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이 메가박스를 호주의 최대 투자은행인 멕쿼리 펀드에 매각하자 영화계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CJ와 함께 우리나라 영화의 양대 축이자 롯데시네마, CJ CGV, 메가박스로 대변하는 우리나라 3대 극장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쇼박스라는 대형 투자, 제작사도 보유하고 있어 투자, 제작, 배급의 완벽한 수직라인으로 우리나라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는 절대적인 영향력 때문이다. 그러나 오리온의 진짜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룹차원의 사업 재편에 돌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난해 8월, 50억원 규모의 메가마크를 설립, 계열사로 편입해 건설업 진출을 선언했다. 이는 최근 영업이익이 점차 하향세를 접어들고 있는 제과와 엔터사업을 극복하기 위한 탈출구라는 분석이다. 이와 맞물려 오리온이 미디어 사업을 포기하고 1조원 규모의 여유자금으로 건축, 레저와 금융에 뛰어든다는 설이 증권가에 파다하다. 그러나 오리온의 이 같은 구상은 동서지간 기업인 동양그룹의 주력사업과 겹쳐 맞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주력사업이 달라 가족끼리 노래방도 함께 다닐 만큼 막역한 사이를 자랑했던 동서지간인 동서 그룹의 현재현 회장과 오리온의 담철곤 회장. 한 몸통에서 갈라져 사이좋게 기업의 로고도 함께 쓰며 담 하나를 두고 살고 있는 사위들은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그들의 충돌은 어떤 반향을 불러올까?
동양그룹 창업주인 설탕왕 고 이양구 회장은 부인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과 슬하에 이혜경(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부인), 이화경(담철곤 오리온 회장 부인, 미디어 플렉스 사장) 등 딸만 둘을 두었다.
그러나 병환이 깊었던 1983년 맏사위인 현재현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현 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법대 3학년에 재학 중 12회 사법고시에 합격, 부산지검 검사였다. 그러나 1977년 결혼과 동시에 처가의 경영참여 요청으로 동양시멘트 이사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디어 재벌 오리온은 건설
금융 재벌 동양은 미디어
오리온 담철곤 회장은 외국인 고등학교와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한 후 바로 동양시멘트 구매과장으로 입사해 차곡차곡 실무를 익혀 왔던 터였다. 이처럼 동양그룹은 사위들이 일찌감치 회사 중추적인 역할을 했기에 현 회장의 후계자 지목은 그리 의외의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양그룹은 이 회장이 1989년 타계한 22년만이 지난 2001년 32개 계열사 중 동양제과와 온미디어를 비롯해 16개사를 오리온그룹으로 계열분리 했다.
분리 초반 초코파이로 대변되는 오리온은 금융사업부분으로 인해 힘겨워하고 있는 동양그룹보다 유리했다.
그러나 6년 뒤 현 회장이 실시한 구조조정으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자존심 대결을 보였던 두 회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경영 성적을 내고 있다. 동양그룹은 동양종금증권이 종합자산관리계좌(CMA) 24조원, 동양투신운용 이 국내 주식형 펀드 중 수익률 1위, 동양메이저가 약 3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 달성해 금융업을 중심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그러나 오리온은 2002년 537억원에 달하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73억원으로 감소하면서 6년째 경영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초코파이 수혜기업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한 오리온의 담 회장으로선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자신감을 충전한 현 회장은 지난 50주년 창립기념회에서도 이를 반응하듯 금융, 레저, 건설을 기업의 3대 신주종 사업을 정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또 공교롭게 오리온도 메가박스를 매각해 1400억원의 자금을 만들었다. 메가마크라는 건설사를 바탕으로 미디어 사업보다는 건설과 레저, 금융 사업을 신주력 사업으로 정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이좋은 공생관계 금 가
외나무다리에서 건설업 격돌
사이좋았던 동양과 오리온이 공교롭게 맞아 떨어진 주력사업으로 인해 공생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충돌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에 동양은 오리온의 핵심사업인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했다. 온라인 바둑 사업을 하는 계열사 타이젬을 동양 온라인으로 사명을 바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온라인 사업은 오리온을 대표하는 주력 사업이자 담 회장의 부인이자 현 회장의 처제인 이화경 사장이 오리온의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 부문 담당 총괄 사장으로 있는 그룹차원에서 주력하고 있는 사업이다.
이미 지난해 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된 온미디어와 미디어플렉스는 이미 안정권에 들어섰지만 현 회장은 동양의 온라인사업 참여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오리온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미 사모펀드시장진출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투자활동에 나선 동양에 맞서 벤처캐피탈(금융) 설립에 뜻을 갖고 금융업사업에 기지개를 피고 있다. 최근 자산 규모 7,689억원의 중견 저축은행인 예아름저축은행의 인수전에 동양과 인수를 위한 각축전을 벌인 것도 이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양사의 본격적인 경쟁관계는 건설에서 시작됐다. 이미 동양은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라는 건설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세확장을 위해 건설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미 동양메어저는 내년부터 ㈜경일건업과 ㈜영남레미콘(레미콘 제조 및 판매)을 소규모 흡수합병 결정했고 올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포기하거나 인수에 실패한 곳도 극동건설, 신일건설이다.
이에 오리온도 지난해 인수한 메가 마크라는 건설사를 통해 건설물량을 해소하면서 장기적인 레저, 부동산 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1단계로는 3100평정도의 서울 용산 오리온그룹 본사 부지와 계열사인 롸이즈온의 도곡동 베니건스 본사 부지에 개발에 착수했으며 문배동 부지를 개발도 들어가 2008년~2011년까지 부동산 개발이익만 총 2839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동양레저의 안성 파인크리크, 삼척 파인벨리 CC등 4개의 골프장과 속초 영랑호 리조트 사업 등에 맞설 레저사업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좀처럼 같은 사업의 영역은 피해온 사이좋은 사위기업끼리 같은 사업을 구상중인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다” 며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식으로 양사의 주력사업을 신수종 사업으로 택한 것은 사업과 동시에 인간적인 관계에도 결별통보서를 보낸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처럼 한 몸통으로 수 십 년간 한솥밥을 먹어온 동서지간끼리의 사업영역을 놓고 치열한 한판승이 기대되고 있다. 학자스타일의 현 회장과 초코파이 CF에 직접 출연할 정도로 적극적인 담 회장의 기분 좋은 합석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관심이 고조되는 이유다.
#무리한 확장, 신일건설 인수 파기
건설업계 ‘동양메이저 주의보’
동양그룹은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를 축으로 건설업을 그룹의 3대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이에 극동건설 인수 실패를 거울삼아 본격적으로 지난 8월 22일 도급순위 54위의 건설업체 신일과 신일의 계열사 5개사를 550억원에 인수한다는 공시를 냈다.
신일은 지난해 기준 자산규모가 2418억원, 매출액이 6000억원에 달하는 건설회사로 ‘해피트리’ 브랜드로 아파트건설에 강자로 지난 6월 흑자부도를 냈던 회사다. 그러나 동양은 돌연 인수계약 보름만인 지난 9월5일 신일 인수 계약을 전격 파기했다. 신일 인수가 기정사실로 받아 들여졌던 만큼 신일 채권단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건 당연한 일. 파기 이유는 계약의 전제로 명시돼 있던 공개목록이 제공되지 않는 등 주요 계약 조건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신일측은 “기업회생 개시 결정 전 동양그룹이 인수의사를 밝혀와 이를 취하했는데 갑작스런 인수 철회에 회생의 기회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어 다른 회사의 인수기회마저 놓쳤다”며 “협력업체 및 관계직원과 가족 5만 6천여명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에 놓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미 일부 서류를 받은 동양측이 서류검토를 한 결과 경영시스템이나 감당하기 힘든 재무구조로 판명되자 인수 계획을 전격 파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서 동양메이저는 기업실사를 제대로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공시했다는 비난과 어려움에 처한 중소업체에게 다시 한 번 재기 기회를 잃게 했다는 기업윤리정신에 위배된다는 눈초리를 받았다.
최근 대기업의 성급한 경영권인수 공시로 인한 투자자들과 관계자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신일건설 인수파기 사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재정구조와 핵심자료들을 탐독한 뒤 계약을 파기 하는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한 건설 전문가는 “동양메어저의 건설업 확대는 기정사실화된 상태로 적극적인 인수합병이 예상되고 있었다”며 “제2, 제3의
피해 업체가 나오지 않도록 중견건설업체는 동양메이저 주의보에 빗장 단속을 한 번 더 하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한 법률 전문가는 “해외는 인수 시 본 계약 체결 때 공시하지만 국내에서는 내부자 정보가 새어나가는 경우가 많아 주식이 요동친 후 조회공시를 요구받은 뒤에야 공시하는 사례가 많다”며 “계약 해지 공시에 대한 규제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
다.
백은영 about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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