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입’ 열면 자유로울 이 없다
그가 ‘입’ 열면 자유로울 이 없다
  • 김종민 
  • 입력 2004-05-25 09:00
  • 승인 2004.05.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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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의 정치인생을 접고 정계를 은퇴한 자민련 김종필(JP) 전 총재가 이제는 국회가 아니라 검찰청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비공개였지만 검찰이 삼성으로부터 15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JP를 소환조사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향후 JP의 혐의가 측근의 폭로로 밝혀진 만큼, 짙은 ‘배신감’에 휩싸인 현재의 상태에서 출두할 경우 정치인생 40년 동안의 ‘비사’를 폭로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JP의 최측근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주군’과의 거래를 입에 올린 덕분에 ‘3김 정치’에 발을 담았던 정치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3김 정치’라는 말로 대변되는 한국 정치사의 한 켠을 장식했던 JP. 그가 이번엔 벼랑 끝에 서게 됐다.

JP는 지난 15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한 것으로 전해졌다.검찰에 따르면 김 전 총재는 소환 조사에서 관련 혐의를 대체로 시인했으며, 검찰은 이에 따라 김 전총재가 고령인 데다가 정계은퇴를 한 점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재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삼성으로부터 채권 15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처럼 10선 실패로 정계은퇴를 선언, 더 이상 남은 것도 없어 보이는 JP를 벼랑 끝으로 내몬 장본인은 그의 측근 중의 측근이라는 김용채 전 건설교통부 장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전 장관은 항소심 재판부에 “문제의 돈을 JP에게 건넸다”는 요지의 탄원서를 제출한 것이다.정치권 인사들은 “JP와 40여년 정치 여정을 함께 해 온 김전장관이 그를 ‘배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자민련의 한 인사 역시 “자기가 살기 위해 평생 주군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경을 전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인지 JP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에 대해 측근들에게조차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김전장관이 자신의 정치자금 대목에 대해 ‘배신’ 행위를 한 사실 때문에 충격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JP의 행동으로 인해 정치권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측근의 변절과 배신에 큰 실망을 느낀 그가 40년 동안 정치활동을 하면서 함구하며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수많은 ‘비사’를 폭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 이와 관련 민주당 한 인사는 “JP가 40여년 동안 정치를 했으니 그와 얽히지 않은 정치인이 여야를 막론하고 누가 있겠으며 그가 마음 속에만 담아 두었던 각종 비리들이 얼마나 많겠느냐”며 “이회창씨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도 다치는 수가 있고, 그 파장은 DJ(김대중 전 대통령)나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까지 미칠 수가 있다”고 귀띔했다.

JP의 한 측근 인사 역시 이와 관련해 “JP가 정계은퇴 선언 이후 여권과 검찰에서 이런 식으로 자신을 푸대접하는 것에 상당한 반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JP가 입을 연다면 정치권의 비사가 줄줄이 나올 수 있는 ‘폭탄 선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JP를 벼랑 끝으로 내몬 김용채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의 내용만 봐도 그 같은 상황은 대략 짐작이 간다. 김전장관은 탄원서에서 “2000년 당시 자민련 총재이던 이한동 국무총리가 나서 한갑수 농림수산부 장관, 정우택 해양수산부 장관, 한국토지공사 사장이던 본인 이렇게 4명이 각각 10억원씩 정치자금을 만들어 당의 어려움을 돕자고 제안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자민련의 적자 메우기에 고위직 인사들이 동원됐다는 주장인 것이다.

게다가 이는 JP, 나아가 3김이 어떻게 정치자금을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봐야한다는 분석이다.특히 JP의 만년 2인자 처세가 결코 ‘속빈 강정’이 아님도 확인시켜준다. 사실 김전장관의 탄원서에서 지목된 4인은 모두 DJP 연대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JP의 도움을 얻어 국민의 정부 시절 고위직에 올랐다. 물론 이들 이외에 자민련 인사들 다수가 JP의 낙점에 목을 맸다고 한다. JP는 이런 인사권을 통해 당을 통제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김전장관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주군’과의 거래를 입에 올린 덕분에 ‘3김 정치’에발을 담았던 정치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한편 자민련 내 법조인 출신인 김학원 의원과 조부영 부총재, 변웅전 전 의원 등이 사태 해결을 위해 법적 대리인 구성 등 법률적으로 대응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JP가 자금 수수 상황에 관해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있어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해진다.10선의 과욕에서 비롯돼 민심마저 등진 상태에서 정계를 은퇴, 측근에게 마저 ‘배신’당한 JP. 그의 어두운 말년이 시작된 것이다.

김종민  kjm9416@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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