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사업 재진출 ‘속내’…동부 ‘발끈’
반도체사업 재진출 ‘속내’…동부 ‘발끈’
  • 이범희 
  • 입력 2006-06-01 09:00
  • 승인 2006.06.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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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그룹(김준기 회장)의 심기가 불편하다. 반도체 산업에 재진출을 노리는 LG그룹(구본무 회장)이 동부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경제일간지가 LG그룹이 올해 M&A시장에 나올 예정인 하이닉스반도체를 대신해 동부일렉트로닉스(구 동부아남반도체)M&A를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보도가 나온 뒤 LG와 동부일렉트로닉스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면서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 같은 M&A설에 동부일렉트로닉스가 떠오르고 있는 것은 경영실적 부진 탓이다. 당초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하던 LG가 동부에 눈을 돌린 속내와 동부의 향후 반도체사업 전망을 진단한다.



반도체 업계의 천덕꾸러기 하이닉스가 IMF를 극복하며 화려한 백조로 변신했다. 세계적인 비메모리반도체 업체인 아남반도체는 동부그룹으로 넘어간 뒤 매년 수천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하며 사명마저 ‘동부일렉트로닉스’로 변경되어 화려함을 잃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두 기업의 운명이 IMF위기를 겪으며 바뀐 것이다.특히 동부일렉트로닉스는 동부그룹과 관계없이 M&A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분류되는 등 수모를 당하고 있다.

LG그룹은 GS, LS의 그룹 분리 이후 생존 전략으로 사업구조 및 비즈니스모델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했다. 현재 LG는 ‘전자-화학-통신’의 3각 구도를 중심으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딱히 내세울 차세대 성장사업이 없는 상태다. 특히 LG가 추진했던 반도체 사업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간 빅딜 과정에서 현대(현 하이닉스반도체)에 넘겨 줘 성장사업의 기반이 흔들린 상태이다. 이 같은 절박한 상황이 LG그룹의 반도체 사업 재진출이라는 전략 시나리오를 만들게 했다.

IT 진출 노린 M&A설

LG는 반도체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LCD와 함께 반도체 사업을 전개, 글로벌 IT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노리려는 것. 이 때문에 동부일렉트로닉스와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인수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이 정보통신부 장관과 SK 최태원 회장, KT 남중수 사장 등을 잇따라 만나면서 통신사업을 재정비했다. 이때부터 재계에선 LG가 반도체 업계에 진출하기 위한 사전포석을 하고 있다는 의혹들이 일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설이 나돌 정도였다. 극비문서의 내용 중에도 골드만삭스의 참여를 통해 LG가 반도체 업계의 진출을 꾀한 흔적이 나타난다.

골드만삭스, 동부에 ‘제안’

골드만삭스가 동부일렉트로닉스 M&A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골드만삭스는 동부에 M&A 매각 주간사로 참여해 성공적인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제안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동부그룹의 한 관계자는 “골드만삭스의 제안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한마디로 거절했다. 반도체는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이다. 그것을 팔라고 하는 것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의도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골드만삭스가 동부에 대해 자세히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고, 엠코코리아의 지분 5.4%를 향후 동부일렉트로닉스 M&A에 사용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싼 값 인수 시나리오도

일부에선 동부일렉트로닉스 M&A설의 진원지로 LG그룹을 지목하고 있다. LG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빅딜’을 통해 반도체사업을 잃는 뼈아픔을 겪은 터라 재진출의 명분 축적과 함께 하이닉스 몸값 거품이 빠질 때까지 외면하며 버티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LG측은 △하이닉스를 인수할 만한 국내기업이 LG외에는 없다는 점 △이로 인해 정부와 채권단이 결국 LG가 원하는 조건을 대폭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시간이 흐를수록 강성 노조(하이닉스 반도체) 등 네거티브 요인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LG그룹은 외부적으로는 하이닉스 가격이 너무 높아 인수 메리트가 크지 않고 하이닉스보다 비메모리 반도체분야인 동부일렉트로닉스가 적합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메모리 사업 쪽은 삼성전자, 인텔 등 막강한 기업이 버티고 있어 부담스럽다는 것. 반면 수탁가공업체인 동부의 경우 LG가 당장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매력으로 들었다. 이에 당시 동부그룹에서도 뒷받침하는 자료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는 ‘한국반도체 에이직(비메모리)산업에 대한 발전방향’이란 문건을 통해 LG와의 관계 개선, 반도체 구조조정 등에 대한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문건에는 LG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비메모리 산업에 대해 열거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동부일렉트로닉스 인수가 적합한 것으로 분석됐다.

적자 생존 원칙이 ‘변수’

동부그룹 측은 “LG가 인수의지를 갖고 있더라도 우리가 팔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또 “최고경영자가 반도체사업에 강한 의지를 갖고 그룹의 성장산업으로 키우고 있는 마당에 매각설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고 강인하게 부인했다. LG그룹 관계자도 “이런 문건과 제보들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대응할 가치도 없는 문건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양 사가 부인하는데도 불구하고 동부가 M&A에 있어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동부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줄곧 적자를 기록해 어려움을 겪었다. 차입금도 1조원이 넘었으며, 지난해 3,652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3,197억원의 적자를 냈다. 해마다 200~300억원의 이자를 물고 있는 셈.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옛말처럼 누적된 적자가 그룹 전체 경영을 위기 속으로 빠트릴 수 있다는 우려감마저 일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올초 동부 김준기 회장은 “반도체에서 성공신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사명을 동부아남반도체에서 동부일렉트로닉스로 변경하며 제2 창업을 선언했다. 특히 그룹 총수인 김준기 회장도 증자 시 발생한 실권주 중 200억 원 규모를 개인적으로 취득했다. 김 회장과 일가 지분이 확대된 것도 반도체사업을 그룹 핵심 주력 사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투자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 동부일렉트로닉스의 매각설이 흘러나오자 김준기 회장이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는 올 상반기에 8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7만장까지 증설할 계획이지만 세계적 파운드리(반도체수탁가공)업체인 대만의 TSMC와 UMC는 30~40만장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시설투자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동부 자체로의 생존력이 약해졌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어서 LG의 인수설은 매번 언급되는 실정이다.

이범희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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