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달러가 서브프라임 잡는다
오일달러가 서브프라임 잡는다
  • 정우택 편집위원
  • 입력 2007-12-14 14:29
  • 승인 2007.12.14 14:29
  • 호수 35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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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갈수록 태산’
찰스 프린스 씨티그룹 CEO

중동의 오일달러가 미국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 진화에 나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물론 세계금융시장을 강타하는 서브프라임 부실은 미국이 직면한 최대의 악재. 이런 악재를 해결하는데 오일달러가 나선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은 지난 11월 27일 75억 달러(7조원)를 들여 미국 씨티그룹 지분 4.9%에 해당하는 전환사채를 사들였다고 밝혔다. ADIA는 8750억 달러의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 씨티그룹은 세계 최대 금융그룹이다.

이와 관련 영국 로이터통신은 ADIA가 전환사채를 모두 주식으로 바꾼다면 알 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를 따돌리고 씨티그룹 최대주주가 된다고 보도했다. 마음만 먹으면 씨티그룹 경영에도 직접 관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막대한 오일달러를 등에 업은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가 서브프라임 부실 파문으로 위기에 몰린 세계 최대 금융그룹의 구원투수로 나선 게 아주 흥미롭다. 넓게 보면 중동의 UAE가 미국의 구원투수로 나섰다고 할 수도 있다.



서브프라임 여파, 씨티그룹 순익 57% 급감

씨티그룹은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1백37억 달러의 자산을 상각한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자금난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
세계 최고 금융기법을 가진 씨티그룹이지만 서브프라임 파문에 단단히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씨티그룹의 3분기 순이익이 57%나 준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그룹은 자금난이 심각해지자 증권사들로부터 ‘투자의견 하향’이란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4만5000명의 직원을 줄일 것이란 얘기도 나돌았다. 찰스 프린스 최고경영자(CEO)는 경영부실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만 했다. 씨티그룹으로선 경험해보지 못한 아픔일 것이다.

표에서 보면 알겠지만 서브프라임 부실로 씨티그룹이 유독 큰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메릴린치의 84억 달러, 모건스탠리의 46억 달러, UBS의 37억 달러, 도이체방크의 31억 달러보다 손실이 매우 크다. CEO가 물러난 것도 이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ADIA의 씨티그룹 지분인수는 중동 국부펀드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쿠웨이트의 경우도 2500억 달러의 국부펀드를 갖고 있다.

국부펀드는 중동국가와 중국, 러시아 등 석유가 많이 나는 나라들에서 석유로 벌어들인 달러를 국가에서 운영하는 펀드.

중동국가들 국부펀드는 미국 등 해외에서 기업과 건물의 인수합병 (M&A)에 공격적으로 나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ADIA가 씨티그룹의 최대 주주가 됐다는 것은 세계금융시장에서 UAE가 막강한 힘을 행사하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UAE는 이제 석유만 많이 가진 나라가 아니다.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금융파워가 됐다.

ADIA의 한 관계자는 씨티그룹이 주주가치를 높일 만한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어 투자하게 됐다고 말했다. ADIA는 씨티그룹 경영에 참여하기보다 순수한 투자차원에서 지분을 인수했다고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황을 봐가며 얼마든지 경영참여 얘기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ADIA로선 투자수익이 많아도 좋고, 경영에 참여해도 좋다.

ADIA의 씨티그룹 지분인수는 서로에게 좋은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씨티그룹은 당장 75억달러의 돈이 들어와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됐다.

반대로 ADIA는 넘치는 달러를 이용, 세계 최대 금융그룹의 대주주가 됐다. 한쪽은 돈이 급해서, 또 다른 한쪽은 돈이 남아서 걱정하는 것을 볼 때 양사 간의 거래는 보기 드문 ‘윈윈’전략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의 거래라 할 수 있다.

씨티그룹에게 75억 달러는 큰돈이다. 이 그룹이 최근 자회사인 7개 구조화투자회사 (SIV)에 긴급 투입한 76억 달러와 맞먹는
금액이다. 씨티그룹은 서브프라임 파문으로 자회사가 위기에 몰리자 76억 달러를 투입하면서 어려움이 더해 졌다.

씨티그룹은 75억 달러가 들어옴에 따라 현재 7.5% 아래로 떨어진 자기자본비율을 높인다는 생각이다.

주주들의 배당축소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씨티그룹의 임시CEO인 비숍 경은 ADIA투자로 경영을 계속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번 거래는 세계 최대 금융그룹도 돈이 떨어지면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정우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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