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른미래당 ‘조건부 처리’에 국회 비준 사실상 ‘코앞’… 국민 찬성도 높아
추후 北 비핵화 의지 철회해도 경협 통한 대북제재 장치 없어 우려 확산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4.27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가 과연 한반도 평화의 첫걸음일까. ‘허울’과는 달리 ‘퍼주기식 북한 지원’의 포석이라는 우려가 크다. 향후 정국이 바뀌더라도 남북 경제협력을 지속해야 하는 당위가 일부 내용에 포함됐기 때문. 즉 현안대로라면 추후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철회하더라도 북한 지원에 대한 예산 투입을 막을 장치가 마땅치 않다. 이는 남북 경협을 통한 대북제재가 사실상 ‘완전 불능’해지는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이다. 이렇다 보니 이를 ‘속도전’으로 처리하려는 정부·여당의 행보에 우려 섞인 시각이 크다. 북한의 비핵화 이행이 선행되지 않고 비준 동의 처리가 강행될 경우, 그로 인해 발생되는 예산 투입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에서는 이러한 이유에서 판문점 선언에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항구적 평화’란 장막에 가려진 판문점 선언 그 이면을 들여다봤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3개항이 포함된다. 이 중 첫 번째 항목에 철도·도로 연결 등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내용이 담겼다.
정부·여당은 이 같은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처리에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10월 1일 여야 5당 대표 오찬에서 “이제 정기국회가 본격화됐는데 판문점선언을 국회가 비준해 주는 게 중요하다”며 “남북관계가 대립에서 평화공존 시대로 넘어가는 굉장히 중요한 전환기이기 때문에 국회와 각 정당도 시각을 전환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외교는 초당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비준동의안을 표결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가능한 한 여야가 합의해 국회 차원에서 합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보고, 우리가 더 설득하고 납득하는 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지난 9월 26일 ‘조건부 처리’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당의 지지 없이도 판문점 선언 비준이 가능하게 됐다. 민주당 129석,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5석, 민중당 1석에 바른미래당 30석까지 포함하면 비준동의안 통과에 필요한 ‘재적 의원 과반 출석 및 과반 찬성’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 예상 비용 103조 원대에도
국민 78.4% 국회 비준 찬성
정부 여당이 이 같은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여느 때보다 강력 추진하는 데는 법적 장치를 통해 남북 교류 사업을 지속,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문점 선언은 국가와 국가 간 체결한 명시적 합의라는 점에서 국회 비준 동의가 있어야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은 곧 판문점 선언 이행에 필요한 예산 확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즉 판문점 선언이 국회에 비준 처리될 시 이를 이행하기 위한 막대한 예산이 사실상 ‘백지수표’격으로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판문점 선언과 10.4선언 등에서 언급된 10개 분야 경협에 소요되는 비용이 최소 103조 원대가 될 것으로 국회 예산정책처는 분석했다.
현재로서 국민 여론은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에 대체로 찬성하는 모양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9월 30일 발표한 월정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여부에 대해 국민 대다수(74.0%)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반대한다’는 응답은 17.5%에 불과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측은 이와 관련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판문점 선언 국회비준 찬성 응답이 78.4%였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판문점 선언을 국회에서 비준처리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의견에 큰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9월 28~29일 이틀에 걸쳐 유무선 병행(무선 79.2%, 유선 20.8%)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수준, 응답률은 11.1%(유선전화면접 6.7%, 무선전화면접 13.4%)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홈페이지(www.ksoi.org)를 참조하면 된다.
여론조사 ‘비준 동의 여부’만 질문
“세금으로 지원 찬성하냐” 물어야
하지만 정부의 판문점 선언 그 기저에는 ‘퍼주기식 대북 지원’ ‘종잇장 선언문’이 재현될 여지가 있다는 야권의 우려가 크다. 이대로 비핵화 진전 여부와 관계없이 국회 비준 동의가 처리될 경우, 대북 경제 교류·협력 사업이 자칫 ‘퍼주기식’ 경제 지원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
국회 비준을 거친 남북 합의서는 정권이 바뀌거나 북한이 비핵화 이행을 거부할 경우에도 효력을 정지시키기 힘들다. 만약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가 비핵화에 앞서 처리된다면, 추후 북한이 비핵화 이행에 소극적이거나 의지를 철회하더라도 경협을 중단할 특별한 제재 수단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에서는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에 앞서 북한의 비핵화 이행이 선행돼야 한다는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남북 정세가 변화할 때 중단할 수 있는 여지를 둬야 효과적인 대북 제재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실제로 북한 정권은 과거 수차례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다가도 번복, 남북 경협 및 대북 지원이 무용지물이 된 사례가 빈번히 있었다.
이와 관련 이양수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본지 방송인 ‘일요서울TV-주간 박종진’에 출연해 정부·여당의 ‘몰아붙이기’식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 처리 강행에 국민들이 그 효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판문점 선언 비준안에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행정부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내용이 포함된다”며 “그동안에는 현대 등 민간 회사의 투자가 대규모로 이뤄지긴 했어도 국민 세금으로 대규모 대북 지원을 한 적은 없다. 국민 세금으로 북한에 지원하는 것을 (국회가)행정부에 포괄적으로 일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원내대변인은 “만약 (여론조사에서) ‘판문점 선언 비준에 동의하냐’는 질문이 아니라 ‘세금으로 북한에 지원하는 것을 행정부에 포괄적 일임하는 것을 찬성하냐’고 물으면 반대 여론이 더 높을 것이다. 다른 국가사업과 마찬가지로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면 하나하나 국회 승인을 받고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보리에 ‘남북경협 예외 요청’도
‘퍼주기’ 포석? 군사도 ‘무장해제’
앞서 문재인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대북제재 기조 속 남북경협 예외를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퍼주기식 북한 지원’을 위한 비아냥거림이 터져 나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7월 25일 “남북교류 과정에서 대북제재 관련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겠다”면서도, 남북 협력사업의 대북제재 예외 인정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안한 데 대해서는 “안보리 제재 틀 하에서 허용할 수 있는 예외 신청을 하는 것이며, (대북)제재의 틀에 상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후 미국 국무부가 이와 관련 “비핵화와 발맞춰야”한다고 선을 그으며 일단락됐지만, 북한의 비핵화 이행 전 우리 정부의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 착수가 대북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컸다.
게다가 군사·안보 분야에서도 ‘크게 밑진 거래’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6개조 22개 항목으로 구성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해당 합의서에는 ▲군사분계선 1km 이내 감시초소 철폐 ▲5km 이내 사격 훈련 중지 ▲서부전선 20km, 동부전선 40km까지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내용이 포함됐다.
이 중에서도 비행금지구역 설정, 즉 항공 정찰과 관련한 내용에서 논란이 크다.
앞서 북한은 판문점 선언 이후 군사회담에서 ‘정찰기는 MDL 남북 각 60km, 전투기는 각 40km, 무인기(UAV)는 각 20km 구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자’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전투기 등 고정익 항공기는 MDL 남북 각 40km 이내(동부전선 기준·서부전선은 20km) 공역에 진입할 수 없다고 합의한 것. 이와 관련 북한이 ‘60km 정찰 금지구역’을 제안한 뒤 남측에 양보하는 모양새로 ‘40km 정찰 금지구역’을 챙겨가는 ‘흥정’에 성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북한이 비핵화 단계에 착수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측 최전방 군사 대비 태세를 약화시킨다면, 유사시 수도권 방어 등 대응 능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양적 우위를 상쇄하는 대신, 우리 측 첨단 군사 자산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킨 처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양수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국방부에서 이런 얘기가 흘러나온다. 군인들이 협상했다면 이렇게 안했을 거란 말이다. 청와대에서 했으니까 이렇게 된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박아름 기자 pak5024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