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그늘 밑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운아들이 속속 증시로 복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른바 ‘○○○ 게이트’라고 불렸던 각종 대형 정치사건들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들이 하나 둘 재기에 나선 것. 국민의 정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던 최규선(47)·이용호(49)씨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최대 의혹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오일게이트’의 주역 전대월(45)씨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각자 자신들만의 ‘비장의 카드’를 들고 나타난 이들의 화려한 부활에 주목해 본다.
김대중 정권을 뒤흔들었던 ‘이용호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이용호씨가 지난 8월 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급 한정식 집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이날 이씨는 칼과 망치로 무장한 괴한 3명으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병원으로 급송됐다. 당시 S그룹 P회장이 이씨와 함께 있었으나 P회장은 전혀 다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P회장은 10여개의 회사를 거느린 호남의 대표적인 경제인으로, 이씨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서울강남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회사 사장인 윤모(47·피의자)씨는 자신과 지인들의 돈 25억원을 이씨가 권유한 주식에 투자했다가 실패하자 앙심을 품고 이번 범행을 계획했다. 또 경찰수사 과정에서 그는 “이씨를 영영 걷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사건과 관련, 이용호씨의 최측근인 오태희 변호사는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은 가지만 아직은 가해자에 대해 말할 단계가 아니”라며 “경찰조사를 지켜
보겠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지난 3월 형 집행정지로 출소한 이씨를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 수년간 이씨의 변호사이자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고락을 같이해온 그는 이씨의 출소시기에 맞춰 인수합병(M&A) 전문기업인 투자회사 오빌홀딩스를 설립했다. 또한 이 회사 대표인 오 변호사는 지인들에게 이씨를 “우리회사의 고문”이라고 공공연히 소개하곤 했다. 이씨가 줄기세포 사업 참여를 타진하기 위해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만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용호·최규선·전대월 컴백
김대중 정부시절 각종 이권에 휘말려 2003년 12월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최규선씨 또한 에너지 사업자로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 말 최씨는 부인 손모씨를 통해 코스닥 IT업체인 서원아이앤비(현 유아이에너지)의 지분 10.17%를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또한 최씨를 위해 기꺼이 들러리를 서준 인사들도 그 면면이 화려하다. 일례로 유아이에너지의 감사는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제프리 존스 전 회장은 최근 유상증자 참여로 19억8000만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또 이 회사 고문으로는 미 국방장관 출신 프랭크 칼루치 칼라인그룹 명예회장, 미 국무부 차관 출신 니콜라스 벨리오츠 주 이집트 대사, 한반도 전문가인 버클리대학의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 등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밖에 검사 출신 강호성 변호사와 박웅서 전 삼성그룹 고문도 각각 사외이사와 감사로 영입됐다.
그간의 사업성과 또한 ‘놀랄 노’자다. 특히 이라크에서 수주한 각종 사업실적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 최규선씨는 회사를 설립함과 동시에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로부터 2억6000만달러(2450억원) 규모의 발전설비 공사를 수주한데 이어 멕시코만 해상 유전개발에 투자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또 이라크 노칸 그룹과 유전개발을 위한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일단 현금화된 실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유아이에너지는 올 상반기에도 엄청난 적자(순손실액만 59억원)를 기록해 실망감을 키웠다.
‘오일게이트’의 핵심인물이었던 전대월씨도 지난해 8월 러시아 석유회사 톰가즈네프티의 대표가 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전씨는 특검에 따라 특가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6개월 남짓 옥고를 치른 뒤 무일푼이 된 전씨가 재기하는 데 들어간 자금은 1만 루블(37만원)이 전부였다. 그러나 톰가즈네프티가 사할린 유전사업권을 따내면서 이 회사의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높아졌고, 전씨 또한 1000억원대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자본금으로 전씨는 지난 5월 코스피 상장 자동차부품업체인 ‘명성’을 인수, 사명을 케이씨오에너지로 변경하고 사할린 유전개발에 나섰다. 러시아 유전개발에 참여했다가 오일게이트에 연루돼 꿈을 접어야만 했던 전씨로서는 또 한 번의 도전인 셈이다.
#주요 게이트 사건
DJ 재임기간 꼬리 물었던 ‘3대 스캔들’
▲이용호 게이트〓정현준 게이트 수사가 일단락되면서 곧바로 터진 사건이 ‘이용호 게이트’다. 이용호 삼애인더스 회장이 1996년 이후 인수한 기업 주가가 크게 오르기 시작했고, 2000년 4월 금융당국은 이상 기류를 감지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같은 해 5월 검찰이 이용호씨에 대해 횡령 혐의로 영장을 청구하면서, 이 사건의 실체가 윤곽을 드러냈다. 이용호씨는 국가정보원 보물선 인양사업 정보를 빼내 삼애인더스 주가를 조작, 250억여원의 시세차익을 챙겼고 계열사 자금 680억원을 횡령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고위 검찰간부, 국정원 고위 간부, 실세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벌인 혐의로 2001년 9월 구속됐다. 대검찰청에는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감찰본부가 꾸려졌고, 친동생이 연루된 신승남 검찰총장 등 고위 검찰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사태로 이어졌다.
▲진승현 게이트〓‘진승현 게이트’는 이용호 게이트와 비슷한 시기에 터져 나왔다. 2000년 11월 금감원은 MCI코리아 진승현 부회장 이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열린금고’에서 377억여원을 불법 대출받은 사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진씨가 열린금고 등에서 2300억여원을 불법 대출받고 리젠트증권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확인,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100억원대 비자금의 행방과 정·관계 로비설을 속시원하게 밝히지는 못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국정원 간부 출신인 MCI코리아 김재환 전 회장이 정치인에게 5000만원을 건네고 정성홍 당시 국정원 경제과장에게 4000만원을 빌려줬다고 진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진승현 게이트가 실체를 드러냈다. 검찰은 진씨에게 구명로비 명목의 돈을 받은 혐의로 김은성 국정원 2차장과 정성홍 경제과장을 구속 기소하면서 재수사를 종결했다.
▲최규선 게이트〓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시킨 최규선 게이트는 최씨의 비서가 시민단체 인터넷게시판에 최씨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이유는 임대 계약과 관련한 두 사람의 사소한 갈등. 그러나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씨와 야당 총재, 조지 소로스 등 외국 저명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꿰여 나왔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최규선,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송재빈 타이거풀스 대표, 김홍걸씨 등은 체육복표사업자 선정과정에 개입해 뇌물을 주고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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