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순 찍어내고 군부 대개혁?
신일순 찍어내고 군부 대개혁?
  • 윤지환 
  • 입력 2004-05-25 09:00
  • 승인 2004.05.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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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군 이래 처음으로 현역 육군 대장인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개인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돼 군 안팎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특정지역 몰아내기’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아 이래저래 군이 위기에 처해 있다. 군사정 전모를 파헤쳤다.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57·육군 대장·육사 26기)이 소환 조사 사흘만인 지난 8일 밤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돼 국방부 검찰단 수감시설에 수감됐다. 신 부사령관은 광주 출신으로, 육사에 입학한 뒤 미 웨스트포인트와 미 지휘참모대학을 졸업했으며, 28사단장, 3군단장, 육군참모차장 등 군 요직을 지냈다. 현역 대장이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어서 군 안팎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뿐만 아니라 전·현직 군 수뇌부마저 비리설에 휩싸여 군 전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 검찰단(단장·김석영 공군대령) 조사에서 신 부사령관은 3군단장, 연합사 부사령관을 거치면서 지휘활동비·복지기금·위문금 등 1억5,000여만원을 전용 또는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신 부사령관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김진섭 변호사는 “검찰이 주장한 액수가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다”라며 “일부 혐의 사실을 포괄적으로 적용해 영장을 청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검찰이 횡령했다는 액수의 대부분은 예산 항목이 다를지 모르지만 군부대에 다시 사용됐다”며 “흔히 말하는 ‘개인 착복’ 액수는 군 검찰 주장에서도 많지 않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골프 접대비는 신 부사령관이 군단장 시절 외박(휴가)을 나가 원로 장성, 예비역 동기생 등과 골프를 친 비용이기 때문에, ‘포괄적 지휘 활동’이라는 것이 변호사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신 부사령관의 혐의 내용을 종합하면, 신 부사령관은 지휘활동비, 복지기금, 위문금 등의 명목과 접대비, 선물비, 경조사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 액수에 대해 군 검찰은 3군단장 시절 1억2,500만원, 연합사 부사령관 시절 3,300만원 등 모두 1억5,800만원이라고 밝혔다. 지휘활동비는 군 지휘관에게 공식적으로 내려오는 업무추진비 성격의 돈이다. 복지기금은 군 부대가 운영하는 식당, 볼링장 등의 수익금 가운데 50%를 국방부로 보내고 나머지 50%는 부대를 위해 사용토록 돼 있다.

또 위문금은 연말에 기업체 등에서 부대에 전달된 돈을 말한다. 신 부사령관이 지휘활동비, 복지기금, 위문금을 유용한 것은 엄격하게 법률을 적용하면 ‘불법’이고 근절돼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신 부사령관의 대장진급 심사 과정에서 같은 사안을 놓고 군 당국이 치밀한 내사를 했지만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정리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업무상 횡령 혐의를 들추어낸 데 이어 이에 대한 증거인멸을 이유로 구속까지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군당국의 이번 수사 착수 배경에 세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사의 계기가 된 것은 인사철을 앞두고 날아든 ‘투서’였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군 안팎에서는 탄핵사태 마무리 이후 이어질 군 수뇌부 및 장성급 인사 등을 앞두고 특정지역을 겨냥한 ‘군부 인맥정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결재권자인 조영길 장관도 처음엔 군 검찰의 영장청구 강행 방침에 신중함으로 대응하다가 여권 ‘핵심부’의 기류를 읽고 영장 청구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또 과거 피의자를 구속한 뒤 혐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던 관행과는 달리 이번 사건의 경우 국방부 검찰단은 신 부사령관을 구속한 뒤 함구로 일관했고, 취재진의 접근도 막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수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조영길 장관은 군검찰단의 수사 도중 피의사실 유출에 대해 경고를 하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은 지난 13일 “광주 출신인 신일순 대장 구속을 계기로 정권의 ‘호남인맥 청산작업’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당 차원에서 파악한 군 인사에서의 ‘호남 배제’ 실태를 공개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장전형 대변인은 “공식 및 비공식 채널을 통해 조사한 결과 올해 7월 장성으로 진급할 예정인 육사 34기 출신 11명은 출신지역별로 볼 때 수도권이 6명, 충청권 1명, 영남 2명, 강원 2명으로 호남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장 대변인은 “같은 시점에 이뤄질 예정인 올해 국군기무사령부 대령 진급 예정자 8명 가운데서도 호남 출신은 한 명도 없고 충청권 출신이 2명, 영남권 출신은 6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장 대변인은 “이 같은 호남 배제 군 인사는 ‘호남은 무조건 노무현 정권 지지’라고 인식한 현정부가 영남권을 공략하기 위한 ‘동진정책’의 일환”이라며 “각 분야에 걸쳐 ‘호남인맥 희생, 영남인맥 우대’ 전략을 노골화하는 데 따른 현상”이라고 비판했다.민주당의 이 같은 주장은 실제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4월 이뤄진 군 인사에선 전체 7명의 대장 중 영남 출신이 2명에서 4명으로 늘어난 반면 호남은 2명에서 1명(신 대장)으로 줄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사실 호남 군맥을 겨냥한 사정설은 지난해 10월 호남 출신인 국방부 합동조사단장, 헌병감, 법무감 등이 비리 혐의로 잇따라 전역하면서부터다. 이 때문에 당시 군 내부에서는 사정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이에 민주당은 군 인사뿐만 아니라 주요 권력기관과 정부부처 산하기관 등을 대상으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전반적인 인맥 변화 실태를 정밀 조사, 17대 국회 개원 이후 ‘호남 배제’ 문제를 강력히 제기해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국방부 검찰단은 호남 군맥 사정설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이에 대해 국방부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두고 호남 군맥 사정설이라고 하는 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비리와 연루된 일부 군 내외 세력이 군의 개혁을 막기 위해 퍼뜨리는 소문일 뿐 법의 기준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조영길 국방부 장관도 지난 11일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조 장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신 대장의 구속을 군의 대대적인 사정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며, 단순히 신 대장의 혐의가 관행의 차원을 넘었기 때문에 사법처리가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잘못된 관행에 대한 단속을 할 때는 본보기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타깃을 정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타깃 설정이 잘못된 것 같다”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라는 자리를 고려해 볼 때 우리나라 군대뿐만 아니라 국가 위상도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환  jjd@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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