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창업주의 유언 법정가나
이병철 창업주의 유언 법정가나
  • 박용수 
  • 입력 2006-11-30 14:25
  • 승인 2006.11.30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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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태자 이맹희 CJ 창업주는 어디에?


‘비운의 황태자’, ‘양녕대군’ 이맹희 CJ 창업주의 행방이 묘연하다. 이맹희씨는 지난 1971년 부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의 불화로 경영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다. 현재 그의 행방에 대해 아는 이가 없다시피하다. 한때 재계에선 이맹희씨의 와병설이 나돌면서 곧 사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일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재현 CJ일가가 곧 장례를 치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돈 지도 오래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CJ그룹측은 이맹희씨의 와병설과 거취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CJ 관계자는 “회사와는 무관한 사람으로 우리도 행방을 모른다”고 말할 정도. 이맹희씨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맹희씨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영인으로 기억됐다. 이맹희씨는 지난 1938년 삼성의 설립으로 기록되는 삼성상회 간판으로 국수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이 새우잠을 자던 모습을 목격한 삼성 성장사의 산증인이다.
이맹희씨는 일본, 미국 유학을 거쳐 안국화재 업무부장을 시작으로 중앙일보, 삼성전자, 부사장 등 그룹 계열사 직함이 17개나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그는 삼성의 젊은 부총수였고, 지난 1966년 이병철 창업주가 사카린밀수사건으로 경영에서 물러날 때 그룹 경영을 맡기도 했다. 그런 그가 부친의 눈 밖에 나 지난 1971년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재계를 떠난 후 복귀하지 않았다.
최근 다시 이맹희씨의 행방에 대해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병악화로 몸져누웠다는 소문이 나돈 탓도 있지만 이맹희씨의 숨겨진 아들이 대법원 판결에서 친자로 확인돼 그의 행방을 쫓고 있기 때문이다.

이맹희씨, 몽골 거주설
지난해까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맹희씨는 지병치료를 위해 몽골이나 중국 등지로 자주 오 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맹희씨 병간호는 차남 이재환 CJ 상무가 맡아 그가 중국과 몽골을 오가며 부친의 간호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맹희씨의 행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최근 대법원 소송에서 친자로 확인된 막내아들 재휘씨다.
재휘씨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바로 부친 이맹희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재휘씨는 지난 2004년 6월 친자확인 소송을 걸기 전까지 모친 박모씨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부친을 찾다 실패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언론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부친을 찾는다는 사실을 혹시라도 알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맹희씨는 친자확인 소송 과정에서 필요한 DNA 검사 때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휘씨는 “부친이 국내에 없는 것은 확실하다”며 “경찰에 행불자 신고를 내서라도 부친을 찾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다.
이맹희씨의 행방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암 등의 와병설로 몸져누워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맹희씨가 사망하게 될 경우 이맹희씨의 유산분배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그것이다. 현재 이맹희씨 명의로 된 재산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맹희씨의 유산분배를 거론할 수 있을까.
그 실마리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작고 직후인 87년 삼성가족모임에서 이맹희-건희 형제간의 재산분할 약속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베일이 싸여있던 두 형제간 재산분할 약속은 그 내막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재계에 따르면 이맹희씨가 부친 이병철 창업주와의 불화로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당시 이맹희씨 몫으로 제일제당 등 지금의 CJ그룹의 모태기업들을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넘겨받았다.
그 과정은 이렇다. 지난 1971년부터 이병철 창업주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이 삼성 회장을 맡으라고 했고, 이맹희씨는 그룹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다만 이맹희씨의 몫으로 여겨졌던 CJ그룹 분가는 창업주의 작고 직후 이뤄졌다.
두 형제간의 재산분할은 지난 87년 이병철 회장 사망 직후 2세들이 미국 LA에서 모인 가족회의를 통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내막이 알려진 것은 없다. 이같은 모임의 존재는 이병철 창업주가 말년에 머물던 승지원이 그의 사후에 ‘삼성가족모임’이라는 명의로 등기부에 오르는 바람에 일부 외부에 노출됐다.
그러나 이 ‘삼성가족모임’의 실체와 그 내용이 무엇인지가 세간에 관심의 초점이 됐지만 곧 베일에 싸이고 말았다.
이에 대해 이맹희씨는 1993년 펴낸 자신의 회고록인 ‘묻어둔이야기’와 ‘하고싶은 이야기’에서 “창업주 사망 후(87년 가족모임) ‘제일’자가 들어가는 삼성계열사들과 안국화재를 재현이에게 넘겨주기로 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맹희씨는 또 “선대회장이 동생인 이건희 회장에게 그룹 대권을 넘기면서 차기엔 아들 재현이에게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87년 삼성가족모임의 비밀
이병철 창업주가 유서로 남긴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진의 여부는 불분명했다. 그러나 이맹희씨의 발언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당시 이맹희씨의 발언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제일제당 등 일부 계열사를 이끌고 독립하려 한 이재현 현회장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부친의 회고록 파문 수습에 애를 썼지만 무위로 그쳤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학수 당시 삼성화재 부사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파견, 사실상 신탁통치에 나선 것이다. 2년 후인 96년 이학수 부사장을다시 삼성화재로 복귀시키고 CJ그룹 출범식을 갖기까지 이재현 회장은 2년간 속앓이를 해야 했다.
분명한 것은 이병철 창업주 사후 이맹희-건희 형제간 재산분할 약속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외형적으로 삼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CJ그룹 지분은 조카인 이재현 CJ회장에게 분배됐고, 이것은 이맹희씨의 몫이며, 이 결정은 1987년 미국 LA에서 가진 삼성가족모임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비록 이맹희씨가 자신의 명의로 보유한 재산이 없어 물려줄 재산이 없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최근 대법원 소송에서 친자로 확인된 재휘씨가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할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재판부가 현 CJ그룹을 누구의 몫으로 보느냐는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재휘씨가 재산분할 소송에 나서게 되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87년 삼성가족모임의 내용도 그 실체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재휘씨는 “필요하다면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혀 이재현 CJ그룹 일가를 일대 파란으로 몰고 갈 공산이 커졌다.



# 이맹희씨가 밝힌 삼성과의 결별

“할수 있는 것만 해라”

이맹희씨는 자신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부친 이병철 회장과의 결별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우선 직함부터 이병철 창업주가 빼앗는 과정을 설명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주변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그 실체에 대해서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1970년대 초반 여름이 되었다. 아버지 방에 에어컨을 틀었던 기억이 나니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부친이 자신을 부르더니 “니 지금 직함을 몇 개나 가지고 있노?”라고 물었다. 부친의 얼굴이 밝질 않았다. 그 이전부터 뭔가 낌새를 채고 있었기에 “다 할 수는 없심더”라고 했더니 부친은 “그라모 할 수 있는 것만 해라”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이번엔 부친이 “내가 한번 보게 직함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종이에 써와 보라”고 했다. 이진석 비서실장을 시켜서 직함을 써보니 모두 17개 직함이었다. 삼성전자, 중앙일보, 삼성물산, 제일제당, 신세계, 동방생명, 안국화재, 제일모직, 성균관대, 삼성문화재단 등 모두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의 직책으로 17개나 됐다.
자신 역시도 직함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고 한다. 당시 부친의 말투는 의논조였다. 그러나 “이건 하기 힘들제”, “이건 너 할 수 없제” 라고 말은 했지만 이미 예정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줄을 죽죽 긋고 남은 직함이라고는 삼성물산, 제일제당, 삼성전자 부사장이었다.
그는 이때서야 깨달았다. “아 아버지가 나보고 물러나라고 하시는구나” 사람들은 부자지간에 “이제 내가 할테니 너는 당분간 쉬어라”라고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그리 복잡하게 일을 진행하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는 이건희 현회장을 삼성 후계자로 삼기 위해 장인인 홍진기씨가 주도했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낭설이라는 시각이다.
직함을 떼이고 나서 이맹희씨는 일주일에 서너번 부친을 모시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냈지만 별로 할 일도 없고, 부친이 전면에 나서서 일을 하는데 끼여들어 이런저런 말을 보태는 것도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는 무료하던 차에 부친에게 의사를 자유롭게 전하던 김재명씨를 만나서 일본에 가서 당분간 쉬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곧바로 대답이 날아왔다. 이병철 창업주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하다니…” 이맹희씨는 그 길로 짐을 싸서 3일 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맹희씨가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마지막 광경이다.
<용>

박용수  watchpe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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