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떼려다 혹 붙였다”
“혹 떼려다 혹 붙였다”
  • 박용수 기자 
  • 입력 2006-09-19 15:35
  • 승인 2006.09.19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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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관광 늑장공시 파문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매제이자 롯데관광개발의 최대주주 김기병 회장이 인터넷매체 마이데일리 인수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며 민형사상의 소송 제기에 나섰다. 마이데일리측은 롯데관광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며 맞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관광의 미숙한 일처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8월 11일 롯데관광은 한달 간 미뤄왔던 이같은 공시내용을 불과 20분만에 쏟아내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롯데관광은 지난 11일 오후 5시 9분 인터넷매체 마이데일리와 지분 인수계약을 했다는 공시를 내보냈다. 그러나 14분 뒤에 곧바로 계약을 파기했다는 재공시를 연거푸 게재해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롯데관광측은 “지난 6월 증권거래소에 처음 상장돼 공시에 익숙하지 못한 면도 있어 이같은 일이 빚어졌다”며 “투자자들에게 혼동을 겪게 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증권거래소는 롯데관광에 대해 불성실공시법 지정과 벌점 8점 부과를 예고했다. 벌점이 15점을 넘으면 관리종목으로 편입된다. 그러나 롯데관광의 미숙한 일처리도 문제지만 상장기업 CEO의 비상식적 경영행위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장기업의 타법인출자는 이사회 의결사항으로 대주주 독단으로 처리할 사항이 아닌데다 관련내용을 곧바로 시장에 공시를 통해 알리는 것이 의무인데도 롯데관광은 이같은 절차를 모두 생략했다.
롯데관광측은 “갓 상장한 기업이라 공시관련 업무가 미숙해 이같은 일이 빚어졌고, 대주주인 김회장도 상장기업의 최고경영자 역할에 대해 숙지하지 못한 면도 있었다”며 책임을 일단 인정했다.
또 롯데관광측은 “김회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투자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자신의 주식을 담보물로 내놓아 투자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파장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롯데, “최모씨가 사기쳤다”
롯데관광이 밝힌 사건의 요지를 간추리면 이렇다. 마이데일리 출자과정에서 최모씨가 부당한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세계적인 검색사이트 구글이 마이데일리를 인수하려 한다는 중요사항을 고의로 기만한 사실이 밝혀졌고, 가계약 후 합의내용을 일방적으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최모씨는 롯데관광측에 접근해 마이데일리 사이트를 ‘롯데투어i라는 여행전문 포털사이트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 마이데일리 지분 58.84%를 주당 13만원씩 80여억원에 매도한다는 가계약을 맺고, 이후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지 않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다 여행포털 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전혀 없는 등 기만으로 일관해 사기혐의가 짙다는 것. 마이데일리 대표가 처음부터 사기목적으로 김회장에게 접근,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냈다는 주장인 것이다.
롯데관광은 이같은 내용을 근거로 최씨를 특정경제가중처벌상 사기및 강제집행면탈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마이데일리 “롯데, 허위사실 유포”
하지만 롯데관광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선 마이데일리측이 롯데관광의 주장에 대해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고, 투자과정에서 큰 무리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마이데일리측은 “주당 인수가 13만원에 인수키로 계약을 체결하고 8월4일 인수대금 지급을 끝마친 계약은 합법적이고 공정한 것”이라며 “오히려 롯데측이 계약후 합의미이행, 고의 기망 등의 용어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전문포털 사이트 육성계획에 대해서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마이데일리를 온라인사업 회사로 적극 육성키로 한 것은 롯데관광측”이라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진의 여부는 법정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또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김기병 회장이 될 공산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금전손실과 이미지 타격이 크다는 것이다.
김회장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자신의 보유주식 42만여주를 회사에 담보로 맡겨놓은 상태다. 이는 김회장의 보유주식 384만주의 11%에 해당한다. 최회장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담보주식을 되돌려 받을 수 있지만 질 경우는 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법원의 판결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시장에서는 롯데관광 주장을 재판부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롯데관광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상황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관광이 최사장과 모의했다던 모 포털사이트 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롯데관광의 주장은 허위”라며 마이데일리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또 롯데관광측이 거액을 투자하면서 기업실사를 못했다거나 시간이 없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무형의 손실도 크다. 김회장의 이번 사태로 롯데그룹 이미지까지 타격을 받아 김기병 회장와 롯데그룹과의 관계 재정립이 요구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회장의 부인 신정희씨는 신격호 회장의 막내여동생이어서 그동안 지분관계상 롯데그룹과 무관했지만 롯데관광은 그룹 내에서 어느 정도 친족 회사로 대우를 받아왔다. 하지만 투자자의 신뢰를 무너뜨린 김회장의 독단경영이 빚은 늦장공시파문으로 롯데그룹의 이미지까지 먹칠하게 돼 모회사격인 롯데그룹이 난감해 한다는 것이다.
김기병 회장은 상공부(현 산업자원부) 국장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으로 지난 70년대 롯데관광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재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롯데관광개발은 김기병 회장 일가가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박용수 기자  pe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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