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위원회를 비롯한 대남사업 기관들이 일제히 대화를 기피하는 등 현대를 대놓고 홀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겉으로 드러난 북한의 입장은 단순하다. 그동안 대북사업을 맡았던 김윤규 부회장의 후퇴에 대한 강력한 불만의 표시라는 것이다. 일각에서 김윤규 부회장의 부활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북한은 지난 3일 현대아산 김정만 전무와 육재희 상무 등 2명을 개성으로 불러들였다. 이 자리는 한마디로 일방적인 통고를 내리는 험악한 자리였다고 한다. 당시 북측은 “김윤규 부회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개성은 물론이고 백두산과 금강산 관광 등 현대의 대북 경협사업에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윤규 살리기는 핑계?
이에 대해 현대아산측은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이미 김정일 위원장이 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고 생각한 끝에 발표한 ‘내침’이었는데 예상치 않게 북한측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내친 김 부회장을 다시 불러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게 현대아산측의 생각이다. 특히 현대아산의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일련의 행동이 꼭 김 부회장의 일선후퇴와 관련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속내를 좀더 깊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관계자는 표면적으로 김 부회장의 퇴진에 무게중심을 두고 대북사업에 ‘딴지’를 걸고 있지만 결국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북한측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퇴진을 계기로 좀더 많은 것을 현대아산측 혹은 다른 어떤 기업으로부터 얻어내려는 제스처로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정은 ‘대타’찾기인가
그렇다면 현정은 회장 흔들기를 통해 북한이 노리는 것은 뭘까. 우선 대북사업 창구의 단일화에 따른 이익분배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대북사업 특히 관광사업은 현대아산이 독점권을 갖고 진행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북한측에서는 관련사업에 대한 수익 문제를 놓고 테이블에 현대아산 관계자만 앉힐 수밖에 없다. 경쟁을 통한 보다 높은 수익은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북한측은 김윤규 카드를 끄집어냄으로써 현대아산측으로부터 좀더 많은 떡고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초창기와 달리 현대의 대북 사업은 어느 정도 안정성이 담보된 상태라 현대아산을 제외하고도 여러 기업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어 북한측이 이번 사건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종의 다목적 포석인 셈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북한은 다른 기업과 손잡든지 아니면 현대아산측에서 좀더 많은 이권을 받든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와도 이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김윤규 카드는 몇주 정도 더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아산을 맡아 대북사업의 홀로서기에 힘썼던 현정은 회장이 “자신의 경영수완을 보여줄 시간이 됐다”는 데에 업계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규성 bob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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