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주고 되로 받은 STX ‘쌤통’
말로 주고 되로 받은 STX ‘쌤통’
  • 박지영 
  • 입력 2007-11-28 14:45
  • 승인 2007.11.28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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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그룹 잇단 악재에 ‘휘청’

2001년 출범 후 급속히 사세를 확장해오던 STX그룹이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몰려드는 악재에 휘청대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는 대형 악재에 굿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STX중공업의 경우 현직 사장과 상무 등이 경쟁사인 두산중공업 핵심기술을 빼돌리다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여기에 또 다른 계열사인 STX조선은 경남 마산의 수정지구 매립지를 불법 사용,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밖에도 스포츠팬들과 굳게 약속해왔던 ‘프로야구 현대구단 인수’ 건과 ‘한국배구연맹 스폰서 협상’이 사실상 백지상태로 돌아가면서 STX그룹은 재계의 ‘샛별’에서 재계의 ‘양치기 소년’으로 불리게 됐다. 그야 말로 엎친 데 덮친 꼴이다. 첩첩산중에 빠진 STX그룹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STX그룹이 예기치 않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STX그룹 앞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지난 11월 20일. 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STX중공업 사장이 쇠고랑을 차게 되면서 부터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는 전 직장인 두산중공업의 해수담수화 설비기술을 빼낸 혐의로 STX중공업 사장 구모씨(61)와 상무 김모씨(54)를 구속하고 이 회사 부사장 정모씨(55)와 기획본부장 구모씨(51), 영업본부장 이모씨(57), 기술팀 차장 노모씨(42)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20여 년간 두산중공업에 몸담아 온 구 사장 일행은 STX중공업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맡아온 핵심기술 827개를 외장하드에 복사, STX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신생업체가 국내 경쟁업체의 20여 년간의 결과물을 이용하려 했다. 이는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하려고 한 중대범죄”라고 힐난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 또한 “30년의 값진 기술을 한꺼번에 빼내간 것은 심각한 도덕불감증의 한 단면이다”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STX중공업 임직원들이 은밀하고 의도적으로 일시에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이동식 저장장치에 복사하는 방법으로 훔쳐갔다. 그 자료는 우리가 20여 년 개발해온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 세계적으로도 5개 업체만 갖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한 이번 사태의 대응책으로 그는 “기술·영업상 기밀자료 유출행위에 대한 정리가 끝나는 대로 STX중공업을 포함, 책임 있는 모든 당사자에게 형사·민사적으로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STX그룹, 운 다했나?

‘STX발’ 도덕불감증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STX조선은 주택단지를 조성하도록 돼있는 마산 수정리지구 공유수면 매립지를 마산시와 짜고 불법 용도 변경한 의혹을 사고 있다. 수정리매립지는 지난해 5월 마산시와 STX가 조선기자재와 해양플랜트 생산단지를 만들기로 하고 양해각서를 맺은 곳이다.

이와 관련,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은 “공유수면 매립도 끝나지 않았는데 STX가 지난 9월부터 매립지 2만 7000㎡를 선박제조작업장으로 만들어 쓰고 있다. 준공허가도 받지 않은 주택용지 목적의 매립지에 배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수정리매립지는 1990년 7월 마산시가 경남도로부터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받은 뒤 지금까지 매립공사를 하고 있는 곳으로, 매립목적은 ‘주택난 해소를 위한 택지 개발’로 돼있다. 하지만 도심지역에 주거지역이 늘면서 매립지에 굳이 집을 지을 필요가 없어지자 마산시는 이를 산업용지로 바꾸기로 하고 지난해 5월 STX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보다 앞서 STX는 350여억 원을 주고 매립공사를 하던 두산산업개발로부터 시공권을 사들였다.

이후 마산시는 지난 7월 건설교통부로부터 ‘2020 마산 도시기본계획안’을 승인 받았다. 여기에 수정리매립지를 주택용지에서 산업용지로 바꾼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에 마산시는 바로 해양수산부에 매립목적 변경신청을 했다. 그러나 해양부는 이를 거절했다. 공유수면 매립법 28조를 근거로 한 결정이었다. 이 조항은 “매립면허를 받은 매립지는 준공인가 전의 기간과 준공인가일부터 20년 안에는 매립목적을 바꿀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시공권을 사들인 STX는 이에 불복, 지난 9월 4일 법제처에 행정심판을 냈다. 이런 상황에서 마산시는 다음날인 5일 STX에 매립지 가사용 허가를 내줬다. 태풍피해를 막는 시설을 짓고 일부를 물류창고로 쓰게 한다는 목적이었다.

STX는 현재 이곳에다 대형 선박블록을 옮겨 놓고 작업하고 있다. 또 이곳에서 선박기자재를 바로 생산하도록 공장설비도 거의 다 갖춰 놓은 상태다.

이에 환경연합은 “마산시가 허가한 용도와는 다른 용접 등 선박제조작업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가사용 허가범위를 벗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산시와 STX는 공유수면매립법 제24조를 들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4조는 ‘매립면허를 받은 자는 준공인가 전까지 매립목적을 이루는 데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한시적으로 매립지를 사용하거나 매립지에 공작품을 설치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환경연합은 “현재 매립목적 변경과 관련, 행정심판을 진행하고 있어 매립목적은 여전히 주택용지”라며 “이런 상황에선 매립지에 선박블록을 쌓아두는 것 자체도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현대야구단 공중분해 위기

STX그룹의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대 유니콘스야구단 인수 불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STX의 인수가 물 건너갈 경우 현대 야구단은 공중 분해될 위기에 놓이게 된다.

STX가 현대 야구단 인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당시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달라”는 한국야구위원회 신상우 총재 제의에 대해 STX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며 적극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후 STX가 보여준 모습은 ‘과연 인수할 의사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야구단 인수의사가 공개되면서 그룹 이미지가 제고됐고, 막대한 홍보효과를 누렸지만 STX는 오히려 “한국야구위원회가 언론에 알리는 바람에 일이 어렵게 됐다”며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STX만 쳐다보며 철썩 같이 믿어온 한국야구위원회는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분위기다.

STX에 목을 맨 곳은 야구뿐만이 아니다. 프로배구도 STX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올 시즌을 타이틀스폰서 없이 개막하게 생겼
다. 한국배구연맹은 10월 초까지 국내의 한 외국합작사와 타이틀스폰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혁규 총재가 강덕수 STX그룹 회장에게 지난 시즌(13억원)보다 늘어난 액수(15억원)를 제시해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고, 다른 쪽과의 협상은 중단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STX가 이렇다 저렇다 입장을 밝혀야 다른 후원업체들을 찾아보기라도 할 텐데 답답한 상황”이라며 “여기저기에 다 공수표를 뿌려놓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6년 성장에 따른 ‘성장 통’

이처럼 끊이지 않는 악재에 STX그룹 또한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등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STX그룹 계열사 중 상장된 4곳의 주가는 바닥을 쳤다. 지난 10월 말 유럽 크루즈업체인 아커 야즈(Aker Yards)를 인수하면서 누렸던 ‘인기’가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이런 ‘STX발’ 악재와 관련, 재계는 단기간에 급속도로 신사업을 확장하는데서 나온 ‘성장통’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6년 동안 한결 같은 외형확장으로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그에 걸맞은 내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특히 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철저한 인력관리나 자체 기술 확보에 힘을 기울이지 못해 이 같은 사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새로운 영역으로 끝없이 나가는 등 ‘덩치 키우기’에만 ‘올인’하다 보니 핵심인력을 밖에서 충원할 수밖에 없고, 이 같은 구조가 곧바로 과오나 실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담수플랜트 기술유출 건으로 신사업 진출을 시도하는 STX그룹에 대한 염려의 시각이 커지고 있다. 기존 사업과 전혀 무관한 담수화 설비를 외부 인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고 지적했다.

한편 쌍용중공업을 모태로 2001년 출범한 STX그룹은 막강한 현금동원능력을 과시하며 굵직굵직한 기업들을 잇달아 인수, 일약 재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 10월 말에는 유럽 최대 조선소이자 세계 2위의 크루즈선 제조사인 아커 야즈를 전격 인수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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