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공백 농협은 지금…
회장 공백 농협은 지금…
  • 현유섭 
  • 입력 2007-09-06 09:42
  • 승인 2007.09.06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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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근 회장 구하기… 충성 봇물

무죄 탄원서 제출. 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법정에 서면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연례행사다. 과연 탄원서는 총수들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농협에도 탄원서 바람이 불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정대근 농협 회장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정대근 회장의 1심 재판을 앞두고 지역 조합장에게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정 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진 검찰의 상고, 결과는 유죄였다. 농협은 1심의 결과에 따라 2심에서는 탄원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연 유죄 선고 이후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다시 탄원서 카드를 내민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가운데 지역농협 노조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농협을 둘러싸고 불고 있는 탄원서에 대한 시선과 구조조정에 대한 내막을 짚어본다.


‘농협은 정부기관이 아니다.’ 최근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및 그 회원 조합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농협의 운영전반에 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체로 볼 수 없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농협측의 입장이다.

국가 또는 자치단체로부터 자본금과 출연금, 보조금을 각각 50%이상 출연, 지원받은 기업체라는 ‘정부관리기업체’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1988년과 1999년 두 차례 농협법 개정으로 임원 임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없는 만큼 국가의 지배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농협의 주장은 서울고법 형사4부의 정대근 회장에 대한 유죄결정에 대한 반박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4부는 지난 7월 농협중앙회 사옥을 파는 대가로 현대차그룹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 회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앞서 정 회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2차 탄원서 제출 불안감 고조

최근 재계 총수들이 법정에 서면서 법원의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가 잇따르고 있다. 정대근 회장과 보복 폭행 혐의로 재판 중인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농협노조 등에 따르면 지난달 초 농협중앙회 이사회 개최 직후 시점을 전후해 정 회장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지역 조합장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가 변호인단을 통해 대법원에 제출됐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번 탄원서는 지난해 정 회장의 1심 재판 과정에 작성된 탄원서에 이어 2번째다.

법무부에 제출된, 농협을 민간기업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농협중앙회의 의견서와 탄원서가 정 회장 법원 판결에 대한 농협 차원의 법리적 해석으로 이해되고 있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탄원서와 의견서는 농협중앙회 일부에서 불고 있는 충심(?)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1심에서 정 회장의 무죄가 선고된 이후 이렇다 할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2심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1심 무죄판결이 이어질 것을 확신한 것으로 보인다. 2심에서 별도의 탄원서가 제출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난 7월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이후 지역 농협 조합장을 대상으로 탄원서가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협중앙회 일부에서 정 회장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내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농협이 법무부에 농협 자체를 민간기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한 것도 내적 위기감의 발로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탄원서가 작성됐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다”며 “농협 차원에서 조합장들에게 탄원서를 돌린 일은 없지만 자발적인 탄원서는 작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지역농협은 구조조정 걱정

반면 지역농협 근로자들은 경영공백이 아닌 다른 위기감을 갖고 있다. 중앙회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다.

농협중앙회는 최근 2015 비전 선포식을 통해 새로운 CI를 내놓는 등 종합금융그룹으로 눈을 돌렸다. 또 외환은행 매각 지분 인수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내년부터 새로운 자기자본비율기준이 적용되면서 지역농협의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등 지역농협근로자들이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전국농협노조가 예상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실태는 무엇일까.

전국농협노조는 새로운 자기자본비율이 적용되면 지역 농협 신용대손충담금 적립기준 강화와 적립비율이 상향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농협 30%이상이 기존 신용대손충당금의 적립비율 상향 조정으로 적자 결산이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국농협노조측의 입장이다.

그러나 한미 FTA 등 농촌 경제가 죽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농협이 신용사업 등 실질적인 수익을 찾기는 힘든 실정이다.

때문에 경영부실 대상 지역농협이 다수 발생하고 농협법과 농협구조개선법 등으로 지역 농협에 대한 통폐합 명령이 내려지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상당수 지역농협은 계약이전이나 사업 양도 등을 통해 청산철차를 밟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지역농협 근로자들의 임금삭감과 강제 구조조정은 불 보 듯 뻔하다는 것이 전국농협노조의 입장이다.

농협중앙회가 지난 2004년부터 지역 농협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조정 방침을 세우고 경영진단국까지 신설하는 등 상당수의 지역 농협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국농협노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국농협노조는 새롭게 적용되는 자기자본비율기준에 대한 문제제기 등 관련 단체들과 공동 행동을 통한 투쟁을 전개할 방침이다.

전국농협노조 고위 간부는 “중앙회가 금융종합그룹으로 경영방침을 정하면서 지역농협에게 자립경영을 압박하고 있다”며 “농촌이 죽어가는 마당에 지역 농협이 수익사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 “지역농협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단행되면 농민 정책이 흔들리는 문제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노조가 걱정하는 구조조정은 너무 앞서가는 생각이다” 며 내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 측의 불안감을 일축했다.

현유섭  HYSO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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