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가 웃었다. 지난달 27일 신정아는 검찰에 출두한 이래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사라진 뒤 몇 시간 뒤 성곡미술관 박문순 관장은 흙빛 얼굴로 검찰청사의 두꺼운 문을 힘들게 열고 나왔다. 성곡미술관의 큐레이터와 관장인 전 재계총수의 부인. 이들은 얼마 전까지 특별한 관계에서 검찰청사 안에서 “시켰다.” “그런적 없다”로 서로 결백을 주장하며 떠넘기기에 정신이 없는 사이가 됐다. 왜 그랬을까. 성곡미술관은 1995년 쌍용그룹 창업주인 성곡 김성곤의 옛 자택에 설립됐을 정도로 한때 대기업 메세나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던 미술관이다. 우리나라 재벌 친인척이 운영하는 5대 미술관중 하나다. 그러나 성곡미술관은 적자에 허덕이는 부실한 곳이었다. 이에 신정아는 변양균 전 청와대정책실장의 후광을 빌려서 기업들에게 외압형 구걸을 시작했고, 박 관장은 신정아의 탁월한 능력을 특별하게 샀다. 결국 미술관 적자 운영이 변양균, 신정아, 박문순으로 이어진 비극의 트라이앵글을 통해 최악의 스캔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2006년 미술관 백서를 통해서도 미술관은 내용없는 부실한 사업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성곡미술관에서 보듯 왜 재벌가의 사모님들의 미술사랑은 여전한 것일까. 우리나라 재벌가 마님들의 미술관 무엇이 문제이며 누가 다음 흙빛을 뒤집어 쓸 것인가. 우려스러운 포커스를 재벌가 미술관에 맞춰본다.
우리나라 미술계 영향력 1위, 서울대 미술응용학과 출신, 우리나라 여성부호 2위, 리움 미술관 관장.
이것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 미술관 관장에게 붙는 수식어다. 미술계에서 그녀의 영향력과 파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탄탄한 성역을 구축하고 있다.
사람들은 경제계는 이 회장이, 미술계는 홍 관장이 양분하고 있다는 평을 하고 있다.
변양균-신정아-박문순
3각 커넥션
삼성 리움미술관도 쓰나미 덮치나
이에 한때 금호, 성곡미술관 실장과 동국대 교수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까지 맡았던 미술계의 기린아의 신정아와 미술영향력 1위인 홍라희 여사와도 검은 커넥션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었다.
삼성이 일순간 발칵 뒤집어 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신정아의 로비에 넘어가 1억 1500만원이라는 후원금을 지급한 상태였고 삼성그룹은 문화예술계의 498억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메세나 문화 최대 후원그룹이었기 때문이다.
또 신씨가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서울대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관장직을 제안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홍 관장은 서울대 미술관 건립 과정을 직접 자문했으며 서울대 정문 옆 미술관 공사에도 150억원을 기부했었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무엇인가 내부적인 교감이 작용했을 거라는 의혹이 생기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씨는 홍 관장에게까지 접근하기에는 장벽이 많았을 것이다. 이미 국정원보다도 더 빠른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는 삼성의 안주인 홍 관장은 이미 많은 정보로 그녀를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100여회가 넘는 각종 전시회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홍 관장.
최근에는 위축된 미술계를 위로라도 하듯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극도로 자제하는 홍 관장이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와 함께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절제와 풍요 - 덴마크의 예술과 디자인’ 개막식에 참석했다.
또 13일에 삼성리움미술관의 개관 3주년을 기념을 맞이해 고미술 현대미술 상설작품을 대거 교체하면서 리움의 새바람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신정아 쓰나미에 털끝하나 흔들리지 않았던 미술 영향력 1위다운 모습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계 총수들의 친인척이 운영하고 있는 다른 사립미술관은 이래저래 타격이 만만치 않다.
경주 선재미술관 및 소격동 아트 선재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희자 관장(대우그룹 전 회장 부인), 사간동 금호미술관 박강자 관장(금호아시아나 박성용 회장 동생),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SK 최태원 회장 부인) 등 재계 총수의 친인척들이 운영하고 있는 빅 5 사립미술관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이미 지난 국립현대미술관이 전국 미술관들의 운영실태를 조사해 9일 내놓은 ‘2005미술관백서’에 따르면 미술관들(삼성미술관 리움 및 호암미술관 제외)의 재정 상태를 보면 수입총액이 100억원인 반면 지출은 704억원에 달해 연간 604억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도 비슷해 공립미술관의 경우 총 지출예산 대비 5.1%를 나타냈으며, 사립미술관은 48%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나, 공·사립미술관 모두가 50% 미만의 재정자립도를 나타내 재정상태가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신정아 케이트에서 보았듯이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입수한 ‘성곡미술문화재단 2004 ~2006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성곡미술관은 작품 전시기획으로 2004년에는 2264만원의 수익을 거뒀으나 2005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2억4475만원과 3억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성곡미술관은 2005년부터 평균 1억원의 투자비가 들어가는 대형 전시회를 주로 열면서 비롯되는 적자를 기업의 광고와 협찬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한 것이다.
이는 기업미술관의 대표적인 예로 들을 수 있다.
결국 실력이 파악되지 않았던 고졸출신의 큐레이터의 무분별한 기획을 제어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재벌가의 사모님들은 그저 기업이미지나 자신의 고상한 품위를 유지시켜주는 수단으로 삼는 것에 급급했으며 주먹구구식
의 운영으로 항상 적자를 면치 못하고 기업의 후원금을 얻는 데만 혈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더러 몇몇 기업 미술관에서는 미술초대전을 빌미로 작가들의 작품 기증을 유도해 컬렉션을 열어주고 다시 작품을 판매해 비자금을 조성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미술관계자는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기업의 후원금을 따기 위해서 전시회가 있는 경우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실정이다”며 “특히 든든한 재정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사립미술관의 적자는 검증되지 않는 경영진들과 전문화되지 않은 직원들이 만들어놓은 한심한 작품이다”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다.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지듯 미술품을 과세를 이용한 상속의 수단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미술품테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미술품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재테크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수백억원 들인 사립미술관 적자 시달려
사립미술관은 재계 사모님의 탈세본부?
이미 삼성의 리움 미술관의 경우는 기업을 10개 더한 것보다도 더 비싼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홍 관장의 보유 재산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즉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에 가까운 미술품들이 소장돼 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더욱 문제점은 미술관부지에 대한 부분이다 노른자위 땅위에 설립한 미술관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2007년 1월 기준으로 삼성 리움미술관의 경우 부지면적 6373㎡ 공시지가 195억원, 아트센터 나비(구 워커힐 호텔) 부지면적 1060㎡ 318억원, 아트선재센터 1792㎡ 155억원, 금호미술관 1886㎡ 112억원, 성곡미술관 1322㎡ 399억원으로 이들 미술관의 위치와 교통편이 좋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 미술품보다 더욱 높은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재벌가의 미술관 경영도 최근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솔그룹의 이인회 고문은 원주 한솔오크밸리에 미술관과 종이박물관을 짓고 있으며, 애경그룹 2세인 채형석 부회장(장영신 회장의 장남)의 부인 홍미경씨는 지난 5월 서울 삼청동에 몽인 아트센터를 개관했고, 코리아나 화장품 2세인 유승희 부관장(유상옥 회장의 딸)은 강남구 신사동에 코리아나 미술관과 화장박물관을 운영 중이며 한국베링거잉겔하임 창업주인 한광호 명예회장과 셋째 딸 한혜주씨도 평창동 화정박물관의 관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처럼 재계 총수나 부인 혹은 친인척들의 미술관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 없이 단순히 품격유지나 기업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전시용 미술관 운영은 중단돼야한다는 목소리가 커
지고 있다.
결국 성곡미술관처럼 소유와 경영이라는 분리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기업의 후원금에만 인공호흡처럼 의존하고 기생하는 제2의 미술관이 탄생하지 않을까 미술관계자들은 우려스러워 하고 있다.
이번 신정아 사건은 고졸출신 여성의 파렴치한 행각이 도화선이 아니라 재계 사모님들의 비싼 허영심을 채우기 급급한 사립미
술관들의 만성적인 적자가 낳은 비극은 아닐런지.
3중고에 시달리는 큐레이터
“제2의 신정아 또 나올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예일대 박사, 우리나라 동국대 교수가 우리나라 5대 사립미술관의 큐레이터라면 월급은 얼마나 받는 것이 합리적일까. 온갖 허위로 자신의 학위과 경력을 속인 신정아도 큐레이터를 하면서 받은 월급은 고작 240만원이었다. 신정아 이후 우리나라 큐레이터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내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큐레이터라 하더라도 50:1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한다. 또 설사 큐레이터가 된다 할지라도 로비와 미술품판매에 국한 돼 있어 직업에 대한 정체성이 시달린다. 또한 국내에서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근무체계가 정립돼 있지 않아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갈등이 자주 연출된다는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한 큐레이터는 “우리나라는 큐레이터와 미술품을 판매하는 겔러리스트의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아 큐레이터가 미술관의 운영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며 “기획전시에서 수익이 없을 때 큐레이터의 능력부족으로 인식 받아 술 한 잔 하면 그림을 사주겠다는 유혹에도 수없이 시달린다”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고학력의 큐레이터의 월급도 일반 급여자의 수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150여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큐레이터로 진입하는 학예사자격증 취득자도 1700여명이 넘지만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겉보기엔 화려한 큐레이터. 우리나라에서는 희소성의 가치만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미술분야의 사각지대에 놓여 방치되고 있다.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많은 검증이 필요하지만 결국 미술작품의 판매딜러로 전락해 버린 미술계의 변방자. 제2의 신정
아는 미술계에서 양육되고 있는 것일까.
백은영 about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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