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 조현상(35)상무(전략본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조석래 회장의 3남이다. 지난 6일 대규모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실력을 발휘했다. 조 상무는 세계적 타이어업체인 미국 굿이어에 32억달러 규모의 타이어코드를 장기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굿이어의 자회사 ‘유티카(Utica)’ 지분을 100% 인수, 이 회사의 타이어코드 공장 4곳도 확보했다. 이번 계약으로 효성의 핵심 사업인 타이어코드 분야는 세계 1위로 올라설 전망이며, 형제간의 경영수업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됐다.
효성 3형제의 약진이 돋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효성그룹의 후계구도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 회장은 현재 나이가 70세가 넘어 어떻게든 후계구도를 구체화해야할 시기가 온 것으로 평가된다. 조 회장 본인도 선대 회장 생존 때부터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을 맡으면서 일찌감치 후계구도를 이었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
일각에서는 3형제(조현준 부사장, 조현문 전무)간에 맡은 역할이 분명해짐에 따라 앞으로 형제간의 선의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굿이어, 타이어 완제품으로 간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3남 조현상 상무다. 그는 지난 6일(현지시간) 효성이 세계적인 타이어 업체인 미국 굿이어의 타이어코드 자회사 4곳을 인수하고, 32억달러 규모(약 3조원)의 타이어코드를 장기 공급하는 계약을 맺는데 선봉장의 역할을 했다.
굿이어는 세계 3위(세계 29개국, 100여 개 사업장)업체로서 타이어를 비롯해 고무 가공제품과 화학제품 등을 생산하는 회사다.
타이어코드 업계에서 단일 계약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5∼10년간 32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타이어코드를 공급하게 됐다. 이에 기술과 품질의 우수성을 세계시장에서 다시 한번 입증하였으며,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이는 효성의 연간 타이어코드 매출(7,000억원)의 4.3배, 효성그룹 연간 전체 매출(5조원)의 60%에 해당하는 수치다.
효성은 현재 울산공장과 미국, 중국에서 타이어코드 생산공장을 운영함은 물론, 내년 1월까지 미국 앨라배마주와 뉴욕주, 브라질 아메리카나, 룩셈부르크 콜마버그에 있는 굿이어의 타이어코드 공장 4곳을 인수하게 되면 효성은 대륙별 생산기지를 구축할 수 있다. 동시에 현재 25%에 머물고 있는 세계시장 점유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려 시장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어 세계 1위 타이어코드 메이커 자리를 한층 굳힐 것으로 전망된다.
조현상 상무는 “굿이어 공장 인수로 기존 폴리에스테르 타이어코드와 나일론 타이어코드, 스틸코드뿐 아니라 첨단 신소재인 아라미드와 고속 주행용 타이어 소재인 레이온 등 한층 다양한 타이어코드 시장에 진출하는 성과도 얻었다”고 설명했다.
진두지휘한 조현상 상무
조현상 상무는 이번 협상을 위해 1년 넘게 공을 들였다. 굿이어 측 협상파트너인 로라 톰슨 부사장이 첫 대면부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당시를 소개했다.
“워낙 큰 규모라서인지 먼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생각지도 못한 조건을 내더라고요. 톰슨 부사장의 언급에 살짝 놀랐죠. 그는 ‘이 계약 규모를 생각한다면 먼저 우리에게 존경심을 보여라. 우리 조건을 받을 거면 내일 다시 오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서울로 돌아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더라고요.”
이에 효성 측은 고민했다. 다음날 아침, 조 상무는 일행에게 일단 짐을 싸두라고 말한 뒤 혼자 톰슨 부사장 사무실을 찾아갔다. 추운 바람에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다. “아침 9시부터 두 시간 동안 1대1로 대화를 나눴죠. 난 톰슨 부사장에게 ‘서로 아주 중요한 일이니 서로 욕심 부리면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 것이다. 서로에게 아주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얘기하자’고 말했습니다. 톰슨 부사장은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서로 정직하게 얘기하고 논리에서 밀리면 양보했죠.”
중간에 일이 잘 안 풀릴 땐 톰슨 부사장이 직접 조 상무 호텔로 찾아와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등 ‘정직과 논리’란 두 가지 원칙이 협상 과정 내내 지켜졌다.
조 상무는 “고위 경영진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협상을 맡게 됐다”면서 “협상이 잘 안 풀리면 상대 측 협상 대표의 호텔 방까지 찾아가 일대일로 만나 신뢰를 쌓은 게 주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장기 계약이라 미래 변수를 모두 예측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면서 “아버님과 형님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 상무는 누구인가
조 상무는 2001년 효성 입사 후 줄곧 전략본부에서 일해 왔다. 그 동안 미쉐린 일부 자산 인수와 공급계약 등 굵직한 계약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효성 입사 전에는 베인&컴퍼니 도쿄 지사와 NTT 본사에서 경험을 쌓았다.
가족들도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우리 형제들은 각자 일이 다르더라도 서로 돌아가면서 자기 일에 대해 상의하고 의견을 나누곤 한다”며 “이런 대화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조 상무는 “비즈니스를 배우려면 현업 쪽 경험이 아주 중요하다. 영업이 됐든 공장이 됐든 현업에서 근무하고 싶다”며 산업현장 경험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조 상무는 벤츠를 수입ㆍ판매하는 더클래스효성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복고와 연세대(교육학), 미국 브라운대(경제학)를 졸업한 조 상무는 이재용 삼성그룹 상무, 전두환 전대통령 아들인 재만씨,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 등과 경기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이범희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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