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막아야 국가경제 산다”
“산업스파이 막아야 국가경제 산다”
  • 김종훈 
  • 입력 2007-11-19 00:00
  • 승인 2007.11.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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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경제·국가정보원 공동기획 산업스파이 첩보전쟁 실태

국부유출의 원흉, 산업스파이가 최근 IT업계뿐만 아니라 철강·조선·자동차 등 국내 모든 산업분야에 걸쳐 급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지난 4월 두산중공업 기술연구원장을 마지막으로 퇴사한 구모(61)씨는 두 달 만에 STX중공업 사장으로 취임됐다. 구씨는 최근 핵심기술과 영업기밀 184건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두산 측은 이번 기술유출로 1조70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2일 포스코 퇴직직원 2명이 기술유출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이 중국 업체에 넘겨주려한 기술의 가치는 향후 5년간 최대 2조8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사회전반에 모럴헤저드 현상이 만연해 있다. 산업스파이는 국가경제를 뒤 흔들어 놓을 만큼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고 그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산업스파이들의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적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며 대한민국 기술을 사수하고 있다. 이들이 유출을 막아 보존한 금액이 157조 6000억원에 이른다. 내년도 국가총예산 257조원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산업스파이 첩보전쟁 실태를 입체 취재 했다.


세계 1위의 우리나라 선박 조선소 건조기술을 통째로 중국에 유출하려던 대우조선해양 전 기술기획팀장 Y씨가 국정원 요원들의 끈질긴 추적 끝에 기술유출 직전에 덜미가 붙잡혀 구속됐다.

국정원은 지난 1월부터 조선업체가 밀집한 부산·경남·울산 등을 돌며 기술유출 예방 활동을 펼치던 중 첩보를 입수한 후 추적에 들어갔다. 추적결과 Y씨는 퇴사 후 M사 부사장으로 옮겨 중국지방정부와 합작으로 50만평 규모의 조선소 건립을 추진했고 중국에 선박설계 Q사를 설립했다.


구멍 뚫린 기업 보안관리 실태

Y씨가 훔쳐낸 설계도는 10만9800개의 파일로 컨테이너선, 천연액화가스선, 초대형 원유운반선 등에 대한 완상도 파일로 선박 69척을 만들 수 있는 규모였다. 만약 이 자료가 중국으로 유출되었더라면 기술개발비만 한정해도 피해액이 자그마치 5175억원에 이른다.

지난 5월에는 우리나라가 세계최초로 개발한 와이브로 핵심기술을 미국으로 빼돌리려한 IT업체 전·현직 연구원들이 적발됐다.
국정원은 이미 2월경 포스데이타 미국연구소 연구실장과 전직 연구원등이 공모해 핵심기술을 유출하려한다는 첩보를 입수, 내사에 착수했다.

조사결과 미국연구실장 K씨는 단말기 모뎀개발 그룹장 J씨와 결탁 미국에 인터넷 기술업체인 I사를 설립하고 한국의 포스데이타 연구원 30여명을 추가로 I사에 합류시켜 빼돌린 기술을 업그레이드 한 뒤 미국 업체에 1800억원에 매각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포스데이타의 와이브로 사업 와해를 기도했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0년까지 국내 와이브로 시장규모는 총 8조1000억원에 달하고, 장비 시장규모는 2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은 J씨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해 징역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같은 달 기아차 전·현직 직원 9명이 차체 조립·용접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빼가려다 덜미를 잡혔다.

이들이 빼낸 기술의 주요 내용은 현대·기아차가 25년간 노하우를 축적해온 신차 품질보증시스템과 금형공장 설비배치도 및 신차개발일정 등 57건에 이른다. 이들이 기술을 넘겼을 때 예상되는 손실액은 2010년까지 22조3000억원으로 추산됐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산업기술 해외유출을 시도하다 적발된 건수는 2003년부터 2007년 10월까지 총 119건이다.

연도별로 보면 2003년 6건, 2004년 26건, 2005년 29건, 2006년 31건, 올해 11월 현재 27건 등 매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실제로 기업체 대부분이 기술유출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하면 실제 범행건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적발된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었을 경우 약 175조 6000억원(10월까지) 상당의 국익유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도별 피해액도 2004년 32조9000억원, 2005년 35조5000억원, 지난해 31조원 등 해마다 30조원을 넘어섰다.


포스코도 산업스파이에 혼쭐

2003년부터 지난 10월까지 적발된 기술 유출 분야를 보면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휴대전화·반도체 등 전자전기·정보통신 분야가 71.5%로 가장 많았으나, 최근에는 자동차·조선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국정원 A담당관은 “최근 조선·철강·자동차·생명공학 등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산업스파이가 활동하고 있다”며 “빼가려는 기술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고급기술이고 수사기관의 조사를 따돌리려고 증거를 은닉하는 등 갈수록 수법도 치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A담담관은 또 “유출자는 전·현직 직원 등 내부자에 의한 전직·기술판매 등 생계형 기술유출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협력업체에 의한 유출사례도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유출규모도 기업형으로 대형화 추세”라며 “내부인에 의한 기술유출이 많은 이유는 최근 기업들이 산업보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핵심기술에 대한 보안대책을 강화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외부인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출유형은 연구원을 대상으로 승진·연봉인상 등 금전적 유혹에 의한 매수가 78건(65%)으로 가장 많았으며, 개인적인 활용을 위한 무단보관과 기업차원의 공동연구·합작투자 등을 통한 유출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기술유출 동기는 금전유혹·개인영리(창업 등)에 사리사욕에 의한 유출이 85건으로 약 71%를 차지하고 있고, 처우·인사 불만에 의한 유출도 23건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직무발명 보상 제도를 확대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노력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외환위기로 침체된 국가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벤처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등 첨단·신기술 연구개발에 지속 투자해왔다.


첨단기술 무단 유출 배경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발전·응용시킨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등 첨단기술이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제품 생산과 직결된 상용기술이 매우 풍부해졌다.

따라서 미처 첨단기술을 선점하지 못한 후발 기업들은 선진 기업의 원천기술도 중요하지만, 곧바로 제품화가 가능한 상용기술이 더 필요하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해외경쟁국 기업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국정원 B담당관은 “산업스파이의 활동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기술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절감하고 단기간 내에 경쟁기술의 추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이익을 거둘 수 있어 개발 중인 원천기술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산업스파이가 획득한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시판매할 경우, 원천기술을 개발한 기업보다 훨씬 싼 가격에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동종분야의 경쟁기업에 대한 세계시장 진입차단 및 견제 차원에서 경쟁업체의 기술개발 동향을 수집하고 핵심기술 유출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4년 4월 LCD 장비분야에서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A기업은 국내 LCD 생산장비 제조업체인 J사의 시장진입을 막기 위해 J사의 핵심인력을 스카우트해 기술유출을 시도한 경우다.

기술유출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기술개발에만 집중한 나머지 기술보호에는 그만큼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술은 첨단이면서도 여전히 산업보안에 대한 인식 및 예산부족으로 보안관리 수준은 아직 초보단계에 있으며, 기술유출사건이 발생하고 난 다음에야 보안 관리를 강화하는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상공회의소에서 전국 500개 산업체·연구소 임직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산업보안의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기업의 절반가량이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방화벽을 구축·개선하거나(9.4%) 보안부서를 신설·증원(4.7%)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한 업체는 소수였다.

보안관리 규정 강화(29.7%)나 문서·장비 관리시스템 개선(26.6%)등 관리체계만 바꿨다는 곳이 많았고, 피해를 보고도 보안체계를 전혀 개선하지 않았다는 기업도 5.5%나 됐다.

또한 2006년3월 발명진흥법을 개정해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등 연구개발성과에 대한 보상노력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연구개발성과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고 퇴직 후의 관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등 연구인력 관리가 소홀하다.

IMF이후 인플레이션과 함께 사회전반에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성공하면 된다’는 한탕주의 풍조의 성행과 기술유출 사건의 75%가 금전적 유혹과 사리사욕에 의한 도덕성 저하가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어 임직원에 대한 윤리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최근 구조조정 등에 의한 전직이 보편화되고, 근무조건·자녀 교육 등을 위해 해외근무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평생직장이라는 의식이 사리지고 있다. 상당수의 우수 연구원들은 외국기업에서 고
액 연봉이나 승진 보장 등을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제의해 올 경우 쉽게 유혹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유출을 기도하다 적발되었을 때의 처벌 강도보다 기술을 유출하고 얻게 될 경제적 이익이 크다는 데 있다.

적발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고액 연봉·승진·자녀 교육 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반면, 적발되었을 경우 받게 되는 처벌은 기술유출에 따른 피해 규모에 비해 단기징역이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사회적으로 충분한 예방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미국·독일의 ‘산업보안협회’와 같은 민간주도의 기술보호 전문단체가 없어 기업체·연구소 등의 보안수요에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차원의 제도적 지원책 마련해야

미국은 1955년에 산업보안협회(ASIS)를 설립하여 세계최대의 보안협회로 발전시켰으며, FBI·법무부 등과 공조해 산업보안 관련교육·인력양성·정보제공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독일은 1993년에 연방산업보안협회(ASW)를 설립하였는데, 이 협회는 연방정부와 경제계의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담당하면서 산업보안과 관련된 정보교류 및 협조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도 지난 4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란?
산업스파이 색출 및 예방 첨병


국정원은 1991년부터 첨단기술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내 산업기술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및 정책수립 등 산업보안 활동을 추진해 왔다. 그러던 중 2000년을 전후해 벤처기업 붐과 함께 삼성·LG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기술이 증가하면서 해외 기술유출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정원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인 2003년 10월 기존의 산업보안 조직을 확대·개편,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유출로 인한 국익손실을 예방하기 위한 전담조직으로서 ‘산업기밀보호센터’를 설립했다. 이후 국정원 ‘산업기술보호센터’는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유출 방지를 위해 첨단 기술 보호 기업체·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산업스파이 색출활동과 사전 예방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예방활동은 대민 서비스 차원에서 기업체를 대상으로 산업보안 교육 및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으며, 중기청·특허청 등 유관기관 합동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산업보안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기업체의 보안마인드 확산과 자율보안시스템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은 사이버공간을 통한 정보자료 지원확대를 위해 산업기밀보호센터 홈페이지(www.nisc.go.kr)를 개설하고 있으며, 산업스파이 신고전화(111)를 통해 24시간 산업기밀 보호관련 상담과 함께 ‘첨단산업기술보호동향’등 각종 정보자료도 제공하고 있다.

김종훈  fu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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