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이 1년 7개월 만에 ‘컴백’해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올 4월 3일 대상홀딩스는 박현주 대표이사 체제에서 박용주 신임 대표이사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재계는 이번 인사에 대해 임 명예회장 부부의 경영권 바통터치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임 명예회장은 구속수감 중에도 대표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이러한 가운데 당시 임 명예회장의 변호사 선임 비용 및 소송비용 일체가 그룹 차원에서 제공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일 전망이다.
대상그룹 창업자인 임대홍 선대회장도 매스컴 등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은둔형’ 기업인이었듯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도 외부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건 단 두 번 밖에 없다. 바로 장녀인 세령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결혼할 때와, 비자금 조성 건으로 검찰에 출두할 때다.
하지만 그의 두 번째 외출은 1년 7개월이란 긴 시간동안 그에게 세상의 빛을 빼앗아갔다. 비자금 조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영어의 몸이 된 까닭이다.
임 명예회장은 구속 당시부터 화제를 뿌렸다. 1998년 서울 방학동의 미원공장을 전북 군산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비자금 219억6000만원을 조성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실형 받았지만, 당초 검찰수사는 임 회장을 비껴갔다. 검찰은 임원급만 기소했고, 임 회장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던 것.
특명 회장님을 지켜라
하지만 이는 더 큰 화를 불러왔다. 검찰에 대한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인 것. 특히 임 회장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과 사돈지간이고, 불기소 처분을 내린 인천지검의 직전 검사장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남인 홍석조 검사라는 점에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당시 임 명예회장을 둘러싼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비자금 사건으로 인한 일체의 소송비용이 과연 어디서 지불됐는지에 이목이 집중됐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임 명예회장에 대한 의혹은 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2007년 여름호 판례평석을 통해 모든 의문이 풀렸다.
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임 명예회장은 비자금 사건이 터진 직후 책임을 지고 대상그룹 대표이사직에서 순순히 물러났다.
그러나 이러한 ‘액션’은 꼼수에 불과했다. 당시 대상그룹은 대표이사가 회사를 위한 탈세행위로 인해 형사재판을 받을 경우 그에 따른 변호사 선임 비용 및 벌금을 회사에서 부담한다는 어이없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임 명예회장은 대표이사직을 내놓는 동시에 이사회의장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올려놨다. 이러한 임 명예회장의 발 빠른 행동 또한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퇴직금은 이사에 대한 정상적인 보수지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
이후 그는 비자금 조성으로 인한 형사소송 비용 일체와 변호사 선임 비용, 법원으로부터 부과 받은 거액의 벌금 등을 포함한 퇴직위로금과 요양비를 회사에 청구했다. 임 명예회장의 이러한 요구는 주주총회결의를 거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탈세행위를 했을 때는 대표이사였지만 퇴직위로금을 지급할 때는 대표이사가 아닌 이사였고, 이사회의장을 맡고 있는 이사이기 때문에 회사의 자금으로 벌금 및 변호사비용을 보전하는 퇴직위로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상법 제 400조에 따르면 이사의 임무해태로 인한 책임을 면제하기 위해서는 의결권 없는 주주까지 포함해 총주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복귀는 구렁이 담 넘듯
그런 임 명예회장이 1여년간의 수감생활을 접고, 올 2월 특별사면을 받아 경영일선에 ‘컴백’해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임 명예회장은 사면 이후, 서울 군자동의 대상홀딩스 사무실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서울 용답동에 위치한 대상그룹 본사 집무실에 간헐적으로 출근해 현안을 보고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대상그룹은 이 같은 전망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자칫 최근 일고 있는 반기업ㆍ반재벌 정서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다.
대상그룹 관계자는 임 명예회장과 관련된 퇴직위로금에 대해 “퇴직위로금이 뭔지도 모르겠고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어 관계자는 “대상홀딩스 공동대표로 이름이 등재되어 있긴 하지만 전문경영인이 있는 만큼 전혀 출근을 하지 않는다”며 “제품 브랜드를 알리기에도 바쁜 마당에 오너에 관련된 일일한 사항까지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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