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신격호(85) 롯데그룹 회장에게 2007년은 그 어느 해 보다도 감회가 새롭다. 열아홉 어린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서 고국 땅을 밟기까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신 회장에게 2007년은 한국 사업을 시작한지 4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 때문이다. ‘불혹’의 세월동안 오로지 ‘태생부터 남다른’ 롯데를 토착화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여온 신 회장. 그러나 국내 토종기업들은 아직까지도 한국롯데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롯데는 40년이 흐른 지금도 변한 것이 없다. 겉으로는 국내 토종기업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일본계 틀’에서 헤어나지 못한 모습이 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4번씩이나 빗겨간 ‘옹고집’ 롯데의 일본계 습관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박봉의 삶이 싫어’ 단돈 83엔을 들고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때 그의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도쿄의 스기나미구 코엔지 거리에 여장을 푼 신 회장은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 이러한 타고난 성실성 덕분에 그는 의식주 해결은 물론 사업자금도 금세 모을 수 있었다.
1948년 6월, 새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던 신 회장에게 하루는 친구가 찾아왔다. ‘껌을 제조해 보는 것이 어떠냐’며, 권유 차 찾아온 것이었다.
‘좋은 원료를 사용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 신 회장은 그해 6월 28일 사재를 ‘탈탈’ 털어 신주쿠 허허벌판에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주식회사 롯데’란 상호는 그가 어린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샤롯데’ 에서 따온 것이다.
일본서 성공한 진짜 이유
본격적으로 껌 제조 사업에 뛰어든 신 회장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밀항한지 10년째가 되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껌이 날개돋인 듯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롯데그룹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와중에 신 회장은 지금의 아내인 다케모리 하츠코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결혼은 그에게 두 번째 ‘행운’을 안겨줬다.
중국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맞아 중상을 입은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가 다름 아닌 부인 하
츠코의 외할아버지였던 것이다.
1945년 9월,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거행된 항복 문서 조인식 때 일왕 히토히로와 함께 정부 대표 자격으로 목발을 짚고 참석한 외상 또한 ‘시게미쓰’였다. 신 회장의 일본이름 또한 ‘시게미쓰 다케오’이다.
이에 고전연구가들은 신 회장이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이러한 ‘숨겨진 혼맥’이 크게 한몫 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롯데그룹 측 관계자는 이와 관련 “역사 검증을 받은 것도 아니고, 누가·어떻게·무슨 근거로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는지
알 수 없다”며 “이제껏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롯데 측 반응에 대해 고전연구가로 활동 중인 신동준 21세기정치연구소 소장은 “신격호 회장과 윤동주, 일본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며 “그게 억울하다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입증할 자료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롯데의 국적은 어디?
수 십 년간 ‘반 일본인’으로 살아온 신 회장에게 마침내 ‘금의환향’할 기회가 생겼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1965년 재일동포 사업가들이 모국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67년 그는 일본에서 벌어들인 엔화를 국내로 들여와 롯데제과를 설립, 오늘날의 한국롯데를 탄생시켰다.
한국롯데의 모(母)기업이 롯데제과라면, 롯데제과의 기본 틀은 일본에 소재한 ‘주식회사 롯데’, 즉 일본롯데인 셈이다.
이처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다.
롯데가 한국에 뿌리를 내린지 올해로 40주년. 그러나 재계는 아직까지도 롯데를 온전한 토종기업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일본계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평이다.
일례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과 연결되어 있는 롯데그룹 본사사옥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매우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엘리베이터 안내원이다. 소위 ‘엘리베이터 걸’이라고 불리는 이 여성은 일본 어느 백화점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사람들의 의식이 점차 바뀌면서 조금씩 감소하더니 근래에는 일본에서조차 완전히 사라졌다.
롯데그룹 곳곳에 숨어있는 일본풍 기업 문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가령 비상장사의 감사보고서만 해도 미처 ‘일본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롯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연말 작성된 롯데닷컴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온 천지가 ‘한자범벅’이다. 실제로도 ‘은·는·이·가’ 정도의 조사 말고는 모두 한자로 표기돼 있어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보고서를 보고 있자니, 흡사 ‘히라가나’를 사용하는 일본기업의 보고서를 보는 듯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롯데 닷컴 뿐 아니라 대부분의 비상장 계열사들이 토씨 하나만 빼고 모두 한자로 감사보고서를 작성한다는 점이다. 이는 롯데가 아직도 일본계 오너일가의 입맛에 맞춰 운영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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