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의 ‘무소불위’ 권력<1>
“농협은 자체가 파워다. 전국 각지에 조직이 있어 농협이 힘이 센지, (대통령인)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
지난 2003년 2월 4일,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강원지역 대토론회에서 거대공룡 농협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현재 농협중앙회는 설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심지어 정부의 주무부처인 농림부마저 “농협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졌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이면에는 그들의 온갖 비리와 농민들의 피눈물이 한데 얽혀 역겨운 냄새를 토해내고 있다. 이에 본지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농협중앙회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다.
농협중앙회가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를 현대차그룹에 매각한 대가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에 대한 탄원서를 일선 조합장들로부터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농협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농협도운영협의회 대의원조합장 명의로 지역본부를 통해 지역농협 조합장과 임직원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정대근 회장 구속이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지역농협을 순회하며 강제로 받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번 탄원서는 지난해 5월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311호 법정에서 진행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의 첫 공판을 앞두고 구명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야기될 전망이다.
강제 보석탄원 서명 논란
본지가 긴급 입수한 문제의 탄원서에는 ‘정대근 회장이 새농촌-새농협 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농협운동의 지평을 열었다’면서 ‘농업·농촌을 위해 고군분투하시고 재임기간 중 우리 민족생명산업인 농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정대근 농협중앙회장님의 업적을 혜량하시어 보석을 허락해 주시기를 탄원한다’는 선처를 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농협중앙회 측의 ‘지역농협 임직원 대상 강제 탄원서’ 실체는 지역농협 소속 노동조합인 전국농협노동조합의 기지로 세간에 알려졌다.
농협노조 경남본부 관계자는 농협중앙회 측의 강제 탄원서와 관련, “고성과 의령의 지역농협에서 탄원서를 받고 있으며, 광주와 경기·인천지역에서도 탄원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탄원서는 지역을 불문하고 모두 똑같은 양식으로, 날짜(2006. 6. 14)와 ‘탄원자 홍길동 외 ○○○명’이라고 한 것까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다.
이와 관련, 전국농협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무어라 할 말이 없고,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며 “농협중앙회장의 업적이 될 수 있는 것은 거추장스런 협동조합 조직의 기본 정신을 벗어던지고 사적 이익을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그 대가로 몇 푼의 돈을 거머쥐는 오직 그러한 일 뿐이란 말인가”라고 성토했다.
또한 그들은 농협중앙회 측의 ‘빗나간 회장님 사랑’에 대해 지적하며 “농협중앙회가 진정 정대근 회장을 위한다면 ‘정대근 회장 보석 탄원 서명’ 작업을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 회장 뇌물수수사건과 관련해 지금이라도 공개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제출하는 한편, 정대근 회장에 대해서는 세상사와 인연이 닿지 않는 조용한 공간에서 그간의 과오를 반성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그런 문서가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일 또한 없었다”며 “만약 그러한 일이 있다면 문서 등의 흔적을 남겼겠느냐”고 반문했다.
“지역농협이 봉이냐”
하지만 농협중앙회 측의 강제 인원할당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005년 농협중앙회가 주최한 대규모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당시 농협중앙회는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를 준비하면서 일선조합장은 물론 이장들까지 동원해 참여를 독촉하고, 신원조회를 하는 등 각 지역농협에 ‘초청대상 할당인원수’까지 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본지가 입수한 ‘농협중앙회 내부 지도문서’에는 지역별 행사에 참여해야할 할당인원과 총인원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다. 특히 내부 문서 하단에는 버젓이 ‘농협중앙회장’이라고 적혀있어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개최한’ 행사를 성황리에 마치기 위해 묵인해 왔다는 의혹을 샀다.
이와 관련,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강제로 인원을 할당하라는 것이 아니라 좋은 행사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협조 요청 공문이었다”며 “지역별로 참석해 달라는 인원 또한 행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지역농협 간부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한 지역당 행사에 관련된 사람이 적게는 2,000명에서 많게는 8,000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도지역본부별 초청 대상자’ 문건의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경기지역, 7,390명(자매결연 마을, 농업인, 기관, 단체 할당 인원수), 610명(각 지부장, 지점장, 조합장, 지도여성복지담당 할당 인원수), 8,000명(각 지역본부별 총 할당 인원수) ▲강원지역, 3,693명, 307명, 4,000명 ▲충북지역, 3,717명, 283명, 4,000명 ▲충남지역, 5,491명, 509명, 6,000명 ▲제주지역, 별도검토, 별도검토 ▲부산지역, 2,908명, 92명, 3,000명 ▲인천지역, 2,913명, 87명, 3,000명 ▲울산지역, 1,937명, 63명, 2,000명 ▲서울지역, 별도검토, 168명, 별도검토 ▲대전지역, 1,936명, 64명, 2,000명 ▲광주지역, 1,935명, 65명, 2,000명 ▲대구지역, 2,407명, 93명, 2,500명으로 농협중앙회는 각 지역농협에 공문을 띄워 총 6만4,000명의 지역농협 노동자들을 강제 참석토록 했다.
또한 농협중앙회에서 지역농협으로 일괄 발송한 지도문서 가운데 ‘○○군지부’에 보낸 문건에는 ‘관련호에 의한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로 시작해 ‘○○군 초청대상 총 520명, 참석 대상자 명단 9월 5일까지’라고 끝맺었다. 조합별 초청인원 수는 조합원
수에 비례해 정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 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 위원장은 “농협중앙회는 이미 일선조합장은 물론 이장들까지 동원해 농민들에게 행사참여를 독촉하고, 신원조회를 하는 등 난리법석이었다”며 “‘빗자루도 손을 빌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바쁜 추수철에 ‘아닌 밤에 홍두께’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10만명을 모으라는 것은 철딱서니 없는 일”이라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 농협회장은 ‘콩밥’을 좋아하나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5월 10일 정대근 회장이 검찰에 전격 체포되자 망연자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영삼 정부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대 농협중앙회장들이 횡령과 공금유용 등의 혐의로 연이어 구속됐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지역농협 사이에선 “다음은 누구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5월, 명의식 전 축협회장은 9억4,000여만원에 눈이 멀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공금 횡령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이보다 앞선 1990년 4월에는 홍종문 전수협회장이 당선된 지 몇 달도 안 돼 선거과정에서 단위조합장들에게 금품을 뿌린 혐의가 포착, 선거비리로 쇠고랑을 찼다.
1994년 3월 19일에는 한호선 전농협중앙회장이 구속 기소됐다. 한 전회장은 농협 예산을 전용해 4억8,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 이 중 4억1,000만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이방호 전수협회장이 다시 외환금융사고 등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던져야 했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5월에는 원철희 전회장이 6억원의 업무추진비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와 관련,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대 회장이 줄줄이 구속된 것은 정권의 탓보다 농협의 탓이 더 크다”고 말했다.
박지영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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