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양극화 현상에 몸살을 앓고 있다. 환율·오일쇼크 등 경제는 악재가 넘친다. 한마디로 위기이다. 이런 가운데 농심 신춘호 회장의 미성년 손자·손녀들이 상속·증여 등을 통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주식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 신 회장은 친손자·손녀와 외손자·손녀 11명에게 농심그룹의 지분을 나눠줬다. 그러다 보니 농심의 대주주는 신 회장의 손자·손녀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들의 절반인 9명이 미성년자로 알려졌다. 대부분이 뚜렷한 소득원이 없다. 이를 감안할 때 주식 매입에 따른 자금출처, 세금 납부 여부 등의 문제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이 미성년 손자·손녀 11명에게 지분을 나눠줘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현행법상 미성년자는 만 20세 미만의 사람으로, 주식거래가 금지돼 있지는 않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도 “미성년자들은 단독으로 증권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하지만 부모와 동행해 허락을 받을 경우 미성년자 명의의 계좌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부모의 동의 아래서는 미성년자들도 성년자들과 똑같이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농심가에서는 자녀들이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주식을 양도하는 진풍경을 벌였다. 이들 미성년 손자·손녀 대부분은 지난 2003년 농심의 투자사업 부문이 인적분할 방식으로 분할된 후 자회사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된 농심홀딩스의 11만8,798주(3.09%)의 지분을 나눠 가져 주주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수 억 원대의 주식 재산을 지니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농심홀딩스는 지난해 당기순익 493억 원을 이뤄 주당 순이익이 1만912원에 달했다. 지난 연말에는 주당 2000원씩 배당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농심홀딩스의 미성년 대주주들은 적게는 3000만원에서 6000만원까지 배당금을 챙겨 매년 신 회장으로부터 지분증여를 통한 차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 일가는 친인척 대부분이 농심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났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틴에이지’(10대) 갑부들. 주식을 기준으로 본 그들의 재력은 얼마나 될까. 농심가의 미성년자 주식 보유자들 중에서 최고의 갑부는 친손자 상열군으로 올해 만 13세다. 그는 3만2,238주(0.71%)를 보유하고 있어 지난 8월 30일 종가(7만200원) 기준 주식 총 보유액은 22억6,310만원이다. 다른 손자들의 3배에 달하는 지분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친손자·손녀 유정양(13), 수현양(15), 시열군(16), 승열군(16), 은선양(18), 수정양(18), 혜성(25), 혜정(21)이 각각 1만680주(0.24%)씩 나눠 갖고 있다.
또 외손자·손녀이자 둘째 딸 윤경씨와 사위 서경배 태평양 사장의 자녀인 서민정양(15)과 서호정양(11)이 1만560주(0.23%)씩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현재 농심홀딩스 신춘호 회장의 장남 신동원 부회장이 166만8,000주(36.84%)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으며 신 부회장의 동생인 신동윤 율촌화학 사장이 91만주(20.16%)로 2대 주주, 신 회장 딸 신윤경씨가 10만주(2.21%), 신 회장 부인 김낙양 여사가 1만주(0.23%)를 보유하고 있다.
틴에이저 갑부들
이처럼 농심홀딩스의 특수 관계인 최대주주 15명의 평균 나이는 25세로 이 가운데 신춘호 회장 3세들 중 절반이 넘는 9명이 미성년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재벌그룹 50위 안에 드는 기업 가운데 미성년자 대주주가 가장 많다.
농심의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이 합법적 절차에 의해 주식을 나눠 준 것이다. 사회일각에서 보이는 시선에 대해 난감한 입장이지만, 우리는 떳떳하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3세 경영 승계 준비?
특이한 점도 있다. 장손인 상열군에게만 3만2,238주를 준 것. 나머지 친손자에겐 1만680주 그리고 외손자에게는 이보다 120주 적은 1만560주를 나눠주고 있어 독특한 지분 증여를 보였다.
이에 대해 농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은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에 이어 장손에게 더 많은 지분을 부여함으로써 후계구도를 장남 장손 순으로 가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말했다.
너무 어린 나이…부작용 우려
또한 농심 미성년 자녀들의 주식보유는 다목적 포석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부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위해서나 오너 3세들에게 지분을 미리 배분한 뒤 이에 대한 주식 배당금을 통해 승계 작업을 천천히 진행하고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세금을 제대로 내면 문제 삼을 것은 없지만 법의 사각 지대를 노린 편법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미성년자의 경제활동을 제약할 이유는 없다. 다만 뚜렷한 수익원이 없는 재벌 3세들에게 상속과 증여를 통해 부가 상속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재벌의 행태가 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대해 농심의 한 관계자는 “편법증여의혹은 낭설이다. 특별한 이유없이 손자·손녀들에게 지분을 나눠준 것이고, 배당금을 통해 주식을 늘려가고 있어 이런 문제가 나오는거 같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주식을 증여 받았다고 신고했고, 미성년의 주식거래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지만 초등학생이 수십억 원의 자금으로 주식거래를 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반감을 살 것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범희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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