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최근 이 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세일즈맨들 사이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일컬어지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다. 몇 해 전, 건설업 진출을 선언한 윤 회장은 최근 극동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66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을 배팅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2위 업체보다 무려 1000억원이나 더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재계 호사가들은 ‘너무 비싸게 샀다’는 지적에서부터 ‘야무진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무디다’는 평가까지 늘어놓으며 설왕설래하고 있다.
부동산 종합정책이라는 ‘악재’로 건설경기가 한창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때인 지난 2005년 8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돌연 건설업 진출을 선언하며 개인 지분 90%를 투자해 웅진건설을 설립했다.
그러나 “신성장 동력으로 키울 것”이라는 윤 회장의 포부와는 달리 자본금 30억원 규모의 웅진건설은 2년 연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 웅진건설의 이름으로 몇 차례 아파트를 분양했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이에 윤 회장은 “M&A를 통해서라도 건설업을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며 공공연히 대형 건설사 인수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후 웅진그룹은 선장의 뜻을 받들어 코카콜라보틀링·쌍용건설·벽산건설·대우건설 등 내로라하는 건설사 인수전에는 반드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웅진그룹은 막판 스퍼트를 발휘하지도 못한 채 중도에서 번번이 미끌어지고 말았다.
과잉의욕이 우려 낳아
이러한 ‘설움’ 때문인지 웅진그룹은 더욱 더 눈에 불을 켜며 대형 건설사 인수에 의욕을 내비쳤다. 그러던 찰라 극동건설이라는 기막힌 먹이감이 웅진그룹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것.
당시 극동건설 입찰에 참여했던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달 초 실시됐던 1차 입찰에서 상위권 밖으로 밀려난 웅진그룹이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엔 반드시 우리가 인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대단했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웅진그룹의 과잉의욕은 극동건설 입찰전에서 비로소 빛을 발했다.
업계에 따르면 극동건설의 인수 예상금액은 총자본 3189억원에 ‘+알파’를 해도 4000억원내외가 적당했다.
그러나 웅진그룹은 ‘극동건설만큼은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의욕에 앞서 인수 예상금액보다 2600억원 높고, 2위 업체보다도 1000억원 많은 6600억원을 제시, 론스타가 소유한 극동건설 주식 98.14%를 전량 매입했다. 극동건설 1주당 2만5100원에 사들인 셈.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고가매입 논란에는 ‘먹튀’ 론스타의 입찰방식도 크게 한몫했다. 론스타는 극동건설을 팔면서 이른바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을 활용, 개별협상을 통해 가격을 더 올려 부르도록 유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로써 론스타는 1700억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한 이래 총 710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게 됐다.
극동건설 인수 논란과 관련, 웅진그룹 측은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극동을 비싸게 주고 인수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주력 계열사 웅진코웨이의 시스템 가구 부문 등 사업 영역 전반에 걸쳐 상승(시너지)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한 관계자는 66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제시한 것에 대해 “경쟁과정에서 과잉된 측면도 있지만 극동의 경우 토목부문에 강할 뿐 아니라 현재 수주 잔고도 1조8000억원이나 남아있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계자는 이어 “우리가 2위에 비해 1000억원이나 비싸게 주고 샀다는 기사를 봤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알고 있기로는 2위와 근소한 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관계자는 2위의 입찰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만한 가치 있나
‘웅진그룹 극동건설 인수’ 소식을 접한 업계는 과연 극동건설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의아해했다.
1947년 설립된 극동건설은 74년 국내 5대 건설사로 성장했지만 97년 외환위기 고비를 넘지 못하고 98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6년여만인 2003년 4월, 극동건설은 론스타에 인수돼 ‘먹튀 논란’의 정점에 서게 됐다. 이 과정에서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직도 국민들 머릿속에 잠재돼 있다.
이밖에 잦은 주인 교체로 인한 나쁜 인식과 예상보다 높은 인수대금 등도 웅진그룹이 헤쳐나가야 할 과제다. 또한 극동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스타클래스’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웅진그룹이 매긴 가치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론스타 게 섯거라”
외환은행 지분과 극동건설 매각으로 ‘먹튀’ 의혹을 받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이를 막으려는 한국 정부 간에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그 일환으로 최근 국세청은 론스타가 매각한 극동건설에 대해 전격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극동건설 관계자 또한 “10여명의 국세청 직원들이 예고 없이 찾아와 영업 및 재무자료 등 세무관련 서류들을 압수해갔다”며 조사 사실을 시인했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의 배경을 밝히진 않았지만 론스타가 지난달 22일 극동건설을 웅진그룹에 6600억원을 받고 판 뒤 얻은 차익에 대한 과세 증빙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론스타 측은 “벨기에에 설립한 ‘KC홀딩스’라는 법인을 통해 극동건설을 매매해 극동건설 매각 차익에 대한 세금을 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과 벨기에가 맺은 조세조약에 따르면 한국에 고정사업장을 갖고 있지 않은 벨기에 국적의 개인이나 법인이 유가증권 양도차익을 거두면 거주지 국가(벨기에)에서 과세하도록 되어 있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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