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백화점 창립기념일은 언제야?
도대체 백화점 창립기념일은 언제야?
  • 김종훈 
  • 입력 2007-11-12 15:35
  • 승인 2007.11.12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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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대대적 세일파티의 비밀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들이 11월 들어 창립기념일을 내세워 대대적인 세일에 들어갔다. ‘생일잔치’를 명목으로 내세운 만큼 어느 세일 기간보다 할인율이 높고 유명 브랜드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들 3개 백화점은 지난 11일까지 나란히 ‘창립기념행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기세일이 무색할 정도의 고강도 세일행사를 펼쳤다. 이들은 창립을 내세워 80% 세일 하는가하면 일정금액에 해당하는 상품을 구매하면 상품권을 제공하고 명품핸드백을 내거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들의 실제 창립기념일은 따로 있다. 롯데백화점은 11월15일, 신세계백화점은 10월24일, 현대백화점은 6월15일이다. 이처럼 창립일이 제각각 다른데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시기에 행사를 하는 이유는 뭘까. 서로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며 경쟁적으로 창립기념일을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실제 창립기념일이라 내세우는 날도 알고 보면 ‘가짜’인 경우가 허다하다.


업계 선두인 롯데백화점이 11월 창립기념일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하자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가짜 창립기념일’로 고객 끌기에 나선 것이다. 해마다 비수기인 11월의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행사를 마련할 구실이 필요하다는 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백화점업계의 가장 큰 행사인 가을세일이 10월이고, 12월에는 성탄절과 신년특수가 있지만 그 사이에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있다. 따라서 롯데와 신세계는 창립일을 전후해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현대는 이들 두 업체에 맞춰 이벤트를 펼치는 것이 관행처럼 돼있다.


엿가락 기념일, 한심한 고객 우롱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특정 백화점이 독자적으로 세일에 들어가면 고객 몰림 현상이 생긴다” 며 “이 같은 독주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각종 행사의 날짜를 맞추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단체들은 “‘가짜창립일’까지 만들어 고객을 유인하는 것은 기업의 도덕성 결여”라며 “백화점들의 얄팍한 상술을 이용해 고객을 우롱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롯데쇼핑의 진짜 창립기념일은 법인 등록을 마친 11월 15일이다. 하지만 롯데타운이 형성된 8월 25일도 창립기념일로 정해 지난 8월31부터 9월9일까지 창립기념 ‘세일’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또 창립기념일이라니 고객들은 의아할 따름이다. 백화점 창립기념일이 2~3개나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롯데 뿐 아니라 신세계와 현대 등 웬만한 백화점은 모두 창립기념일이 여러 개 있다. 이런 연유로 8월부터 12월까지 무려 5개월 동안은 백화점 창립기념일 주간이다. 창립기념일이 많은 것은 장삿속과 직결된다. 각종 행사를 그만큼 많이 벌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하루아침에 창립년도가 뒤바뀌기도 한다.

실제로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2000년 난데없이 개점 38주년이 70주년으로 바뀌기도 했다. 종전에는 삼성이 동화백화점을 인수하고 신세계로 상호를 변경한 시점을 창립기념일로 잡았으나, 갑자기 미스코시 경성점이 오픈한 1930년 10월 24일이 창립기념일로 둔갑했다. 현재 신세계는 77주년기념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신관 오픈, 본점 리뉴얼링 등을 거치면서 창립이나 개점 기념일이 따라붙는 사은행사가 부지기수다. 현대백화점 역시 창립기념일이 금강개발산업이 설립된 6월 15일과 압구정 본점이 개점한 12월 1일 등으로 두 개다. 그야말로 ‘창립기념일’은 엿가락 늘어지듯 자유로운 셈이다.

가을 정기세일에 이은 창립기념 할인행사 사이에도 ‘포스트 세일’을 했다. 백화점들은 신년·봄·여름·가을 4차례 정기세일과 브랜드 세일, 설·추석 할인, 입학·졸업, 결혼, 바캉스 등 연중 시도 때도 없이 세일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타이틀 행사 사이에도 각종 세일이 난무하고 있다. 세일과 각종 할인행사를 합치면 연중 매월 행사가 있고 전체 기간도 100일을 웃돈다. 거의 사흘에 한번 꼴이다.

소비자는 잦은 세일 때문에 ‘정상가’에 의문을 품고 있다. 서울 영등포에 거주하는 이모씨는 “실제 세일하는 것이 정상가격인 게 아니냐”며 “정상가격대로 주고 사면 바보 소리 듣기 딱 좋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백화점도 잦은 세일이 소비자 신뢰를 잃고 결국 매출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해외 선진 백화점들은 정기세일이 한해 두 번에 그친다. 할인폭도 더 크고 집중도가 높아 매출이 많이 나온다.


연중 시도 때도 없이‘세일 병’

최근 주요 대형 백화점들이 일제히 세일기간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것은 좋지만 무분별한 세일은 오히려 반감만 일으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권장소비자가격을 높게 책정한 뒤 할인행사를 펼쳐 결국은 제값에 물건을 팔고 있는 업체도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상술은 신뢰를 상실하게 하는 수준을 넘어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다.

그나마 업계의 자정 노력에 희망도 보인다. 롯데백화점은 여름과 가을세일을 각각 6일과 5일씩 줄였다. 신세계는 세일 품목은 줄이되 물량은 늘렸다. 지난해보다 여름·가을세일 기간이 11일 줄었다.

국내 백화점의 연중 세일기간은 140∼240일로 일본,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 백화점보다 1.5∼8배가량 길다. 해외 선진국 사례를 본받아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종훈  fu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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