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에서 1백억원에 이르는 ‘눈먼 돈’이 재건축·재개발 사업과정에서 오고 간 것으로 드러났다. 노른자위 땅에서 진행되는 정비 사업이 그만큼 막대한 수익을 보장해 주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 2일 검찰 발표에 따르면 시공사, 조합, 하청업체, 브로커 등이 얽힌 ‘백화점식’ 비리가 만연해 있음이 확인됐다. 일부 조합은 시공사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했다. 또, 조합 상가를 값싸게 매입하는 과정에서 110억원의 금품이 오고갔다. 건축 심의에 참여한 대학교수도, 해당지역 기자도 금품의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했다. 이수건설, 우림D&A, 금강건업 등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연루된 비리 사슬의 폐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나아가 아파트 분양가 상승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일부 시민단체는 검찰의 집중단속을 계기로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분양원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부터 7월 말까지 5개월에 걸친 검찰의 재건축·재개발 수사결과를 토대로 각종 비리백태를 추적해 봤다.
일부 중견 건설업체들의 재건축·재개발 비리 관행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시공사 선정과 관련한 홍보비용만 60억원 안팎의 막대한 자금이 뿌려지고 있다.또한, 건설업체간 치열한 수주경쟁으로 인해 공사비 과다지출은 물론, 부실공사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공사 홍보비용 수십억원
지난 2일 검찰은 2006년 2월부터 지난 7월까지 서울 중앙지검 등 전국 16개 지검과 지청이 재건축·재개발 집중 수사를 벌인 결과 수억원의 뇌물을 주고받은 이수건설 정 모 상무를 비롯 모두 127명의 비리사범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고질적인 비리로 인하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잘못된 관행과 시장 왜곡현장을 바로잡기 위해 이번 집중단속을 실시했다”면서 단속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수사를 통해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은 재건축·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수십억원의 ‘검은 돈’이 거래되고 있으며, 그 부담은 전적으로 조합원에게 지워져 왔다는 대목이다.홍보자금으로 뿌려지는 수십억원의 돈은 대부분 시공사로 선정된 중견 건설업체들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시공사 또는 시행사가 일부 조합장과 조합원들에게 ‘후한’ 선심을 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분양가 인상 등의 편법을 통해 조합원들의 주머니에서 보충하게 된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전체가 손해를 입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관행에 다수의 중견 건설업체들이 앞장서 왔다. ‘브라운스톤’ 브랜드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수건설의 경우, 서울 성북구의 한 재개발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이른바 ‘아웃소싱(OS) 요원’ 수십명에게 매일 10만원씩의 금품을 뿌렸다. 이수건설은 이들 ‘아줌마 부대’를 통해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 나갔다고 한다. 또, 이수건설 임원과 직원들은 중간 브로커와 허위 용역계약을 체결한 뒤 수수료 명목으로 22억원을 교부받아 회사에 손해를 입히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 소재 재개발 사업에도 뛰어들었던 이수건설은 당시 영업부장 황 모씨가 재개발조합장 K씨에게 시공사 선정대가로 2억 5,000만원을 공여한 혐의로 내사를 받았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발부해 놓은 상태지만, 황씨는 현재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건설 홍보실 관계자는 “현재 사건에 연루된 임직원은 모두 사직한 상태”라며 “재개발 사업이 그대로 진행될 지 여부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법원 판결을 지켜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조합측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시공사를 교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 편의만 추구할 경우,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문제가 뒤따라오게 마련”이라면서 “피의자가 도피할 경우 사실상 수사가 어렵지만, 계속 (수사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서구 K아파트 재건축 비리 사건에 연루돼 불구속 기소된 A기업 서 모 상무도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조합장에게 5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에는 A기업 안 모 과장도 연루됐다.
이 사업에 동참한 한신공영 개발사업부 유 모 차장도 현대건설측과 함께 시공사 변경 협조 사례금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두 건설사가 ‘합작’해 기존 시공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공권을 따내려한 것이다.
건설사 대표가 나서 금품 제공
한신공영측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에 연루된 임직원들은 현재사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 대표가 재건축 비리에 직접 연루된 사건도 불거졌다. 금광건업 김 모 사장은 서울 금천구 S연립 재건축과 관련, 시공사 선정 대가로 박 모 조합장에게 5억원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금광건업 한 관계자는 “당시 직원이 연루돼 사건이 진행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 확인 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B사 윤 모 부장 등 3명은 S재건축조합 관련 아파트 분양대금 중 6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해 3억5,000만원을 조합장에게 사업 편의 명목으로 제공한 혐의다. 이들은 나머지 2억5,000만원의 분양대금도 횡령한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해당 아파트는 이미 지난해 7월 입주가 시작됐다. B사 홍보실 관계자는 “당시 일부 직원들이 돈을 횡령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면서 “현재 부장급 직원 1명은 구속된 상태고 과장 2명은 보직대기 조치됐다”고 했다.
이밖에도 우림건설 자회사인 우림D&A 전무 장 모씨는 재개발 시행업체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부지매입금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하고 대출사례금으로 2억원을 수수하기도 했다. 장씨는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속됐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직장주택조합장 이 모씨가 조합의 아파트 공사와 관련, 설계사무소장으로부터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설계 용역업체로 선정해 준 대가로 현금 2억원을 교부받은 혐의로 구속수감된 사건도 있다. 중견 건설업체 임직원들이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검은 돈’을 조성, 제공한 것 외에도 하청업체 관련 비리, 로비스트의 등장 등 온갖 불법 행위가 난무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 수사결과▲U재개발조합 한 모 조합장은 철거업체의 청탁을 받고 철거공사비 3억5,000만원을 증액해주는 대가로 1억2,000만원을 수수 ▲도시계획위원이던 S대학 김 모교수는 건축심의 과정에서 3,200만원 상당의 그랜저 승용차와 현금 1,000만원을 수수 ▲재건축 아파트 공사현장 ‘함바’식당 수주 청탁 명목 3억원 제공 ▲아파트 상가 저가 매매 명목으로 110억원 제공 ▲지역 일간지 기자가 아파트 신축공사에 개입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는 등 정비사업 추진 과정 곳곳에서 비리가 양산됐다.
검찰은 이번 집중단속 결과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재건축·재개발 비리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처벌규정이 보완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검찰은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와 관련, 시공사와 조합 사이에 제3자적 기관으로서 조합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인데, 시공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없음에도 영역계약 체결 등의 이유로 자금을 교부받아 시공사 선정의 홍보 역할을 주도해 왔다고 지목했다. 이들 업체는 부패의 주요 연결고리로서 정비사업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검찰이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재건축·재개발 관련 브로커들이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정비사업 관련 브로커 근절’을 위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지역에 거주하지 않았던, 이들 브로커들은 자문위원 또는 고문이라는 직책으로 용역계약을 체결하거나 상가 매매에 관여해 수십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건축·재개발 비리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재 도급순위 30위 내에 드는 기업 중 A, B사 등 비리 의혹이 제기된 건설사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기업은 범죄 사실 확인 여부에 따라 기소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사업 현장 ‘브로커’가 점령
대검찰청 형사1과 서범정 과장은 “현재 추가로 수사하고 있는 기업이 여럿 있지만, 기소하기 전까지 그 대상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 과장은 이번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재개발·재건축 비리가 만연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익이 많이 남기 때문”이라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입법기관의 몫인 것 같다”며 짤막한 소견을 피력했다. 한편, 검찰은 이번 집중단속을 통해 모두 127명의 비리사범을 적발하고 37명은 구속기소, 82명은 불구속 기소하는 한편 도피한 8명의 관련자에 대해서는 지명수배를 내렸다.
#대검찰청 서범정 형사 1과장 일문일답
“비리 조사 중인 건설사 또 있다”
-향후 재건축·재개발 비리 단속은.
▲앞으로도 내사 중인 재건축·재개발 비리 사건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현재 수사 중인 건설사는.
▲2일 발표한 것 외에도 진행 중인 사건이 있다. 그러나, 수사 중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구속이든, 불구속이든 기소된 것은 밝힐 수 있지만, 그 단계까지 가지 않은 것은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
-일부 비리사범은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사실 수사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언제든지 수사가 재개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검찰이 도피행각을 최대한 차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사 편의만을 추구한다면, 관련자 모두를 출국금지하는 등 강경하게 나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인권단체 등 여로 곳에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피의자라도 혐의가 입증되기 전까지 기본적 권리가 우선이다. <현>
김대현 dhki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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