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대포차’라 불리는 무적(無籍)차량은 움직이는 살인병기나 다름없다. 사고를 내도 피해자가 배상받기 어렵다. 음주단속에 걸려도 차를 버리고 도망치면 찾기 힘들다. 대인사고를 내고 뺑소니쳐도 피해배상은커녕 그 추적조차 쉽지 않다. 경찰은 대포차가 14만 여대나 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14일 대포차를 판매한 중고차 매매상 10명을 붙잡아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이 판매한 대포차는 2003년부터 올해 8월까지 1만 여대, 그 차량들의 소유자로 돼 있는 유령 중고차매매상사에 체납된 세금과 과태료만 160여억 원에 이른다. 이외에 대포차 14만 여대의 횡포는 불 보듯 자명하다. 세금 손실은 물론, 각종 범죄와 뺑소니 사고 앞에 시민이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최근에는 단속이 심해지자 추적을 피해 인터넷 게시판과 블로그 등을 통해 영업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들의 실체를 추적해 매매 업자를 만나봤다.
경기도 분당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모(33)씨는 얼마 전 중고 중형 승용차를 구입하려 인터넷을 뒤지다가 중고*.com 게시판 광고가 눈이 번쩍 띄었다. 나온 지 2년 밖에 되지 않는 2000㏄ 소나타가 같은 차종의 4년짜리 중고차보다 200만원이나 싸게 ‘급매’ 한다는 광고를 봤기 때문이다.
“최신 중고차보다 2백만원 저렴”
적혀 있는 이동전화번호로 연락했지만 “이미 팔렸다”는 것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박 씨는 며칠 후 다시 그 번호로 전화했는데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사실을 알고 보니 이런 업자가 부지기수였다. 바로 ‘대포차’ 전문 매매 업자였다.
요즘 인터넷이나 포털사이트 블로그 등을 통해서 소개되는, 파격적으로 싼 차는 대부분 대포차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고차 유통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이 대포차 공세에 쉽게 노출돼 있다. 경찰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 해마다 각각 수 천대씩의 대포차량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무적차량인 ‘대포차’를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시킨 업체가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적발된 업체들이 유통시킨 대포차는 1만
여 대로 차량 가격만 500억 원에 이른다.
이들은 택시의 차령이 7년(2년 연장가능)인 것을 감안 만료되기 직전의 중고 택시를 구입해 차량 명의를 유령 자동차 매매 상사에 이전하는 수법을 가장 많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동차 담보 대출을 해주는 사채업자들로부터 돈을 갚지 못하는 차량 등도 사들여서 되파는 수법도 병행했다.
이들이 유통시킨 대포차들은 차량 명의가 유령업체에 등록돼 있어 자동차세뿐만 아니라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과태료 등을 전혀 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적발된 한 중고차 매매 상사에서 나온 과태료 고지서만 라면상자 3개 분량이었다. 그리고 지난 21일 전남도가 지난 10월 한 달간 지방세 체납차량 1만5579건에 21억9800만원을 번호판 영치 등을 통해 징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14만여 대의 대포차가 운행되고 있으나 대포차 단속에 필요한 관련법이 없어 단속이 어려운 형편”이라며 “대포차는 서류상으로는 특정인이나 법인 명의로 등록된 정상 차량이기 때문에 일반 검문을 통해 단속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포차가 양산되는 이유는 실제 사용하는 사람이 처벌 대상에선 제외되어 있는 관련 법규 미비 때문이다. 사실 대포차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험도 원소유주 명의로 가입
현행 자동차관리법의 전신인 도로운송차량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62년 1월이다. 45년 전의 법이 아직도 그대로라는 현실은 정부와 국회가 한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지난해 불법명의차량 관리방안 연구를 교통안전공단에 의뢰, 이전등록 의무 위반자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처벌 규정을 10월 마련하고 관련 부처·기관과 협의 중이다.
#대포차 판매자 직격인터뷰
지난 20일 오후 5시께 강남역에서 대포차 중개업자 이상현(가명) 씨를 만났다.
주로 호객행위를 하는 수법에 대해 묻자 이씨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자동차매매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려놓거나 개인블로그나 싸이월드에 글을 남겨 구매를 유도한다. 구매자들은 시세보다 싼값에 차를 살 수 있어 문의가 많다. 자동차 등록원부의 소유자가 이전 차주로 돼 있어 범칙금 등을 전혀 낼 필요가 없다. 또 경찰한테 운전자가 직접 걸리는 경우 외에는 모든 범칙금은 매매상이나 소유주 앞으로 간다. 음주운전 등 여차하면 차를 버리고 도망가면 된다는 점도 고객들은 좋아한다.”
고객들이 선호하는 차종에 대해 “대부분 중형차 이상이고 세단 급이 많다. 그랜저가 인기다. 살 때 서류도 필요 없고 현금박치기면 된다.” 보험가입에 대해서는 “보험도 들어준다. 원 차주 신상정보를 제공하기에 그 사람이름으로 들면 문제없다. 보험회사는 웬만한 소액사고에 실사를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형사고시 사고당사자와 협의를 보거나 안 되면 버리고 달아나면 된다.”
경찰의 단속에 대해 “한 달에 순이익만 2000만원정도 된다. 이미 업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 빼기가 힘들다. 설사 걸려도 ‘돈 빌려주고 압류한 차’라고 말하고 서류를 보여주면 된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또 경찰이 단속하기도 힘들다. 대포폰에 대포통장을 사용하는데 추적할 수도 없다. 요즘 경찰단속이 강화됐다고 해서 대포폰을 자주 바꾼다.” 고 말했다.
김종훈 fu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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