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아파트 분양시장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전국 미분양 물량 중 95% 가까운 물량이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 편중돼 있다. 지난 6월 중견건설사인 신일이 부도가 난 데 이어 이달에는 세종건설이 부도처리 됐다. 양사 부도의 가장 큰 원인은 악성 지방 미분양 물량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선업까지 진출하며 성장세를 구가해 온 대주그룹 주력회사인 대주건설 마저도 유동성 위기설에 직면해 있다. 이달 들어 지방 투기과열지구 11곳이 해제됐으나 지방 건설사들의 경영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지방을 중심으로 깡통 아파트가 등장하고 건설사들이 앞 다퉈 헐값 땡처리를 하고 있는 게 지방 분양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일까.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8만9924가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7만3772가구보다 무려 1만6000여 가구가 늘어난 것이다. 이는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말 10만270가구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
6월 한 달 동안 만에도 전월 대비 14%가 늘어났으며 전체 미분양 물량 가운데 93.8%가 지방에 몰려있다. 수도권도 지난 6월에는 56.4%나 미분양 물량이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미분양은 청약가점제와 분양가 상한제 등 새로 시행되는 분양제도의 변화로 인한 일시적인 물량 쏟아내기에 따른 증가이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면 미분양 물량을 자연히 줄어들 수 있으나 지방의 미분양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진단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건설사 97개 부도
지방을 기반으로 한 건설사들의 줄 부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7월까지 지방건설업체 97곳이 부도가 난 것으로 드러났다. 전매제한 강화 등 주택수요 기반 붕괴와 미분양 증가로 시행사들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상환 능력 고갈 등으로 주택업체의 부도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특히 중견 건설사들의 잇따른 부도는 세간의 집중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중견 건설사인 신일, 이달 세종건설을 부도로 내 몬 것은 다름 아닌 악질적인 지방 미분양 사업 때문이었다. 신일은 대구 등 지방 사업장에서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일시적인 유동성 증가를 견디지 못해 지난해 흑자를 이뤄놓고도 부도를 맞았다.
이후 신일은 동양그룹으로 합병돼 경영 정상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동양그룹은 결국 인수계약을 파기했다. 주택사업 악화가 인수포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업계는 전하고 있다.
세종건설의 부도도 부산 문현동 주상복합과 전남 여수 문수동 아파트 등 지방 시장에서의 분양 및 입주 부진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주택사업을 위주로 하는 건설사들의 경우 주택경기가 최악이라 부도가 난다 하더라도 선뜻 인수를 희망하는 곳이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주 대주건설이 신용등급이 하루만에 3등급이나 강등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불거진 유동성 위기설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울산시 무거동 아파트 개발 사업 시행자인 S사가 만기 도래하는 자산담보부증권 채무 350억원을 상환할 수 없자 시공사인 대주건설에 부담을 지우면서 발생한 이 사태에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 초 부산ㆍ대구ㆍ대전과 충청권 일대 11곳에 대해 분양권 전매규제를 받는 투기과열지구 해제 조치를 발표했다.
재정경제부 한 관계자는 “이번 주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를 열어 투기과열지구 해제 지역 중에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받는 투기지역 해제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 시장은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뒤늦은 해제 조치는 분양권 매물 출시를 부추기고 이후에도 해당 지역에서 분양 물량이 나와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이번 투기과열지구 해제 지역 11곳에서 올 연말까지 분양을 계획한 아파트는 총 31개 사업장 2만4700가구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러한 예정에 근접한 실제 분양이 얼마나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물량 중 대부분이 행정도시 영향을 받는 충청권에 포함돼 있고 미분양이 심각한 부산과 대구 등은 분양 예정 물량이 거의 없는 상태다.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건설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건설업체 부도가 이어지면 레미콘, 시멘트, 합판, 보일러 같은 관련 업체들도 치명상을 입게 된다. 한 건
설사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인가를 따기 어려우니 지방 사업지라도 찾게 된다”며 “막상 지방에 내려가면 현금이 돌지 않으니 현장을 중심으로 유휴 인력을
정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수요억제정책이 되레 화 불러
전문가들은 지방 미분양의 가장 큰 원인은 그간 참여정부가 쏟아낸 수요억제 정책이 서울 강남 등 수도권을 겨냥하면서 이를 수요가 풍부하지 않은 지방시장에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더욱 심화됐다고 진단하고 있다.
부동산 태평양 박종석 소장은 “그간 철저한 사전조사 없는 무차별 분양으로 지방 미분양 현상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며 “건설사들도 전문 컨설팅을 통해 해당 지역의 정확한 인구조사, 인구유입, 주거수준 등의 수요와 관한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은행 안명숙 팀장은 “지방 분양시장에서는 분양가 할인, 대금납부조건 완화, 준공 후 할부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어 건설사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며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 및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 완화 등 일부 햇볕 정책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장익창 sanbada@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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