴대폰으로 ‘회장님 협박범 아무개입니다. 집 한 채 값 주시면 잘 먹고 잘 살게요. 그리고 더 이상 회장님한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오히려 평생 피해 다닐 게요’란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 당연히 이걸 미끼로 딴 짓을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걸로 당할 것 같으냐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한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배씨는 이 증거물을 계기로 사법 처리돼 실형 1년을 구형받았다.


“말도 안 되는 억측일 뿐”

그러나 팬택 쪽은 배씨와 전혀 다른 주장을 폈다. 뭣보다 가뜩이나 기업회생(워크아웃) 절차를 거치며 겨우 회생기미를 보이는 마당에 배씨의 등장이 달갑지만은 않다는 반응이다.

팬택의 고위관계자는 “좋은 일도 아니고 우리도 고객불만을 곧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힘썼다. 회사에서 수용할 수 없는 부분까지 요구를 하다 보니 일 년 넘게 일이 지속된 것”이라며 “CS단에서 그분과 대화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응답을 하면 음해공작을 펼치네 어쩌네 하고, 답을 안 하면 사람취급을 안 한다고 하니 어떻게 대응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배씨와 박 부회장이 대면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박 부회장과 대면한 사실이 있는 건 맞지만 조폭이 개입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며 그 때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배씨가 박 부회장 차량을 뒤쫓기 시작한지 삼일 째 되던 날 밤이었다. 박 부회장은 시내 한 호텔에 저녁 약속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량으로 돌아갈 채비를 할 때였다. 그때 차량 운전수가 박 부회장에게 “언제부터 누군가 부회장님 뒤를 미행하는 것 같다. 정문으로 나가지 마시고 후문으로 가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누군가 내 뒤를 밟았다면 나에게 무슨 볼 일이 있어 그런 것일 텐데 피할 이유가 없다”며 정문으로 나갔다. 그 때 배씨와 박 부회장이 대면했다는 게 팬택 쪽 주장이다.

또 배씨가 말하는 사내 예닐곱은 조폭이 아니라 의전차량을 모는 운전수였다는 것.

배씨가 지하주차장으로 끌려가 협박당했다는 점 또한 설명이 다르다.

그 관계자는 “그가 주장한 건장한 너 댓의 사내 중 한명은 CS팀 담당과장이었고 나머지 두 세 명은 빌딩보안요원이었다. 또 지하주차장이라고 한 것도 주위가 꽉 막힌 깜깜한 곳이 아니라 반 지하로 사옥입구에서 보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배씨의 형 집행과 관련해 “우리도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려 탄원서까지 내려했지만 그 분이 법정모독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정작 실형을 산 본인보다는 못하겠지만 우리도 언론기사를 막기 위해 힘썼으면 썼지 ‘이런 사람이 있다. 기사 좀 내달라’고 부탁하진 않았다. 누워서 침 뱉기 아니겠느냐.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하나라도 맞는 게 있어야 갑론을박 따질 게 아니냐. 우리도 1년 반을 겪다보니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재계 사람들은 워크아웃을 통해 기업회생의 길을 걷고 있는 팬택이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배용호씨 인터뷰

‘스카이’ 하나로 인생이 바뀐 남자

-1년 동안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처음 거기(구치소) 들어갔을 땐 솔직히 ‘다 죽여 버려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곳 아저씨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도 많이 읽으면서 생각을 고쳤다. 나도 잘못한 게 있으니 지금껏 있어왔던 일들을 정리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장 힘든 점이 뭔가.
▲형 집행이 되고 나서 사건 사고 기사가 많이 나간 것으로 안다. 또 출소한 뒤에도 두세 군데서 ‘1인 시위’하는 것을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 곳 직접 인터뷰한 일이 없다. 난 한 번도 ‘내 말을 믿어 달라’고 한 적 없다. 다만 내 말을 좀 들어달라는 것이다.
구속되는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다만 또 다시 매도 당할까봐 그게 가장 무섭다. 솔직히 난장을 피우긴 했지만 기사에 보도된 것처럼 돈을 목적으로 박 부회장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다. 오직 사과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1인 시위를 지금도 하고 있나.
▲하지 않고 있다. 석 달 전 출소한 뒤 사흘 간 물 한모금 안 먹고 팬택사옥 앞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내 말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팬택에서 하는 말은 무조건 맞고 내가 한 말은 ‘제 또 뭐라고 하냐’ ‘왜 또 헛소리냐’ 식으로 넘기고 만다. 그게 힘들었다.

-팬택에 요구하는 게 뭔가.
▲있는 사실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아니, 내가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에 따른 반박이라도 해줬으면 한다. 솔직히 내가 잘못한 부분이 많은 건 인정한다. 그러나 강도나 백주 대낮 박병엽 부회장을 해치려한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또라이’나 ‘미친 놈’ 정도는 참을 수 있으나 대기업 회장을 협박해 먹고살려는 파렴치범이란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금전적 보상을 요구한 건 사실 아닌가.
▲내가 먼저 돈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박 부회장이 ‘정신적 피해보상을 해준다’고 하기 전까지 팬택한테 돈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박 부회장이 ‘사과를 못한다’는 말에 300만원이 든 통장을 들고 팬택을 찾아갔다. 돈을 돌려줄 테니 사과하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뭘 하고 있나.
▲팬택 휴대폰을 사기 전까지만 해도 난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만 했다. 평일엔 새벽까지 퀵서비스 일을 했고, 주말엔 중국집에서 주방보조일과 배달을 했다.
중국집의 경우 일하는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2년간 ‘라면(면을 뽑는 직책)’도 뽑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월급을 많이 준다는 말에 꾹 참고 일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큰맘 먹고 휴대폰을 장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할 수가 없다.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고 굳게 마음도 먹어봤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지금껏 가족들이 나한테 손을 벌리거나 도움을 청하면 청했지 내가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놀았던 적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능력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다.

-가족들은 뭐라고 하나.
▲출소 뒤 부모님도 안 만나고 동생얼굴도 안 본다. 세상에 둘도 없는 파렴치범으로 몰렸는데 어떻게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 친구들도 도저히 만날 수가 없다. 나랑 친한 형이 이 근처에 사는 데 정말 보고 싶지만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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