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몇 년 전 호남행 건물이 새로 지어진 이후 영남행 건물은 너무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리모델링 작업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망국적 지역감정의 해소는 ‘공평성’에 있다. 인사 문제나 재정 지원 문제나 결국은 공정한 분배이다. 고속버스를 이용해 통영까지 갔고, 그곳에서 거제도까지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 운전 기사의 지역 경제 분석은 생각보다 낙관적이었다. “다른 지역은 모두 불황이라고 하지만 이곳 거제도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이 있어서 비교적 경기를 덜 타고 있다”며 나름대로 원인 분석을 내 놓았다. 조선 경기 호조로 거제도 20만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는 노동자들의 생계가 비교적 괜찮다는 것이다. 거제 터미널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 기사는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이었고, 민주노동당 지지자였다. 그는 한나라당 김기춘 후보의 당선에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곳 거제 분위기는 이제 한나라당 일색에서 많이 벗어났다.
하지만 우리당이나 노동당 후보는 경력이 일천한데 비해 김기춘 후보는 워낙 화려했다. 그래서 중년 이후의 분들이 김기춘 후보를 선호했던 것”이라고 선거 결과를 분석했다. 아울러 “우리당과 노동당 후보를 단일화했으면 충분히 김기춘 후보를 이길 수 있었는데, 노동당 지도부가 너무 강하게 나와 단일화가 무산되었다”며 노동당 지도부의 경색된 노선을 비판하기도 했다.김영삼 전대통령 생가는 너무 초라했다. 방명록을 보니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생가는 청소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듯 구석구석에 먼지로 가득 찼다. 김 전대통령 생가 주변의 한 할머니는 “이제 김 전대통령의 시대는 갔다고 봐야 한다. 아들 김현철도 이번에 완전히 몰락했으니까”하고 옛 추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와 달리 한나라당을 여전히 ‘자신들의 편’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거제도 시내는 러브호텔과 룸살롱 등 향락시설이 즐비했다. 이곳도 예전에 비해 불경기를 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재래시장과 음식점, 상점 등은 비교적 활기가 있어 보였다. 시장에서 문어 말린 것을 사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선거 후 분위기를 물었더니 “우리당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마침 얼마 뒤에 경남지사 보궐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예전과 같이 일방적인 흐름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남이 노 대통령 고향이라는 측면 때문인지 이제 한나라당 독주는 지나갔다는 조짐이 이곳 저곳에서 보였다. 마산에서 왔다는 젊은 부인은 “경기가 나빠 마산 수산물시장이 폐장되었다”며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흘러가듯이 말했다. 경남 지역 안에서도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조금씩 차이가 나 보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경남 지역에서도 지역감정은 급속하게 탈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과거 한나라당 싹쓸이 구도가 점차 퇴색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념적으로 가장 왼쪽에 있는 노동당 후보조차 창원과 울산에서 당선될 정도로 이데올로기 공세는 약화되고 있으며, 부산을 본거지로 하는 노 대통령의 지속적인 지역정서 도전에 경남 주민들도 이제는 서서히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한나라당은 별다른 준비없이 그저 지역감정 하나로 경남 지역에서 버텨왔으나 이젠 그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젊은 세대는 급속하게 우리당이나 노동당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곳 저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봉 pneuma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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