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업체의 전쟁은 그동안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롯데와 신세계 오너 일가족들이 연이어 언론홍보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점에서도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영원한 맞수’ 롯데와 신세계 중 누가 명동의 승리자가 될까. 롯데백화점은 명품관 ‘롯데 애비뉴엘’을 런칭하면서 유통가에서는 처음으로 ‘모녀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번 오픈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동딸인 신영자 롯데백화점 부사장과 외손녀인 장선윤 롯데 애비뉴엘 이사. 겉모습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성격만큼은 똑 닮은 두 모녀다. 이에 맞서 신세계백화점은 두 ‘모자’가 나섰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장남 정용진 신세계백화점 부사장이다. 우선 객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볼 때 롯데가 신세계보다 좀 더 유리해 보인다. 롯데백화점의 소공동 ‘롯데타운’의 전체 규모는 본점 1만6,800평과 애비뉴엘 5,200평, 영타운 3,000평 등 총 2만5,000평 가량. 반면 신세계는 본점 신관과 구관을 합쳐 규모가 1만7,000평 정도다. 백화점 면적만으로 보면 롯데가 신세계보다 무려 8,000여평이나 넓다. 이곳에 입점한 상점 수와 고객들의 주차가능 차량 대수도 롯데가 신세계를 앞선다. 롯데에는 현재 의류, 화장품, 스포츠용품, 식료품 등을 합쳐 1,200여개의 브랜드가 입점해있는 반면, 신세계에는 불과 1,000여개의 브랜드가 들어가 있다. 백화점에 주차할 수 있는 차량 대수도 롯데는 2,500여대, 신세계는 1,500여대로 롯데가 앞선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규모나 경영 노하우 등에 있어서 롯데가 향후에도 우월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세계는 이런 객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전략에 있어서는 롯데보다 한 수 위라고 자부하는 분위기다.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본점 신관이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4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객관적인 수치는 롯데에 밀리지만, 핵심 고객인 여성들을 공략하는 등 신세계의 마케팅 전략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객관적인 수치에서 앞서는 롯데와 이를 마케팅 기법으로 극복하려는 신세계간에 한 치의 양보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이런 신경전은 롯데家와 신세계家에서도 종종 엿볼 수 있다. 경쟁에 먼저 불을 붙인 곳은 신세계측이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본점 개점을 석 달 앞둔 시점에서, 이례적으로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갖고 회사 사보에 선친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에 대한 가슴시린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신세계측은 이 회장이 지난 5월 어버이날을 맞아 선친에 대해 애틋한 ‘회고’를 한 것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그 답지 않은’ 행동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신세계 본점 개점을 앞두고 자연스레 관심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회장은 롯데가 명품관을 오픈하자마자 한 걸음에 이곳을 방문, 매장 곳곳을 꼼꼼히 살펴봤을 정도로 경쟁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 회장이 이렇게 나섰다면, 롯데백화점의 신영자 부사장은 이번에 백화점을 오픈하면서 외부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의 모습이 외부에 포착된 것은 롯데 애비뉴엘과는 상관이 없는 곳에서였다. 신 부사장은 지난 5월 신격호 그룹 회장이 매년 주최하는 고향 행사(경남 울산시 울진군)에 함께 참석한 것이 전부였다. 신 부사장이 롯데 애비뉴엘의 탄생 과정에 모두 관여했으면서도 이토록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차녀 장선윤 이사 덕분이었다.
장 이사는 재벌가 3세로서는 드물게 최근 들어서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인물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 다섯인 장 이사는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지난 97년 롯데에 입사했다. 장 이사는 지난 7년 여 기간 동안 백화점 명품 분야를 담당한 터여서, 이번에 명품관 개점도 직접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장 이사는 요즘 여성답게 당찬 재벌가 손녀로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오픈한 신세계 본점 신관을 둘러본 뒤, “별로 볼 것이 없다”며 일침을 놓기도 했을 정도. 매사에 일을 처리할 때 꼼꼼하고, 이른 출근,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단다. 롯데 관계자는 “장 이사가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하는데다, 성격이 화통하고 털털해 직원들이 오히려 놀랄 정도”라고 말한다.
반면 신세계에서는 정용진 부사장이 3세로서의 자리매김을 톡톡히 해나가는 분위기다. 정 부사장은 지난 8월, 신세계 본점 개점 행사에서 출타 중인 어머니 이 회장을 대신해 외부 손님을 일일이 맞이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 자리에서 평소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기라고 하듯 “아직은 입점 브랜드 숫자가 적어 미흡하지만 앞으로 잘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식품 매장을 경쟁 백화점과 차별화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을 정도. 업계에서는 이번 본점 개점을 계기로 정 부사장의 입지가 좀 더 확대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위기다. 신세계의 한 관계자는 “신세계 강남점 식품 매장의 경우도 정 부사장이 각별히 관심을 쏟아 좋게 평가받고 있다”며 “이번 본점에서는 더욱 많은 부분에 (정 부사장이) 관여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최대 상권 ‘명동가’를 둘러싼 두 유통재벌의 전쟁은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혜연 ch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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