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은 “박용오 회장이 최근 그룹의 회장직 이양에 강하게 반발하며 두산산업개발의 계열 분리를 주장했다”며 “이는 초대회장인 고 박두병 회장이 남긴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이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두산은 창업 이후 지난 109년 동안 임직원들에게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퇴출시킨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 그 당사자가 회장이더라도 그 원칙은 준수돼야 한다는 점에서 박용오 회장 퇴출을 결정했다”는것. 두산측은 “박용오 회장은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회장직 이양을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협박을 통해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려하고 있다”며 “박용오 회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번 일이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박용곤 명예회장을 사주하여 벌이고 있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등 불순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룹의 결정에 따라 박용오 회장은 가문에서 퇴출되는 한편 현재 맡고 있는 ㈜두산 명예회장직에서도 물러나게 될 전망이다. 박용오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율은 ㈜두산 1.8%, 두산산업개발 0.7% 등으로 형제들 가운데 가장 낮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용오 회장은 큰아들의 개인사업을 돕는 과정에서 많은 지분을 매각해 두산산업개발 지분율이 0.7%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가 두산산업개발을 자신의 가족 소유의 이름으로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그룹 회장 이양은 올해 초부터 가족간에 논의가 되던 사안이었다”며 “모든 결정은 전적으로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판단과 결정에 의한 것으로 다른 모든 가족들은 이러한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 7월18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고, 그룹 회장이었던 박용오 회장을 ㈜두산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룹비자금 투서사건으로 확대되면서 두 그룹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도 치명타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그룹비자금 문제가 불거질 경우 자칫 두산그룹 수준에 머물지 않고 다른 그룹으로도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이다.검찰에 접수된 투서 내용의 핵심은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일가가 500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수백억원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내용이다. 이 투서를 접수한 인물은 박용성 회장에 의해 밀려난 박용오 전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손모씨인 것으로 드러나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은 검찰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일단 두산그룹 관련 진정서가 들어왔지만 어떤 개인이 회장 등에 대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진정서는 비일비재하다. 사안을 검토한 뒤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부분은 진정서 내용. 현재 알려진 것은 박용성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일가가 두산그룹 용역업체와 위장계열사를 통해 500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해외에 계열사를 설립하는 방법으로 100억여원 가까운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그룹 형제간 분쟁의 발단은 박두병 전 회장의 2세들 중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 등이 둘째인 박용오 회장에게 그룹회장직을 박용성 회장(삼남)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면서부터였다.박용오 회장은 이같은 큰 형의 요구에 대해 “두산산업개발을 나에게 넘겨달라”고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불응하자 “두산그룹 비자금 내역”을 담은 내용을 검찰에 투서했다.
이같은 사태가 벌어지면서 두산그룹은 그야말로 초상집이다. 한편 두산그룹 안팎에서는 박용오-용성 형제간의 이번 분쟁은 맏 형인 박용곤 그룹 명예회장 집안으로 4세경영권을 이양하는 작업과정에 형제간의 견해가 어긋나면서 발생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실 지난 2000년 이후 두산그룹은 박용곤 회장의 장남이자 두산가의 장손인 박정원 (주)두산상사 BG사장 체제를 준비해왔다. 그러나 박용오 회장측은 계열사 중 두산산업개발을 떼어내 계열분리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런 의도를 알아차린 박용곤 회장측이 박정원 사장을 두산산업개발의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박용오 회장의 계열분리 의도를 사전봉쇄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졌다는 분석이다.두산가의 때아닌 경영권 분쟁으로 불거진 재벌의 비자금문제가 향후 어느쪽으로 불똥을 튀길지 재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 고 박두병회장 “‘인화’ 가풍하에 포목점을 두산그룹으로 일궈내…”
- 정략결혼 배제 “대체적으로 평범한 혼사치러…”
창업 109년 동안 지속된 두산가의 돈독한 ‘우애 경영’은 이번 박용오 회장의 퇴출로 종지부를 찍을 전망이다. 어느 재벌가보다 형제가 많아 ‘인화’를 강조한 가풍 탓에 형제간 분쟁이 없었던 두산그룹의 초석을 다진 사람은 고 박두병회장이다. 고 박 회장은 부친 박승직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포목점을 두산산업으로 승격시키고 동양맥주를 비롯 동산토건, 한양식품(현 두산식품), 합동통신사(언론통폐합때 연합통신으로 흡수), 한국병유리(현 두산유리) 등을 잇따라 설립해 그룹의 틀을 갖췄다.창업주 박승직씨는 1896년 포목점을 시작으로 40대 초반에 장안을 주름잡는 거상으로 부상, 왕실의 신임을 받아 정3품으로 승서되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주식회사(1905)와 공익사(1907)를 설립하고 화장품의 효시인 ‘박가분’을 탄생시킨 그는 일제시대 쇼와기린 맥주의 주식 200주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고 박회장이 동양맥주를 설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부친의 사업을 계승 발전시킨 고 박회장은 장남인 용곤씨 대신 정수창씨를 동양맥주 사장에 앉히는 ‘전문경영인제’를 도입해 한국기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이한 것은 박두병 일가의 혼사방식이다. 재벌가들이 정재계의 인맥과 얽히고 설킨 결혼을 하는 것과 달리 고 박회장은 자녀혼사에 정략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치와 가까이 하지말라”는 선친의 유훈에 따라 정관계 사돈을 피하려 했다. 6남 1녀를 둔 고 박회장은 증권협회회장인 강성진씨의 장녀와 결혼한 5남 용만씨를 제외하면 대재벌의 수준에서 대체로 평범한 혼사를 치렀으며, 그것은 용곤씨의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형제간 분쟁사례두산그룹 3세 형제들간의 재산분쟁이 터지면서 새삼 재벌가 형제들의 재산분쟁에 대해 관심이 높다. ‘돈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다’는 옛 말처럼 재벌가에선 재산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이 끊이지 않아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00년 벌어진 현대가의 세칭 ‘왕자의 난’. 경영권을 둘러싼 몽구와 몽헌 두 형제의 싸움은 98년 몽헌 회장이 공동회장으로 올라서면서부터 본격화됐다. 2000년 3월 14일, MK가 MH의 최측근 심복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시키는 보복성 내정인사를 발단으로 일명 ‘왕자의 난’이 시작되었다. 삼성그룹에서도 오래전 형제간 전쟁이 있었다. 그룹의 장자지만 동생 이건희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줘야 했던 이맹희씨는 단연 비운의 2인자로 꼽힌다. 초기에 그는 삼성가의 장자답게 대권가도를 달렸으나 66년 터진 이른바 ‘한비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기 시작, 71년 삼성물산 부사장을 끝으로 삼성그룹과 인연이 멀어졌다.
그 이후 지속적인 경영 복귀 노력이 있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60,70년대 간간이 롯데가(家) 형제들간의 불화가 세간의 관심으로 회자되기도 했으나 결정적인 사건은 96년 롯데그룹 부회장이던 막내 준호씨와 신격호 회장 사이에 있었던 재산다툼이다. 준호씨 명의로 돼 있던 땅을 회사 명의로 바꾸려고 하자 준호씨가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으로, 양평동 부지 3,600평 등 전국 일곱 군데 37만여평의 땅 소유권을 둘러싼 두 형제간 법정싸움이 시작된 것. 결과는 준호씨의 완패. 신회장은 소송을 제기한 7건의 땅 중 경남 김해시 소재 임야 11만여평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고 준호씨는 나머지 땅에 대해서는 형의 땅임을 인정해 4개월간에 걸친 ‘형제간 땅싸움’이 일단락됐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빙그레 김호연 회장도 한때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다. 92년 고 김종희 회장이 유언장 없이 작고하자 당시 재계 최연소인 29세로 김승연 회장이 대권을 승계했다.
하지만 호연씨는 “형이 자의적으로 재산을 가로챘다”며 그룹 지분을 요구, 형제간 31차례나 재판을 진행하며 대결한 바 있다. 지금은 몰락한 재벌 동아건설의 최원석 회장과 동생 원영씨도 한때 재산을 둘러싼 법정 다툼을 벌였다. 학교 법인 공산학원을 둘러싸고 형제의 모친인 임춘자씨가 최원석 회장을 고발한 것이 원인이 된 이 사건을 두고 최 회장은 당시 원영씨가 그 배후라며 비난했다. 결국 97년 2월 두 형제가 화해했으나, 이미 동아건설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연탄재벌’로 잘 알려진 대성가 삼형제도 3년간이나 경영권분쟁을 끌어왔다. 창업주인 김수근 전 명예회장이 타계하자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서 보유중인 두 도시가스회사의 주식을 시가의 2∼3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영민·영훈 회장은 합의 각서대로 매매시점의 종가에 팔아야 한다고 맞서면서 법정 다툼까지 치달았다.
또 막내딸인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사장과 큰 오빠인 김영대 회장간에도 가죽 브랜드인 MCM사업관리권을 둘러싸고 법정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펭귄’ 브랜드로 잘 알려진 샘표역시 98년 8월말에 열린 정기주총에서 서울 창동부지 매각문제를 놓고 형제가 경영권 싸움을 벌여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동생의 지분매각으로 일단락된 바 있다. 중소기업 신라교역의 실질적 지배주주로 형제간인 박성형 명예회장(76)과 박준형 회장(69)은 지난 2000년부터 신라교역 경영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여왔다. 당시 박 명예회장은 동생 측이 사전 동의없이 자신의 신라교역 260만주를 가져갔다며 박회장과 그의 아들 박성진(32)씨를 상대로 예탁증권공유지분 반환소송을 제기했었다. 경영권을 둘러싼 이들 형제의 다툼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동생인 박회장이 주식을 반환함으로써 2년여만에 일단락됐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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