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일각에선 내년이면 정용진 부사장의 그룹 지배가 이명희 회장에 버금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은 올해 들어 중국어 배우기에 하염없다. 지난 3월 중국 이마트 3호점 개점식에도 직접 참석하는 등 중국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어 의사소통정도의 중국어 능력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원래 일본에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일본어도 꽤 능통한 정 부사장이어서 중국어도 쉽게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사업 ‘선봉’맡아
정 부사장이 이처럼 열심히 중국어 배우기에 나선 것은 사실 경영권 승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신세계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속해있는 부서는 경영지원실이지만 실제론 이마트와 신세계 백화점을 번갈아가며 경영감각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정석이다. 때문에 향후 그룹의 경영권 승계시 중국사업의 선봉을 맡아야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한 입장에서 중국에 대한 공부는 정 부사장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경영공부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중국사업에 대한 진두지휘가 경영권 승계에 있어서 경영능력을 검증하는 시험무대라면 지분매입은 실질적인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는 승계절차라는 데 재계이목이 쏠려있다.
정 부사장은 작정이나 한 듯이 지난 9월 들어 12일부터 열흘 동안 7회에 걸쳐 신세계 보통주 3만 7,600주를 장내에서 사들이면서 총 140억원을 쏟아 부었다. 이 기간 주가가 39만 원대를 유지한 것으로 계산한 수치다. 이로써 정 부사장의 신세계 지분은 4.8%로 늘어났다. 이명희 회장의 15.3%, 부친인 정재은 명예회장의 7.8%에 이어 3대 주주로 등극한 것이다. 정 부사장이 신세계의 주식을 사 모은 이유는 광주신세계백화점을 제외한 나머지 14개 계열사가 신세계를 통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도표1참조) 정 부사장은 광주신세계 백화점의 최대지분(52.08%)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세계의 지분을 넓혀나가면 그룹을 승계하는 것이 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불과 0.2%의 주식을 사들였는데도 정 부사장은 140억원이 넘는 현금을 사용해야만 했다.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사들인 신세계 주식을 현금으로 환산하면 어림잡아도 500억 원 이상이라는 계산이 쉽게 나온다. 따라서 모친인 이명희 회장의 수준으로 지분을 매입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고 이 회장이 지분을 외아들인 정 부사장에게 상속할 경우 증여세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따라서 증여세를 내는 것보다는 장내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이전할 것이라는 것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정 부사장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는 신세계를 제외하고 광주신세계, 신세계건설, 신세계아이앤씨,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총 4곳이다. 바로 이들을 신세계 지분을 매집할 정 부사장의 실탄들로 보고 있다. 실제로 올해 광주신세계를 통해서 1,000억원이 넘은 주식평가이익을 내면서 이 같은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화점은 지방에 점포를 낼 때 ‘지점’ 형태로 낸다. 광주신세계가 신세계백화점의 ‘광주점’이었다면 거기서 벌어들이는 돈은 고스란히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독점적 지위 활용 지배력 확대
그러나 광주신세계는 신세계와는 별도 법인이어서 광주신세계의 이익이 고스란히 대주주인 정 부사장 개인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 돈이 결국 신세계 경영권 승계자금으로 쓰일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의 교묘한 그룹지배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쯤 되면 재벌그룹 오너로서의 우월적·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부를 챙기고 지배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도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조선호텔에 근무하고 있지만 조선호텔의 지분은 한주도 갖고 있지 않는 정 상무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매우 윤리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 상무는 무슨 연유인지 지난 5월 데이엔데이의 지분을 40%나 사들이면서 조선호텔에 이어 2대주주로 등극했다. 데이앤데이는 올해 조선호텔의 베이커리 사업부문만을 따로 독립시켜 만든 법인. 조선호텔의 사업부문에서 가장 알짜배기라는 것이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결국 정 상무에게는 조선호텔 및 이와 연관된 사업부문에 대한 재산 분할이 함께 시작됐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이규성 bob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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