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와 건설교통부가 ‘부품자기인증제’ 도입 여부를 놓고 극심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부품자기인증제도는 몇 해 전부터 부품에 대한 안전기준 마련에 대한 필요성에 따라 정부가 법안 개정을 통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제도다. 정부쪽과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철저한 사후관리가 되면 저질 불량 부품 유통을 근절시켜 소비자 안전과 함께 시장에 경쟁을 유발 가격인하를 이끌어 낼 수 있어 도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부품업계는 저질 수입부품들에게 국내 유통의 길을 터줘 소비자의 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그 진상을 살펴본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부품자기인증제는 부품을 생산하고 수입하는 업체가 스스로 건설교통부가 정한 품질 및 안전기준에 맞췄다는 인증마크를 붙인 뒤 사후에 결함이 발견되는 부품에 대해 제작사가 리콜 하도록 하는 일종의 사후 인증제다. 유통된 부품을 정부가 샘플을 수거한 후 제품불량 여부를 판단하며 이를 통해 소비자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대상은 우선 시범적으로 주요 자동차 부품인 타이어, 림, 브레이크 파이프, 등화장치, 브레이크액, 창유리, 유아용 보호장구 등 16개 부품을 법과 제도의 틀 안에 두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그러나 도입이냐 도입 반대를 놓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 진상을 파헤쳐 본다.
자동차 부품업체 공룡 현대모비스의 실태
현대모비스는 국내 자동차부품시장 70%를 점유하고 있으며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인 현대·기아차 부품을 거의 독점공급하고 있다.
완성차에 장착된 부품 또는 완성차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부품업체가 지정 정비업체에 납품한 일반 순정부품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연관이 있는 부품을 통째로 만들어 모듈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1만개 협력업체를 끌어안고 있으며 이를 통해 153개 차종에 112만개 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부품 개발뿐 아니라 원자재와 설비재 등을 구입해 시장에 유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부품에 대한 명확한 안전기준이 없는 채로 자동차 업체에서 순정부품임을 표시를 믿고 사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한국자동차부분정비사업조합과 일부 경정비업체가 주축이 돼 자체 브랜드의 소모성 부품을 인증시키는 카포스가 비순정부품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순정부품이 출시되지 않는 틈새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최근 들어 머플러 등 카포스가 틈새시장으로 정한 곳
에 경쟁품을 출시하며 파고 들어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품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내 대다수 부품업체들은 메이저 모듈 부품업체와 납품 계약 해지 등 생존권을 두고 지배·종속 관계에 놓이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현대모비스라는 홀로그램이 붙느냐 안붙느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몇 배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그간 소비자들과 시민단체들로부터 현대모비스 등 국내 자동차 대형 부품사가 그 동안 부품유통시장을 독점, 부품가격을 지나치게 비싸게 받은 데 대해 소비자들로부터 항의가 끊이지 않아 왔다.
이러한 시장상황이 지속돼 왔던 것에는 중국 및 동남아산 저가·불량부품이 국내 시장에서 유통이 만연돼 왔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현대모비스와 같은 대형 부품업계가 부품 자기인증제의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이면에는 경쟁체제의 봉쇄와 유통시장을 통한 이익 감소를 막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지적들도 쏟아지고 있다.
정부, 부품인증제 도입으로 경쟁유발 가격인하
미국은 타이어 등 16개 부품에 대한 자기인증제를, 유럽은 22개 부품에 대해 사전형식승인과 강제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최근 중국도 16개 부품에 대해 사전승인 및 강제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건교부가 부품자기인증제를 도입하려고 하는 것은 소비자의 안전과 함께 다양한 가격대의 부품을 유통시켜 시장경쟁을 유발해 현대모비스와 같은 대형 부품사가 부품가격 인하 및 독점 현상을 완화시켜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 위주의 시장으로 전환시키겠다는 판단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한 건교부는 현 제도아래에서는 부품업계가 정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부품과 관련한 소비자를 위한 정책 마련에 난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건교부의 의도대로 부품 자기인증제가 도입되면 완성차 업체는 인증마크가 부착된 부품만 장착할 수 있고 인증마크가 붙은 부품만 애프터서비스 시장(A/S 정비업체)에 유통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정부가 지정한 시험기관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인증마크가 붙은 부품을 수시로 수거해 테스트한 뒤 안전기
준에 못 미치면 제작·판매 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
주무부서인 건교부 자동차팀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의 최대 안전기준의 60% 미만인 부품은 시장에 못 들어오게 된다. 부품 인증제는 부품 유통시장을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건교부 자동차팀 관계자는 “자동차 주요 부품에 대한 안전기준을 마련해 저질 부품의 제작·판매를 방지하고 리콜과 보상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부품 자기인증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품 인증제를 실시하면 꼭 순정품을 쓰지 않더라도 일정한 안전기준에 부합한 부품을 순정품보다 더 싼 가격에 소비자들이 구입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자동차부분정비조합은 “부품 인증제가 도입되면 중국 등에서 짝퉁 저가 부품은 퇴출되고 인증 기준에 맞는 품질을 갖추기 위해 중국산 가격이 올라가서 국내 부품업계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손해보험협회도 “값비싼 순정품과 품질이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비정품 부품 사용이 활성화돼 과도한 자동차 수리비가 절감될 수 있다”며 제도의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등 부품업계 반발 이면
현대모비스와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대한타이어공업협회 등은 부품자기인증제 도입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부품업계는 부품 인증제가 국내 부품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외국산 부품을 믿고 써도 좋다고 정부가 인정해주게 돼 저질 부품이 대량 수입·유통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품자기인증제가 소비자안전을 위한 사전인증이 아닌, 사후 관리제도여서 리콜 등의 조치가 취해져도 이미 시중에 저질 불량 부품이 충분히 유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미국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제도는 건교부가 도입하려는 제도와는 엄연히 차이가 있고 미국 내에서도 최근 이 제도가 문제시 된 바 있다”며 “일부 중국산 부품은 가내 수공업 형식으로도 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짝퉁부품이 무차별 유통되는 길을 열어준다면 결과적으로 한국 자동차 이미지에 악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싸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순정품은 똑같은 부품이라도 A/S 시장에 유통될 때는 물류비용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순정품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완성차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부품업체가 완성차 쪽의 요구에 따라 정부 기준보다 훨씬 더 높은 안전 수준을 확보하고 있으며 철저한 사후관리 차원에서 공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모비스가 최대 회원사인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은 부품 인증제는 정부가 정한 최저 안전기준에 불과하며 독자적인 부품 생산업체가 만든 부품은 비록 정부의 최소 안전기준을 통과해 자기 인증마크를 붙였더라도 자동차 설계·구조에 따라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이미 산업자원부가 시행하는‘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와 건교부의 부품 자기인증제는 중복되는 이중 규제라며 완성차 업계로부터도 철저한 검사를 받고 있음에도 이중 삼중으로 규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이익 직결 법안 국회상정이 첫 관문
건교부는 부품 자기인증제 도입을 담고 있는 ‘자동차 관리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이 법안은 올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건교부가 지난 4월과 6월 두 차례 국회에 이 법안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업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달에는 건교부와 관련업계가 제도 도입을 위한 공청회도 개최한 바 있으나 도입이냐 반대냐를 놓고 팽팽한 입장차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건교부는 이달 다시 정기 국회에 법안을 재상정할 예정이다. 건교부는 그간 국회의원 들을 대상으로 충분히 제도에 대한 설명을 했기 때문에 제도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본지 취재결과 이 제도의 도입을 심의할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이달 3일 현재 각 정당별 간사 선정 및 법안 소위 등 향후 일정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는 최근 민주신당 창당 등 정치가의 지각 변동에 따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실상 이번 정기국회에서의 통과여부도 미지수다.
한편, 이 제도가 정식으로 도입이 된다면 성공 여부는 철저한 사후관리 여부에 달려 있다.
결함이 발생했을 경우 수입업체는 리콜 할 금전적인 여력이 없다고 배짱을 부리고 부품 생산업체 역시 제품의 품질을 확신한다는 입장을 밝힌다면 부품 인
증제의 리콜 조처는 실효성이 없게 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자동차 시민연합’ 임기상 대표는 “정부가 값싼 중국산 부품들에 대한 규제가 분명히 필요한 시점에서 100%를 만족할 수는 없겠으나 저가 부품을 판매한 채 리콜은 하지 않고 내빼는 업체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방안이 보완된다면 부품 인증제 도입은 소비자를 위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장익창 sanbada@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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