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직전 부인에 “구토증세” 호소
자살직전 부인에 “구토증세” 호소
  • 이인철 
  • 입력 2004-05-13 09:00
  • 승인 2004.05.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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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회장,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사장에 이어 박태영(63) 전남도지사마저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했다. 박 지사는 최근까지 서울남부지검에서 비리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아오던 터였고,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란 보도가 잇따른 상태였다. 그러나 두 차례 검찰조사에서 박지사는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세 번째 조사를 앞두고 갑자기 자살을 선택했다. 하지만 유서나 뚜렷한 자살 사유가 밝혀지지 않아 박 지사의 죽음에 대해 ‘심적 부담감’‘억울함에 대한 항의’‘실족사’등 갖가지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 박 지사 자살 배경을 짚어봤다.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 이사장 재직 시절 인사 및 납품 관련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오던 박 지사는 지난달 29일 낮 오후 1시경 서울 반포대교에서 한강에 투신해 숨졌다.이날 박 지사는 부인 이숙희(58)씨의 개인 운전기사인 임청기(63)씨가 운전하는 자신 소유의 승용차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던 중 차를 세운 뒤 곧바로 한강에 뛰어든 것.

‘심적 부담감’·‘항의성’자살(?)

그러나 박 지사의 유서나 뚜렷한 자살동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박 지사 자살 배경으로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검찰수사에 따른 심적 부담감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게 주변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심적부담감에는 건보비리에 관련된 측근들의 검찰진술에 대한 섭섭함과 배신감, 구속등 신병처리 문제의 부담감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 실제 박 지사는 지난 2000년부터 2001년까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시절 납품 과정에서 비리혐의가 드러나 건보공단 전·현직 간부들과의 연루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박 지사는 지난 2월부터 검찰의 내사를 받았고,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직접 소환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박 지사는 두 차례 조사에서 혐의사실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구속된 일부 간부들이 박 지사와 관련된 혐의에 대해 검찰에 결정적인 진술을 해 배신감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박 지사가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는 게 측근의 전언이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박 지사가 지난해 터진 건보공단 비리와 관련 측근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는 모습을 보고 힘들어했다”며 “평소 명예와 자존심을 중요하게 생각해 온 분이라 검찰수사로 인해 큰 상처를 입게 되자 이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박 지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적 입지가 흔들린 것도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 지사는 대통령 탄핵사태가 터지자 4월 15일 민주당을 전격 탈당, 열린우리당 행을 발표했다. 이후 박 지사는 총선이 끝나자 열린우리당 도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하는 등 사실상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검찰의 조사를 받던 박 지사에 대해 최근 ‘입당이 보류된 상태’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박 지사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항의표시가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검찰은 “가혹행위나 강압수사는 절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측근들도 “검찰이 박 지사에 대해 예우를 해 주었다”며 “검찰 수사에 대한 항의차원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실족사’ 가능성

박 지사가 실족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유서가 발견되지 않고 뚜렷한 자살 흔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박 지사의 이날 행적에서 구토증세를 호소했다는 점으로 인해 대두된 주장이다. 실제 박 지사는 이날 부인 이씨의 개인 운전기사인 임씨가 운전하는 자신 소유의 전남57다 2233호 오피러스 승용차를 타고 8시 경 자택을 떠났다. 박 지사는 당초 오전 11시까지 검찰에 출두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오후 1시로 출두가 연기되자 10시경 반포동의 모 호텔에서 변호인, 측근들과 함께 검찰 수사에 대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책회의가 끝나고 자택으로 향하던 박 지사는 ‘속이 불편해 구토증세가 있다’고 부인에게 전화를 통해 호소했고 부인의 권유로 자택 인근의 병원으로 가던 중 반포대교 중간지점에서 차를 세운 뒤 한강에 투신한 것. 당시 상황에 대해 운전기사 임씨는 “박 지사가 ‘구토가 계속 난다’고 해 인근 병원으로 모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가 나려 한다. 바람을 좀 쐬고 싶으니 차를 잠깐 세우라’고 말해 차를 세웠다”며 “그러나 말릴 틈도 없이 박 지사가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임씨의 진술을 토대로 박 지사가 반포대교 난간에서 심한 구토 증세로 구역질을 하다 실족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또 박 지사가 자살을 사전에 계획했다기보다는 구토 도중 우발적으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투신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한편 정치권은 박 지사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성명을 발표, 조의를 표했고 전남도는 박 지사에 대한 장례를 ‘전남도장’으로 치렀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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