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거침없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대주그룹에 서슬 퍼런 칼날을 드리웠다. 그것도 어느 한 곳을 향한 ‘손봐주기 용’ 칼놀림이 아니다. 칼집을 벗어난 국세청의 칼날은 향방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작정을 하고 ‘칼춤’을 추는 듯하다. 특히 이번 대주그룹의 특별 세무조사는 본사에 대한 정기조사를 한지 1년 반 만에 실시됐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주그룹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에 대해 살펴봤다.
지난 5월 31일 오전 11시, 광주시 동구 남동의 대주그룹 본사에 예고 없이 국세청 조사요원 30여명이 출동해 이 회사 경리장부 및 서류 일체를 압수했다.
대주그룹은 건설·해양·제조·금융·미디어·레저업종에서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 지난 한해 연매출만도 2조원에 달하는 광주전남지역의 대표적인 중견기업이다.
서울지방국세청에 따르면 조사4국은 대주그룹의 모기업인 대주건설을 비롯한 4개 계열사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를 벌인 결과, 대주그룹 건설·주택부문이 ‘가공원가’를 허위 계산하는 방법으로 지난 2005년부터 2006년 두 해에 걸쳐 각각 484억원, 40억원 상당의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를 포착했다.
이에 국세청은 지난 8월 27일 대주건설과 계열사 대주주택을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정식 고발하고, 혐의가 입증될만한 자료를 취합해 검찰당국에 고스란히 넘겼다. 이에 따라 검찰은 조만간 대주건설·주택 관계자를 소환해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허재호 회장 구속되나
그러나 대주그룹을 비롯한 4개 계열사에 대한 이번 특별 세무조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갖가지 의혹을 낳고 있다.
이번 특별 세무조사가 관할 세적지인 광주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지방국세청이 나선 점도 있지만, 서울청 조사 4국 소속 1·2·3과가 총동원되었다는 점도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기조사를 받은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대주그룹에 대해 전격적인 특별 세무조사를 펼쳤다는 점도 의문이다.
특히 국세청이 대주건설 등에 수사의뢰의 수순을 밟지 않고 곧바로 고발이라는 강수를 둔 것은 눈여겨 볼 부분이다. 국세청은 ‘이중처벌 소지를 대폭 줄이겠다’는 방침의 일환으로 단순 조세포탈사건의 경우 검찰 고발을 되도록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주주 또는 대표 등 회사 고위관계자들의 횡령·배임·비자금 조성의혹이 짙을 땐 제한적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하지만 국세청이 대주건설 등에 수사의뢰 수순을 밟지 않고 곧바로 고발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미뤄 보면, 국세청이 이번 세무조사를 통해 ‘빼도 박도 못할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사의뢰의 경우 의뢰자인 국세청에 책임이 따르지 않지만 고발은 수사를 통해 사실이 아닐 경우 무고혐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국세청이 대주그룹을 고발했다는 것은 고의적인 탈루혐의가 명백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법인과 회사 대표에 대한 사법적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우려했던 검찰 수사의뢰가 현실화되면서 대주그룹은 그 칼끝이 그룹 총수인 허재호 회장에게까지 향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의적인 세금 포탈과정에서 그 최종 행위자가 누구냐에 따라 사법처리 대상이 달라질 수 있지만 총수가 조세포탈범으로 몰려 사법적 처리로 이어진다면 대주그룹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에 놓인 셈.
또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계속될 경우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도 대주그룹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대주그룹이 최근 국내 최고법무법인 김&장에게 변호를 맡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대주그룹은 “아직 국세청으로부터 공식통보 받은 바가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가타부타 말할 사항이 아니”라며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룹 총수의 구속여부와 관련, 대주그룹 관계자는 “허 회장의 경우 대주그룹의 회장이지 이번에 문제가 된 건설·주택부문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며 “법적으로 고발당하거나 수사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답했다.
추징세액 얼마나 될까
한편, 대주그룹에 대한 탈세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재계의 관심사는 이번 세무조사에 따른 추징세액 규모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현재 국세청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기류는 최근 몇 년 동안 대주건설을 비롯한 4개 계열사의 매출액 규모로 봐서 최소한 수백억원대에서 최고 천억원대는 세금부과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다.
거액의 세금 추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추정에는 또 다른 단서가 있다. 만약 이번 조사의 칼자루를 광주지방국세청이 쥐었다면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특별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청 조사4국이 맡은 이상 엄살이 통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런 면에서 광주청이 한편으로는 자존심 상해하면서도 오히려 홀가분해하고 있다. 또 솔직히 현재 광주청 조사국의 인적 구조상 조사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 것도 서울청이 악역을 도맡은 이유인지도 모른다.
한편 이번 추징세액은 세목과 사안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주그룹의 경우 법인세와 부가세를 이용한 탈세라는 점과 탈세기간 등을 고려, 약 60% 정도의 가산세만 부과하더라도 대주그룹이 부과할 추징세액은 800억원대를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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