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곡물재고는 계속 줄고 값은 크게 오른다’ 지구촌의 곡물파동 우려를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다. 곡물재고가 급격히 줄어 세계적인 곡물파동이 우려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세계 곡물 수급 동향’을 통해 쌀, 옥수수, 밀, 콩, 보리 등 내년도 세계 곡물재고율이 올해(16.4%)보다 1.2% 포인트 낮은 15.2%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연간 세계 곡물소비량의 15.2%만을 재고로 갖고 있다는 얘기다.
내년도 재고량 15.2%는 세계 곡물파동으로 지구촌가족들이 고통 받았던 1972년과 1973년의 15.4%보다도 낮은 것이다.
재고가 가장 많았던 때는 1987년으로 35%의 재고율을 보였다. 내년도 재고가 1987년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보고다.
재고하락은 즉각적인 곡물 값 상승을 가져오고 결국엔 세계적인 식량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물과 석유 부족, 지구온난화보다 가장 심각한 게 바로 식량난이기 때문이다.
만일 곡물파동이 온다면 지구상의 어떤 것보다 심각한 사회문제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세계 곡물재고는 1987년의 35%를 정점으로 매년 줄고 있다. 2000년엔 곡물재고율이 31.5%였다.
그러던 게 2001년 30.4%, 2002년 28.3%, 2003년 23.3%, 2004년 18.4%, 2005년 20.5%, 2006년 19.1%, 2007년은 16.4%로 추정되고 있다. 2008년은 15.2%(전망)로 해마다 뚝뚝 떨어지고 있다.
곡물별로 보면 콩 재고율이 27.6%에서 21.1%로 가장 많이 줄어든다. 당연히 콩으로 만든 제품 값이 급등할 것이다.
밀은 20.1%에서 17.8%로 떨어진다. 빵 등 밀가루제품 값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쌀은 18.5%가 17.5%로, 옥수수가 14.6%에서 14.5%로 약간 줄어든다.
곡물재고가 떨어지는 것과 달리 수요는 급격히 늘고 있다. 2008년 세계 곡물소비량은 20억9539만t으로 사상 최고다. 올해보다 2.5%쯤 늘어난 것이다.
곡물생산은 올해보다 4.4%가 늘어난 20억7883만t. 생산증가율이 소비증가율을 앞지르지만 소비량이 생산량보다 1700만t이나 더 많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지 않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곡물 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11월 둘째 주를 기준으로 미국 캔자스상품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밀이 t당 284달러에 거래됐는데 이는 전년보다 49%나 대폭 오른 값이다.
12월에 인도될 대두의 경우 t당 392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59.3%나 뛴 액수다.
유엔 권장률 19% 내년 재고율 15%
에탄올연료 생산에 쓰이는 옥수수는 t당 값이 2005년 12월 76달러였지만 최근 151 달러로 뛰었다. 꼭 두 배가 올랐다.
세계 쌀값동향은 심상치 않다. 2000년 t당 270달러에 머물렀으나 2004년 360달러, 2005년 312달러, 2006년 334달러, 2007년엔 47달러나 했다.
2002년의 27달러를 제외하면 거의 해마다 값이 뛰는 추세다. 가격 상승폭도 상당히 크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권장하는 적정 곡물재고율은 18~19%. 내년도 재고가 15%대에 있다는 것은 세계의 식량부족현상이 위험수위에 이른다는 증거다. 곡물생산량이 많은 미국, 중국, 호주, 동남아, 구소련에서 흉년이 든다면 지구촌의 식량부족이 심각할 것이다.
이처럼 곡물재고가 줄어든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인구증가다. 곡물생산량은 한정돼 있는데 인구가 늘어 재고는 당연히 줄게 마련이다.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국가의 육류소비증가로 사료수요가 늘고 있
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어야 할 옥수수, 콩, 밀 등 곡물을 가축이 먹어 치워 생기는 현상이다.
세 번째는 청정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해 옥수수 등 곡물을 쓰는 것도 곡물재고량을 줄이는 중요한 요인에 해당된다. 미국, 브라질 등이 옥수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생산에 나서고 있는데 이게 바로 곡물재고율을 떨어뜨린다.
곡물재고량이 줄면 미국, 중국, 호주 등 식량을 많이 가진 나라가 국제정치무대에서 입김을 세게 낼 것이다. 자칫 개도국이나 후진국들이 우려하는 식량 무기화가 앞당겨 질 수도 있다.
지금은 석유수출국(OPEC)을 중심으로 산유국들이 목에 힘을 주지만 식량재고가 줄고 식량파동이 오면 식량을 많이 가진 나라가 강국이 된다.
세계 곡물 값 인상은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프리카 등 원천적으로 곡물부족을 겪고 있는 나라를 비롯해 많은 개도국에서 고통을 치를 것이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도 식량에 관한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가 될 게 뻔하다.
산유국의 경우 기름을 팔아서 곡물을 사들이면 되지만 석유도 없고 곡물도 부족한 나라는 경기침체는 물론 국가경제가 마비될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바로 여기에 해당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원유, 밀, 콩, 옥수수 등을 들여와야 하는 까닭이다.
곡물재고부족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자칫 국가 간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정치체제가 허술하고 경제와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선 내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먹고 살아야 하므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이런 위험성을 미리 알아차리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생색내기 위한 대책, 위 사람에게 보고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위기가 왔을 때 곧바로 가동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정우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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