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회장 vs 종업원‘8년 소송전쟁’전말
LG전자 회장 vs 종업원‘8년 소송전쟁’전말
  • 현유섭 
  • 입력 2007-10-15 13:30
  • 승인 2007.10.15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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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재벌비리 내부고발 돌아온 건 해고와 왕따

어느 평범한 샐러리맨은 회사내부의 비리를 고발했다. 사회정의를 위한 외침을 지나치기에는 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왕따 메일과 해고, 명예훼손 고소장이었다. 국내 대기업 직원들의 내부고발을 대변하는 사례다. LG에서 근무하던 정국정씨의 사례는 대기업들이 내부 고발자에 대한 입장이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씨는 평범한 LG전자 사원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시 대표이사였던 구자홍 LS그룹 회장과는 물론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과 법정 싸움 중이다. 법정 싸움은 8년을 넘기고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45세 되버린 정 씨는 젊음을 빼앗은 구 회장과 검찰에 대한 증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정 씨는 현재 구자홍 회장을 상대로 무고 소송과 검찰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길고 외로운 법정 싸움 중인 정씨를 만났다.


정국정씨의 법정싸움은 지금부터 12년 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LG전자 기자재 담당부서로 가야할 영수증 한 장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회사 내부 비리의 증거였다.

정씨는 사내 컴퓨터를 수리 중이였다. 때마침 필요한 부품이 떨어져 거래처에 주문을 했다.


‘왕따 메일’보복,
재벌과 싸움 본격 시작


그에게 도착한 것은 주문한 부품과 매매 거래 내역이 담긴 영수증 한 장. 영수증에는 2800만원이라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실제 부품 가격은 500만원이었다. 누가 봐도 회사내부 윗선과 하청업체가 결탁한 것을 알 수 있는 증거였다.

정 씨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정 씨의 결론은 내부고발. 회사의 일원이라는 자긍심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의감 때문이었다.

정 씨의 내부고발은 회사 감사팀의 감사로 이어졌다. 내부고발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의 하루일과는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승진에서 연거푸 떨어진 것은 물론 이에 항의하는 그에게 돌아온 회사의 대답은 ‘합리적인 누락’ 이었다는 답변이었다.

회사 내부의 보복도 시작됐다. 직장상사의 퇴직서 제출 강요와 사내 PC, 전자메일 아이디, 사물함 등이 모두 회수됐다. 근무 자리도 창가에 홀로 배치됐다.

모두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쉬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1999년 5월 27일 정 씨의 법정싸움의 원인이 된 전자메일 한통이 사내 직원들에게 발송됐다. 내용은 ‘왕따 메일’이었다.

메일을 보면 정 씨의 아이디 회수와 공유 메일 아이디 공지 금지, 정씨 PC사용 금지, 회사비품을 정씨에게 빌려주는 행위 금지 등이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왕따 메일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파장을 불렀다. LG전자는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그가 사문서를 위·변조해 회사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다.

결과는 무혐의 판결. 특히 왕따 메일을 발송한 직원이 법정에서 거짓 진술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검사의 직권 기소로 실형을 받았다. LG전자의 주장이 거짓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법정 싸움은 구자홍 회장 배신 때문”

정 씨는 이후 회사와 구자홍 대표이사를 상대로 무고죄를 물었다. 그러나 검찰의 대응은 불기소로 덮으려 했다.

서울고검의 재기수사 명령도 묵살됐다. 재기수사 명령과 불기소가 3차례가 반복되면서 7년째를 넘기고 있다.

검찰에 대한 증오는 국가배상소송으로 이어졌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오는 23일 검찰의 2차 변론이 예정돼 있다.

정 씨는 7년이 넘는 재판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구자홍 회장과 회사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구 회장에 대한 존경심이 증오로 변해버렸다”며 “무덤까지 찾아 시시비비를 따지겠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내 보복 행위가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구 회장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직장생활을 토로했다.

당시 구 회장은 “알았으니 돌아가 있으라”는 대답을 했다. 구 회장이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다.

구 회장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

“구자홍 회장과는 LG전자 부사장 시절부터 회사 서클활동으로 알고 지냈다. 당시 구 회장은 스마트하고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한마디로 구 회장을 믿은 게 화근이었다. 그러나 정 씨에게 칼날이 돌아왔다. 회사가 그를 사문서 위변조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구 회장도 왕따 메일을 몰랐다며 발뺌했다. 정 씨는 구 회장의 발뺌에 대해 극심한 배심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던 존경의 대상이 증오의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정 씨는 “구자홍 회장이 왕따 메일의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사문서 위조로 고소했다” 며 “왕따 메일이 사실로 밝혀진 뒤에는 검찰에 구 회장을 무고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구 회장을 조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준법 투쟁이 수년째 계속되고 왕따 메일과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회사가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애써 전 직장을 두둔하려고 했다.

그러나 30대 초반 한창 일하고 재미있어야 할 인생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회사 측 직원들이 소송이 진행되면서 사회적 명예를 얻지 않았냐고 하는데 젊음과 동료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며 잠시 눈을 감았다.

정 씨는 내부고발을 생각하고 있다면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보복이 얼마나 비참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활동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45세가 되도록 결혼도 못했다. 직장을 구하려고 돌아다녀 봐도 내부고발자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녔다.

“내가 회사의 대표였다면 직원의 내부고발에 대해 언짢을 것 같다” 며 자신을 거부한 회사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소송과 생활에 필요한 돈이 여간하지 않다. 때문에 정 씨에게 남은 것 산더미와 같은 빚뿐이다.


잃어버린 젊음,
취직도 결혼도 못해


이제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한 끼만 먹고 하루를 버티는 방법을 알게 됐다. 예전 같으면 죽마고우들에게 술 한 잔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엄두도 못 낸다.”

술자리에서도 친구들은 소송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도 마음만 아프다며 얘기를 털어 놓지 않는다.

정 씨는 현재 검찰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오는 23일은 검찰의 2차 변론이 예정돼 있다.

이 자리에서 정 씨는 긴 소송을 끝내기 위해 법원에 빠른 판결을 요청할 계획이다. 더 이상 털어 놓을 얘기도 없기 때문이다.

정 씨는 “법원이 자신에게 손을 들어 줄 것”이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 내부고발제도 빛과 그림자
내부고발자 보복행위 처벌해야


LG전자 정국정씨와 비슷한 시기에 내부고발로 보복성 해임을 당한 공무원이 있다. 현준희전 감사원 조사관이다.

현준희라는 이름 석 자는 정국정과 함께 우리나라 내부고발제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말해주는 키워드다. 현씨는 효산콘도 비리와 감사 중단에 대한 내용을 폭로했다가 해임됐다.

현씨도 정씨와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내부고발-보복성 해임-명예훼손 소송이다.

현씨의 재판도 올해로 10년을 넘기고 있다. 다른 내부고발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와 관련된 설문 조사결과에서도 내부고발제도의 문제를 읽을 수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부정부패 신고를 했던 공직자 중 43.3%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답했다.

또 주변에서 부패행위를 보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고하지 말라고 권하겠다는 응답이 50%나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고해보았자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신분 노출로 신고한 사람만 불이익을 당하더라는 것이다.

특히 조사 대상자 중 66.7%는 신고 후 징계와 인사조치 등 유·무형의 보복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이는 2002년과 2003년 국가청렴위원회에 공직사회 내부의 부패행위를 신고한 공직자 3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결과다. 그나마 공무원들은 부패방지법에 따라 공식적인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사례들을 보면 일방적인 보복
이 횡횡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부고발자들의 현실은 제도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이 학습효과로 이어져 비리 고발 자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신광식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 위원은 “내부고발자 보복행위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 며 “법률 개정을 위한 내부고발 실태의 정기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간부문 내부고발자의 보호를 위한 장치도 단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었다.

현준희씨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시시비비를 빠르게 밝힐 수 있는 재판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소송이 길어지면서 내부고발자들은 피폐해진다. 법적소송이 고발자에 대한 폭력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소송을 걸어놓고 제풀에 꺾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는 내부고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정위와 같은 중간 기관 설치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현유섭  HYSO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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