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말 한마디에 조직이 ‘벌벌’
회장 말 한마디에 조직이 ‘벌벌’
  • 박지영 
  • 입력 2007-03-06 15:50
  • 승인 2007.03.06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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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의 ‘무소불위’ 권력②

“농협은 자체가 파워다. 전국 각지에 조직이 있어 농협이 힘이 센지, (대통령인)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
지난 2003년 2월 4일,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강원지역 대토론회에서 거대공룡 농협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현재 농협중앙회는 설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심지어 정부의 주무부처인 농림부마저 “농협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졌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하지만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이면에는 그들의 온갖 비리와 농민들의 피눈물이 한데 얽혀 역겨운 냄새를 토해내고 있다. 이에 본지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다.


최근 농협의 현대 유니콘스 인수가 1주일만에 무산된 가운데 농협중앙회장의 비대한 권한이 도마위에 올랐다. 회장이 독자적으로 야구단 인수를 결정할 만큼,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은 최근 KBO 신상우 총재로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를 제의 받고 이를 곧바로 실무진들에게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내부 경영을 총괄하는 전무이사, 사업부분 대표 등 임원들은 물론 주무부처인 농림부와 단 한차례도 공식적으로 사전 협의를 벌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농협회장 ‘비대권한’ 도마위

농민 대표들의 의견수렴 작업도 생략됐다. 정 회장이 독단적으로 야구단 인수를 결정, 실무진에 지시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농협의 프로야구단 인수 작업은 순풍에 돛단 듯 착착 진행됐다.

농협 실무진은 당초 지난 1월 11일부터 본격적인 검토 작업을 벌여 이번주 중 인수 가격 등의 모든 실무 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었다. 실무진이 검토 작업에 착수한지 불과 2주도 안돼 야구단 인수 작업이 끝날 수도 있었던 셈이다. 당시 농협은 현대 유니콘스를 134억원에 인수한 뒤, 연간 200억원의 운영비를 투자할 계획이었다.

농협중앙회가 프로야구단 현대유니콘스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농민단체들이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최근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상우 총재를 만난 뒤 갑작스레 현대유니콘스 인수를 추진하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농협의 야구단 인수는 정 회장이 신상우 KBO 총재를 만난 뒤 급물살을 탔다. 신 총재는 현대 유니콘스가 새 주인을 찾지 못해 프로야구 출범이 위기에 직면하자 농협에 현대 유니콘스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 총재는 노 대통령의 부산 상고 선배이자 부산인맥의 실세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는 “비리 혐의로 최종판결을 앞두고 있는 정대근 농협회장이 구명 차원에서 정권실세인 신상우 KBO 총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농촌 현실을 도외시한 채 프로야구단 창립이라니’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농협중앙회가 농촌 현실은 도외시한 채 부실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국내 스포츠 마케팅 분야의 현실을 감안할 때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구단 운영으로 농협중앙회의 수익 저하 등 각종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높다”고 성토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또한 ‘누구를 위한 프로야구단 인수인가, 차라리 농협 간판을 내려라’란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는 중요한 시기에 막대한 재원을 들여 농촌의 근본적 회생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겠다는 것은 농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개정 농협법 있으나 마나

개정 농협법의 실효성에도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5년 7월 회장 권한 축소를 골자로 하는 개정 농협법이 시행됐지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 개정 농협법은 회장을 비상근으로 전환하고 전무이사를 신설, 회장의 권한을 전무이사와 해당 사업부분 대표에게 위임했다.

주무부처인 농림부 또한 농협중앙회 회장의 비대권한에 대해 직무정지를 검토하는 등 강경하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농림부 관계자는 “당시 농협회장의 직무정지 등을 신중히 검토했었다”며 “현행 농협법에 따르면 중앙회 임원이나 집행간부가 사업 목적 외에 자금을 사용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프로야구단 인수 해프닝과 관련,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회장의 말 한마디로 야구단을 인수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면서도 이를 증명해줄 수 있는 서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홍보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떠한 내용인지는 알 수 없다”고 발뺌했다.



#농협중앙회장의 ‘무소불위’ 권력

지난 1999년 9월, 각 신문에 “농정사 50년만에 협동조합이 농업인의 품으로 돌아옵니다”라는 전면 광고가 실렸다. 이는 농림부가 내보낸 광고였다.
IMF 이후 당시 국민의 정부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시류에 맞춰 축협을 농협에 강제적으로 편입시켰다. 이 같은 결정에 축협중앙회 신구범 전회장은 강력히 반발하며 국회에서 ‘할복’ 자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농협은 전국 각지의 축협 점포를 흡수, 통합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농협이 과연 농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농협의 몸집이 비대해 지면서 선출직 농협중앙회 회장의 영향력과 권한이 막강해 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농협은 2006년 기준 전국 5,025개 지점의 조합(중앙회 포함)과 6만8,00여명에 이르는 직원이 있다. 또 자본금 8조여원과 운용중인 신용자금 287조원 등 자금력으로나 규모면에서 국내의 어느 재벌 그룹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다.

이러한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정대근 회장의 ‘막강파워’에 대해 전문가들은 “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의 선출직에 문제가 있다”며 “농협은 선출직인 회장이 당선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돼 사실상 부패의 위험이 상존해 있다”고 지적했다.

한 지역 농협 관계자는 심지어 ‘비대공룡’ 농협을 총 지휘하는 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의 권한과 영향력에 대해 “한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대통령과 맞먹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농협은 농업인들의 단체라는 가면을 쓰고 기업화 내지는 기관화된 특수 조직”이라며 “오죽하면 농업인 단체들이 농협을 ‘농협 마피아’라고 부르겠느냐”고 귀띔했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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