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 임원교체 임박 ‘흔들리는 농협’
대대적 임원교체 임박 ‘흔들리는 농협’
  • 현유섭 기자
  • 입력 2007-12-13 11:16
  • 승인 2007.12.13 11:16
  • 호수 35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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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근 회장 낙마 후폭풍
역대 회장이 비리로 구속된 농협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노코멘트” 3대 째 회장이 비리로 구속된 농협중앙회 신임 회장 선출에 대한 농협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정대근 농협중앙회 회장에 대해 실형을 확정했다. 정 회장에게 내려진 죄목은 뇌물죄다. 이에 앞서 정 회장은 서울 양재동 부지를 현대자동차에 시가보다 싸게 판 대가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농협은 1988년 이후 조합장 선거로 뽑힌 역대 회장이 모두 범죄자로 전락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농협 회장직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국가 예산과 비슷한 돈을 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 1190여개의 지역농협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갖는다. 때문에 이번 새롭게 실시되는 신임 농협중앙회장직 선거를 놓고 흙탕물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유력한 신임 회장 후보에 줄서기가 이미 시작됐다는 루머까지 번지고 있다. 정대근 전 농협회장 낙마와 후폭풍, 파벌싸움 내막을 들여다봤다.

“정치조직보다 더한 조직이다” 전국농협노동조합 한 간부의 말이다.

농민단체와 전국지역농협노조들은 정대근 회장의 구속은 농협이 갖는 체질적인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민 조합원들을 위한 기관이 아닌 정치적 색깔을 지닌 지 오래됐고 농업정책을 이끌 공공조직이 아닌 수익만 쫓는 민간기업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지역농협은 전국에 1190여개가 존재하고 있다. 중앙회가 직접 운영하는 영업점은 16개 시도 지역본부와 1069곳의 사무소가 있다. 자산규모만 240조원에 이른다. 시중은행 1위인 국민은행(210조원)보다 많은 규모다.

국가 1년 예산을 웃도는 금액이다.


무소불위 농협중앙회장 자리

때문에 지역농협의 운명과 중앙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농협중앙회장직은 농림부 장관보다 더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역대 농협 회장들이 모두 범죄자로 전락하는 등 청렴도는 좋게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기웅 전국농협노조 정책기획국장은 “이번 정대근 전 회장의 대법원 형 확정은 농협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며 “이익만 쫓는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농협중앙회는 이번 정 전 회장의 형 확정으로 모순에 빠지는 꼴이 돼버렸다.

중앙회는 지난 8월 농협임직원들이 공무원에 적용되는 특가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내놨다. 특가법은 공무원에 적용되는 데 농협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은 다른 판결을 내놨다. 재판부의 판결문을 보면 농협중앙회는 국민 경제와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업무의 공공성이 현저해 특가법이 적용되는 정부 관리기업체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밝히고 있다.

농협임직원들의 비리를 준공무원의 신분 성격에 따라 처벌 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이는 중앙회가 민간기관이라고 주장한 부분과 대치되는 셈이다.

또 정대근 전 회장의 재판 과정에서 지역 조합장들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가 제출되는 등 회장 구명 움직임도 허사로 돌아가게 됐다.

정대근 회장은 이번 대법원 형 확정으로 전직으로 물러나게 됐다. 농협중앙회 정관을 보면 임원의 결격 사유로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해 자격이 상실 또는 정지된 자 등은 임원이 될 수 없다. 회장직이 공백이 생길 경우 30일 이내에 선거를 치
르도록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농협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7일 회의를 열고 오는 27일 선거를 치를 것을 결정했다.


정대근 구속은 농협에 대한 경고

이에 따라 일주일간 선거 공고가 이뤄지고 오는 17일부터 본격적인 후보 등록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는 지역농협 조합장 1190여명이 참석하는 총회를 통해 실시된다.

후보자격요건은 추천서에 50인 이상 100인 이하의 자필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3개 광역자치단체 이상에 걸쳐 받으면 등록할 수 있다.

선거일정이 확정되면서 농협 내부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앙회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정 전 회장의 형 확정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유력한 신임회장 후보를 찾는 임원들의 줄서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회장 선거가 새로운 농협 임원 구도를 짜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역농협도 선거바람이 거세다. 중앙회가 종합금융지주회사로 방향을 틀면서 지역 농협의 입지가 작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압박을 받을 수 있는 지역 농협들은 연대해 신임 회장 선거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 것으로 보인다.


신임회장 선출 줄서기 시작되나

전국농협노조 업무 자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지난 2003년 오는 2008년까지 지역농협 규모 기준 3분의 1(500여곳)을 축소하겠다는 내용으로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듬해에는 지역농협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조정 방침과 경영진단국 신설 등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제출했고 지난해에는 기초 구조조정 일정을 시작했다.

때문에 지역농협 노동자로 구성된 전국농협노조 등과 농민단체들이 이번 회장 선거에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전국농협노조는 지난 4일 중앙회 혁신 요구안 전달 공문을 통해 “(정 회장의 형 확정은)지향을 상실한 채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며 종합금융그룹으로 이름표를 붙잡고 있는 중앙회에 대한 경고”라고 밝혔다. 이는 전국농협노조가 신임 회장 후보들에게 내놓는 촉구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신임 농협 회장 선거는 오는 19일 치러지는 대선과 비슷한 모습일 것으로 보인다. 대세론을 이끌 수 있는 후보와 지역농협 연대를 통한 단일화 후보 간 경쟁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단체와 지역농협 일각에서는 박홍수 전 농림부 장관이 하마평에 올랐다. 박홍수 전 장관은 한국농업경영인중앙회장과 농협중앙회 개혁위원 등을 거쳐 지난 2004년 제17대 총선에 당선된 후 제55대 농림부 장관에 올랐다.

경력부분에서 지역적 입지를 한정된 다른 후보와 달리 전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인물로 뽑히고 있다.


지역연합 후보 연대설 ‘솔솔’

그러나 박 전 장관측에서는 공식적인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지역농협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 전남지역이 대표적이다. 하마평에 오른 강성채 순천농협 조합장과 김병원 나주 남평농협 조합장 간 후보 단일화 논의를 통해 김 조합장이 얼굴을 내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조합장은 1999년부터 남평농협을 이끌고 있다.

전국적으로 지역농협마다 후보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전직 조합장과 평조합원 등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농협조합장 출신 후보들은 지역별 조합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다득표를 위해서는 이해관계에 따른 연대가 절실한 실정이다.

때문에 이번 중앙회장 선거는 전국 단위의 후보와 지역농협 연대를 앞세운 후보 간 경쟁으로 압축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회 관계자는 “이미 일부 지역에서 몇몇 인물들의 출마설이 나돌고 있지만 공식적인 의사가 없기 때문에 확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역대 농협·수협 회장 불명예

잇단 낙마에 부정적 학습효과 팽배
농협중앙회는 지난달 30일 정대근 전 회장의 대법원 형 확정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농협중앙회의 묵묵부답에 대해 이번 정 회장의 형 확정으로 지난 1988년부터 조합장 대의원 선거로 뽑힌 역대 회장이 모두 비리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불명예는 한호선 초대 직선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지난 1994년 3월 구속기소 됐다. 농협예산을 전용, 4억8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4억원 이상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다.

한 전 회장이 물러난 후 부임한 원철희 전 회장도 횡령혐의로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업무추진비 6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농협중앙회는 역대 회장 비리 구속 등을 염두, 지난 2003년 임직원 윤리헌장과 강령까지 만들어 가며 신뢰회복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달 말 정 회장의 형 확정으로 농협의 도덕성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농협 회장들의 잇따른 비리 구속으로 농민들에게 회장 자리에 대한 부정적인 학습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 회장의 도덕성 문제는 농협중앙회의 경영 투명성에 회의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수협 회장들의 수모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1994년 이호방 전 수협회장이 외환금융사고 등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던지면서 같은 해 농협과 수협 회장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앞서 지난 1990년에는 홍종문 전 수협회장이 선거 과정에서 지역조합장들에게 금품을 뿌린 혐의를 받았다.

전국농협노조 관계자는 “농협 내부의 문제는 고유 업무를 버리고 이익만을 좇다보니 생기고 있는 문제” 라며 “고유 업무의 경쟁력을 찾을 수 있는 방안부터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유섭 기자 HYSO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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