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에 내 건물 짓는 게 잘못인가요”
“내 땅에 내 건물 짓는 게 잘못인가요”
  • 장익창 
  • 입력 2007-06-26 09:42
  • 승인 2007.06.26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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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동 금싸라기 땅 재개발 방치 숨은 이유

수도 서울의 중심지 경복궁 앞 중학동 77번지 일대 2469평 규모의 금싸라기 땅에 대해 종로구청이 지난 2000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한 지 7년째를 맞고 있지만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논란이다. 이곳은 낡은 한옥 몇 채와 주차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부지 인근은 제일모직, 한국일보, 국세청, 대림산업, 일본대사관, 문화관광부 등에 둘러싸인 채 흉물스런 모습만 간직하고 있다. 이 땅에 얽힌 사연은 무엇일까.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종로구청은 2002년 당시 시행사인 KCD(현 인크레스코)에 중학동 재개발 사업 시행인가를 내줬다. 그러나 이후 소송에 휘말린 이 사업은 3년이란 장기간을 거쳐 지난 2005년 7월 대법원이 ‘인가를 취소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림으로써 중학동 재개발사업은 5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이 사업을 원점으로 돌린 사람은 중학동에 미진빌딩을 소유하고 미진통상이라는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최영환 회장(81)이다.

풍수지리학계의 대가 최창조 서울대 전 교수는 “서울 북악산의 정기는 경복궁(내명당)을 통해 기운이 뻗어나가다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정점에 달한다. 동십자각을 건넌 정기는 일본대사관 자리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는데 이 지점이 바로 서울의 외명당”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의 처가는 미진빌딩이 있는 자리에서 이미 140년간이나 거주해 온 서울 토박이다. 결혼 이후 줄곧 이곳에서 생활한 최 회장은 바로 옆 일본대사관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경복궁 맞은편에 일장기가 걸려 있고 북악산 기운이 그곳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중학동 일대의 땅을 꾸준히 사들였고 현재 그는 도로변까지 포함해 640평 정도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일생의 꿈은 중학동 재개발 구역 내 일본대사관을 압도하는 메머드급 컨벤션 센터를 지어 민족정기의 유실을 막자는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종로구청 사업인가

종로구청이 KCD에 재개발사업 시행인가를 내줄 당시에는 법 상 해당 구역에 토지, 건축물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면적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토지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KCD는 전체 토지의 40.9%, 국공유지를 제외한 사유지의 29.73%의 동의만을 얻어낸 상황이었다. 그러나 종로구청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6개월 이내에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조건으로 2002년 10월 KCD에 사업을 인가했다.
최 회장에 따르면 재개발 구역 사업시행 인가 신청 만기일인 2년째 되는 해 KCD는 24평짜리 땅을 사서 사업인가 신청을 냈다고 한다.

알박기를 통해 무려 100배의 땅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종로구청이 승인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당시 K사와 실제소유자인 송모씨는 중학동 주민들에게 나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고 다닌다고 주민들에게 소문내고 다녔으며 민족정기가 서린 땅에 빨
래를 너는 주상복합을 짓겠다고 해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군인공제회 600억원 자금 투입 이면 논란

이후 K사는 재개발 구역 내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2002년 11월 한달 동안 K사가 사들인 땅은 1284평, 군인공제회로부터 투입된 600억원이 동원됐다. KCD가 사들이기 전 해당지역의 공시지가는 평당 1000만원이 조금 넘는 약 150억원 정도 수준이었다고 한다. KCD는 평당 적게는 3000만원, 많게는 1억원 등으로 단기간에 사들여 땅값만 올려놨다.

군인공제회는 사업 완료 후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다는 조건으로 KCD에 투자했고 이곳에 주상복합이 들어서면 충분한 실익을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추진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의혹이 가시지 않는 부분은 600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군인공제회가 사업인가도 받지 않은 KCD에 앞뒤도 가리지 않고 투자했다는 것이다.

또한 재개발 사업이 진척이 안 돼 군인공제회는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 당시 연리 13%가 적용됨을 감안할 때 1년 80억원의 이자가 불어나 현재 군인공제회는 900억원의 돈이 물려 있는 상태다. 만일 KCD사가 경영이 악화돼 부도가 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인공제회가 떠안게 된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한때 군인공제회가 은인 역할을 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인 금호건설이 이 사업에 대해 1500억원의 지급보증을 서게 된다.

KCD는 그간 실제 소유자인 송모씨를 제외하고 이른 바 바지 사장들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 경찰 조사결과 당시 사장인 장교출신 S모씨의 경우 감사원, 군인공
제회 고위 임원들과 갑종간부 동기생으로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 회장이 뜻을 굽히지 않자 KCD 측의 회유 이후 본격적인 협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 회장 소유 미진빌딩 내에 입주해있던 국민은행에 이상한 사람들이 자주 출입해 난동을 부리자 은행은 사무실을 옮겼다. 그는 당시 “죽여 버리겠다.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전화를 수차례 받았다고 했다.


최 회장 승소했으나 내 땅에 내 건물 신축 요원

보다못한 최씨는 KCD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며 3년이란 소송기간을 통해 KCD의 재개발사업 시행인가를 2005년 3월 최종 취소시켰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KCD의 인가신청은 소정의 면적요건과 다수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적법하고, 따라서 종로구청의 사업인가는 위법하다”는 것이었다. 종로구청 역시 2005년 8월 고시(제2005-49호)를 통해 KCD(현 인크레스코)를 대상으로 사업시행폐지인가를 내렸다.

승소 이후 최씨는 2005년 자신의 땅에 컨벤션 센터를 짓게 해달라며 종로구청에 건축허가를 냈으나 그해 7월 구청으로부터 반려 당했다.

구청은 최 회장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땅 일대의 전체 소유자가 아니며 재개발법이 도시정비법으로 바뀜에 따라 기존 3분의 2에서 5분의 4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회장 조카인 시행사 황금벌 박성필 회장은 “KCD에는 당시 부적법해도 인가했으면서 우리에게는 왜 안되는 것인가”라 반문하며 “심지어 구청 관계자로부터 주상복합 사업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사업 인가를 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고 성토했다.

KCD에서 사명이 바뀐 인크레스코는 이번 사업에 대해 재인가를 받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재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상 22층짜리 주상복합을 짓겠다는 것이나 문화재 보호법상 지상 16층까지로 고도제한을 받은 상태다.

종로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인크레스코가 이후 건축계획을 변경해 지난 13일 서울시에서 심의가 통과됐으며 이후 종로구청장이 최종 인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크레스코의 실제사주인 송모씨가 추진하는 사업은 재개발 일대 땅 소유자인 최 회장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시행권과 관련 위법 판결을 받은 종로구청과 인크레스코가 다시 재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송모씨가 최근 보낸 서한에서 대화로 해결하자는 내용을 보내왔으나 민족정기가 서린 땅에 마구잡이식 재개발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미진빌딩은… 이곳은 ‘킹 메이커’ 산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 본사 건물 옆 주유소에서 보면 길가에 인근 지역의 대형 빌딩들에 비해 크지 않은 빨간색 벽돌로 외벽을 한 5층 건물이 눈에 띈다.
이 빌딩이 미진빌딩으로 그간 정치인들에게는 ‘킹 메이커’자리로 유명세를 치러온 곳이다.

최영환 미진통상 회장이 건물 소유주인 이 빌딩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차남 현철씨, 그리고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이곳에서 한때 둥지를 틀기도 했다.

최 회장의 조카로 이곳에 입주한 황금벌 박성필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통령 당선 전 이곳에 입주한 적은 없지만 그의 신주가 있었다”며 “현재는 1층에 한나라당 한 유력 대선 후보 인사 캠프 관계자들이 이곳에 사무실을 입주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8년 완공 이후 YS는 ‘대통령이 되려면 이 건물에 사무실을 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 건물 입주를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이후 YS는 1990년 3당 통합 전후로 2년간 이 건물 4층에 입주했고 그렇게 대통령 소원을 이뤄냈다.

최 회장은 불의에 대해선 단호한 면을 가지고 있다. YS 이후 이 건물 4층은 차남 김현철씨가 사용했다. 그러나 현철씨가 1996년 국정 개입과 뇌물 수뢰 비리로 구속되자 최 회장은 분노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당장 방을 빼고 짐 가져가라”고 했다. 청와대 사람들이 와서 짐을 챙겨갈 때에는 두 부자가 고향 거제도로 내려가 멸치잡이나
하라고 나무랐다고 했다.

중학동 지킴이 최영환 회장의 ‘최씨 고집’은 그의 여생 내내 이 일대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익창  sanbada@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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