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중앙일간지는 지난 2월 16일자 ‘국민은행 자산 쪼그라들고… 무리한 M&A 추진’이란 제하의 기사를 통해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의 ‘말 바꾸기’행태를 비난했다.강 행장은 지난해 10월 “국민은행은 스스로의 덩치를 관리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수·합병 등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공언한 뒤 불과 보름 뒤엔 “외환은행에 관심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때부터 외환은행 인수를 둘러싼 경쟁구도가 하나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의 양파전 구도로 잡혀 인수 열기가 고조됐고 외환은행 주가도 치솟기 시작했다.
또한 지난 9일 강 행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외환은행의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해 개발도상국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인수 이후 은행의 전략 구상까지 내비치며 강한 인수의사를 피력했다.론스타의 비밀유지협약서(CA)제출 요구에 하나은행이 거부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은행이 먼저 협약서를 제출하고 인수전에 가세했다.국민은행 가세는 주가에 반영되어 외환은행 주가가 치솟게 되자 하나은행은 강 행장에게 “매각 참여를 함께 연기하자”고 제안했으나 강 행장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신문은 한 증권사의 은행 애널리스트 말을 빌려 “강 행장이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며 “서로 못 믿으니까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고, 그 결과 외환은행의 몸값만 올려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행장의 ‘외환은행 인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외환은행 주가가 뛰어오르는 현상이 빚어졌다는 것. 작년 11월 1만2,000원대이던 외환은행 주가가 강 행장 발언(11월16일) 이후 1만3,700원까지 올랐고, 지난 9일 발언 직후엔 1만4,000원에서 1만4,750원으로 뛰었다.
히든카드 노출 불구 인수 서둘러
인수합병(M&A)은 쥐도 새도 모르게 비밀리 속전속결 진행하는게 원칙이다.강정원 행장은 서울은행장 재직 당시 하나은행과의 인수·합병 협상을 지휘해 누구보다 M&A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이 같은 M&A 속성을 잘 알고 있는 강 행장이 자기 카드를 노출시키면서 외환은행 인수를 서두르는 이유는 “외환은행 M&A를 통해 국민은행 내부 문제를 외부로 돌리려는 속셈”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지난해 ‘강정원 행장 1년을 돌아본다’는 성명서를 통해 강 행장의 경영문제점, 리더십 부재, 임원 친정 체제 후 관료화 등의 문제를 비토했다. 지난 2004년 11월 강정원 행장 취임 후 국민은행의 자산은 2004년 말 200조원에서 2005년 말 197조원으로 감소했다. 다른 시중은행들이 10% 이상 자산증가율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국민은행은 2조원대의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냈다고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회계처리 방법 변경 및 PEF청산에서 발생한 일회성 영업외 이익에 따라 발생한 착시 효과라는 것.직원 1인당 순이익은 6대 시중은행 중 꼴찌인데다, 은행의 영업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충당금적립전 영업이익(이자수익+비이자수익-판매관리비)은 4.4조원으로 2004년 5.0조원에 비해 11.8%나 감소했다.국민은행 노조는 “총자산의 시장점유율 및 절대 규모가 계속 감소되고 있다. 향후 자산 축소전략, 리스크관리 강화 정책만으로 견실한 수익 구조를 담보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국민은행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말한다.
책상경영 일주일 내내 ‘회의만’
강 행장은 취임한 뒤 조직을 개편하고 신임 부행장을 인선했다. 기존 9개 그룹을 8개 영업그룹과 7개 지원그룹으로 확대하면서, 내부 인재발탁이 아닌 시티은행과 서울은행 출신들로 채워 경영진 인사를 둘러싼 내부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국민은행 노조는 책상 경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은행 경영진은 일주일을 회의로 시작해서 회의로 끝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장 전략을 결정해야 할 경영진이 현장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각종 TFT, 위원회를 구성하여 서류더미만 늘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컨설팅에 의뢰하는 일이 많다는 것.
국민은행 노조는 강정원 행장 취임이후 국민은행은 심각한 대기업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병이란 인재 양성과 유연한 의사소통을 통한 조직혁신 보다 형식적 시스템과 권위에만 의존하는 관료주의라는 것. 이 같은 대기업병에 국민은행이 몸살을 앓고 있으며 관료주의 형식주의적 평가로 조직 관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지난 연말 노조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3,500여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직원 중 “경영진을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답한 직원은 13.2%뿐이었다. 또 “현 경영진이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데 동감한 직원도 17.0%에 그쳤다.
한마디로 강정원 행장 체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정원 행장 취임 이후 내부통제가 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05년 7월 15일 영업점 전산망 가동이 전면 중단된 사건과 2005년 7월 650억원 CD위조사고 등이다. 강정원 행장의 외환은행 인수 계획엔 국민은행 노조도 반대하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는 지난 10일 성명을 발표, “국내 대표은행인 국민은행이 경쟁 논리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해외 투기자본만 배불린다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외국자본 86%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를 반대한다”고 전재한 뒤 “장기신용은행, 동남은행, 대동은행을 사실상 무상으로 인수하며 공적자금 4조원이 넘게 투입되었다. 또한 주택은행까지 포함 4개의 은행을 합병하고 자산 200조원을 넘긴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이 스스로 ‘절름발이은행’이라고 자인할 정도이다. 거듭된 합병에도 불구하고 경영개선에 실패하여 한계에 직면에 있는 은행이 우량은행을 인수합병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라고 비난했다.
조경호 news00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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