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그룹의 손주들이 속속 경영 일선에 뛰어들고 있다.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로 대변되는 재벌 2세들이 나아가 어느덧 중년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계 3, 4세들의 ‘경영수업’도 빨라지고 있다. 삼성 이재용 상무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이 진행 중인 가운데, ‘마지막 학기’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 사태로 ‘홍역’을 치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이미 후계 경영을 시작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씨도 LG전자 대리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수업이 진행 중이다.
재벌 기업의 ‘대물림’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 폭은 더욱 커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관건은 3, 4세들로 과연 1, 2세가 공고하게 지켜온 그룹을 어떻게 장악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일각에선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영능력과 명분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재벌가 3, 4세들의 경영 수업이 본격화되면서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조만간 1, 2세들이 이끌어온 대기업 경영권을 이어받을 예정으로, 성공적인 그룹 안착 여부가 관건이다.
몇몇 재벌 3, 4세는 경영능력과 명분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은 시장의 검증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경영 밑바닥부터 훑는 중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는 내부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이라 말할 입장이 아니다”면서도 “일선 경영부터 차곡차곡 수업이 진행되는 추세다보니, 과거 ‘대물림’이라는 시선은 크게 누그러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계 서열 1위, 삼성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물밑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물론 이 상무가 전면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의 움직임은 사장급 이상으로 평가된다.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물론 이건희 회장의 주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최고경영자 수업의 ‘마지막 학기’를 밟고 있다.
최근 7,000억원대 증여와 3,500억원대 증여세 납부 발표로 관심이 집중된 신세계가(家)의 외아들 정용진 부사장도 그룹 본사와 이마트로 번갈아 출근하면서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고 있다.
그는 업무보고에서 가끔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등 실무도 꼼꼼히 챙긴다. 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하는 등 직원들과 스킨십도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정 부사장은 고현정씨와의 이혼, 연예인과 열애설 등 끊이지 않는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후계자는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다. 큰딸인 성이씨는 그룹 계열사 이노션(광고회사)의 고문을 맡았다. 전업주부로 10여년을 지내다 뒤늦게 경영수업에 뛰어든 것. 그는 어머니와 동행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씨는 해외명품팀 이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7년 롯데면세점에 입사해 그룹에 첫발을 내디딘 뒤 명품관 ‘에비뉴엘’의 책임을 맡아 백화점업계의 ‘명품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씨는 두달 전부터 LG전자 대리로 근무 중이다. 외부 벤처기업에서 근무했던 광모씨가 LG전자로 옮기면서 그룹 후계구도와 관련해 말들이 나오고 있다. LG그룹측은 “벌써부터 경영승계와 연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광모씨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이다. 지난 2004년 말 구본무 회장의 양자가 됐다.
SK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아 최고경영자체제를 구축한 최태원 회장은 아직 3세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두 딸을 경영 전면에 배치하고 밑바닥부터 다지고 있다. 장녀 정담씨와 차녀 경담씨는 최근 각각 동양매직 차장과 동양온라인 대리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경우 주력사업인 대한항공에서 자녀들의 경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외아들 원태씨는 대한항공 부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장녀 현아씨는 상무보로 활약하고 있다.
막내딸 현민씨는 한진 계열사가 아닌 LG애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현민씨는 현재 벤츠의 광고대행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으며, 대한항공과 벤츠의 연계 마케팅을 성사시킨 인물로 알려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장남 세창씨는 현재 금호타이어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박 회장은 조카들도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시키고 있다. 조카 중 철완씨와 준경씨는 현재 그룹과 무관한 곳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들은 지분을 동등하게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간접 경영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외아들인 남호씨는 최근 들어 동부제강, 동부화재 등의 대주주로 올라서며 후계자 자리를 확보해 놓은 상황이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 동관, 동원, 동선씨가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주)한화의 지분을 나란히 매입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아직 학생 신분으로 경영 전반에 나서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구본상 LIG손해보험 이사도 고난도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LG그룹에서 분리된 후 사명을 바꾸는 등 그룹체제를 다시 짜는데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5.19%이던 지분율을 5.69%로 높였다. 건설업 진출 구상도 구 이사의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그룹에서는 구 이사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재편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시장 검증 통과해야
대신증권 창업주인 양재봉 명예회장의 손자인 홍석씨가 올해 대신증권에 입사, 3세 경영을 준비 중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홍석씨는 지난 6월 대신증권 공채로 입사해 서울 강남의 한 지점에 근무하는 등 현장을 누비고 있다.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의 장남인 정한씨가 대성산업 기계사업부 상무로 경영 일선에 참여하고 있다. 3남 신한씨는 최근 대성산업가스 이사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현상필 dj092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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