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자율경영’ 다지기
2006년엔 대기업들의 경영권 승계가 러시를 이룬다. 기업마다 창업주에서 2세로, 2세에서 3세로 경영권의 승계가 이루어질 전망으로 재계 10위 동부그룹(김준기 회장)이 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의 시스템 경영을 경영권 승계방법으로 벤치마킹하여 화제다. 삼성의 시스템 경영은 그룹 오너가 큰 틀의 그룹 운영을 챙기고 여러 계열사들의 사업은 각각의 CEO가 책임지고 자율경영을 이끌게 한다는 것.삼성은 이병철 회장 때부터 매년 신년 초 계열사 별로 사업 계획을 보고하고, 오너가 승인하면 계열사 사장이 1년간 자율 경영을 하게 된다. 이 같은 경영 시스템은 창업주 이병철-2세 이건희-3세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에도 기업의 큰 틀이 깨지지 않고 성공을 거두었다.동부그룹 김준기 회장도 외아들 김남호(31)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삼성식 시스템 경영을 도입했다. 그리고 동부그룹 내에서 시스템경영이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삼성에서 시스템 경영을 경험한 삼성출신 CEO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여러 계열사 최고경영인(CEO)을 하다보니 그것처럼 힘든 일이 없더라. 아들이 굳이 CEO를 원한다면 순수 지주회사 CEO를 시킬 생각”이라고 사석에서 밝힌바 있다는 것.이미 동부그룹의 경영권 방향은 정해졌다. 순수 지주회사를 통해 김남호가 경영권을 승계하고, 경영은 계열사마다 시스템 경영을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재 동부그룹엔 순수 지주회사가 없다. 김준기 회장이 사석에서 말한 순수 지주회사를 만들기 위해선 (주)동부가 그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크다. 동부는 타계열사 지분이 없어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비춰볼 때 동부가 타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여 지주회사가 된 뒤, 김준기 회장의 아들인 남호가 (주)동부의 CEO로서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김남호는 동부그룹내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룹 핵심 계열사인 동부화재(14.06%)와 동부증권(6.84%), 동부제강(7.35%), 동부정밀화학(21.14%)의 최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김남호는 경기고와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을 나와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2년간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근무한 바 있다. 올해 김남호는 뉴욕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을 계획이다.김준기 회장은 아들의 성공적인 경영승계를 위해 삼성그룹의 자율경영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삼성출신 외부인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삼성출신 CEO및 임원 40%차지 … 삼성인가 착각
현재 그룹 전체 임원 3분의 1 이상을 삼성그룹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지난해 12월 19일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인사팀장 출신으로 CJ홈쇼핑 대표이사를 지낸 조영철(59)씨를 ㈜동부 사장으로 영입했다.조영철 사장을 비롯해 동부그룹의 삼성 출신 CEO는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삼성SDS 사장 출신), 임동일 동부건설 부회장(삼성항공 사장 출신),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연구소장 출신), 이명환 ㈜동부 겸 동부정보기술 부회장(삼성전자 종합기획조정실장, 삼성SDS 사장 출신),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삼성화재 부사장 출신)등이다.동부그룹 주력 10개 계열사의 부회장 및 사장으로 포진하고 있고, 상무·부사장급 200여명 중 60여명이 잠시라도 삼성에 몸을 담았던 인사들이다.
요즘 동부그룹은 한마디로 삼성그룹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삼성 출신들이 대거 영입되어 있다.동부그룹이 유독 삼성 출신 임원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삼성 배우기’가 매우 적극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김준기 회장은 세계적인 글로벌 그룹 삼성에서 검증된 인물들이야말로 동부그룹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또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오너 경영권이 탄탄한 반석위에 올라있는 정상의 기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이에 대해 동부그룹 관계자는 “사업 분야가 삼성과 유사한 데다 삼성 측의 인재풀이 넓어서 생긴 일이다. 특별히 삼성 출신 영입에 적극적이라기보다는 시스템 경영을 경험해 본 우수 인재가 삼성 출신이 많다 보니 영입이 늘어나는 것”이며 “자율경영이 성공하려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경영인 발굴이 필수적이란 생각에서 글로벌 그룹 삼성에서 검증된 인물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그룹의 이 같은 삼성 벤치마킹에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동부그룹은 IMF이후 매년 구조 조정을 단행하여 직원들을 명퇴시켜 나갔다. 동부그룹 직원들이 나간 그 자리에 삼성출신 임원들이 앉았다. 동부그룹 출신의 한 임원은 “삼성은 일류기업을 지향하는 특유의 기업문화가 있다. 그런 기업문화가 오늘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때문에 한번 삼성맨은 영원한 삼성맨이라는 말도 있다. 삼성맨이 동부그룹에 왔다고 동부맨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 뒤 “동부그룹이 시스템 경영을 성공시키려면 동부문화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고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동부의 삼성 따라 하기가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조경호 news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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