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오히려 나”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김수일 대표이사를 <일요서울>이 직접 만나봤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13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대표이사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국내 기업들은 ‘M&A’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스라치는 모습입니다. 자신들이 이룩한 기업을 외부 사람이 돈으로 뺏은 뒤, 단물만 빨아먹고 팔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실상은 다르죠.” 김 대표이사는 본인에게 쏟아지는 ‘적대적 M&A 성공담’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 ‘M&A’에 대한 화제로 말문을 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M&A의 효과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인수한 (주)아세아조인트의 경우, 지난 2002년 주가는 500~700원대. 하지만 그가 인수하고 석 달이 지난 지금, 주가는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7월14일 종가를 기준으로 이 회사의 주가는 1,800원. 그는 이 회사의 주가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M&A 덕분이라고 말했다. “회사 주가는 단순히 실적만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식관리, 홍보 등 모든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죠. 과거 경영진들은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했습니다. 회사의 주가를 확인할 때마다 지난 4년 동안의 피로감이 씻은 듯 사라지는 느낌이죠.”김 대표이사는 잠시 지난 4년 동안의 우여곡절이 떠오르는 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 그는 지난 3월 초, 회사 인수를 목전에 두고 검찰에 긴급 구속을 당했었다. 지난 3월, 정기주총을 불과 3일 앞 둔 새벽6시에 검찰이 그의 안양 자택을 전격 방문해 그를 구속한 것이다.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날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립니다. 그 동안 검찰로부터 단 한번도 소환명령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무작정 집에 들이닥쳐서 저에게 수갑을 채웠죠. 검찰수사관들과 함께 온 경찰차들이 요란스런 사이렌까지 울려 정말 아파트 주민 전체가 보는 앞에서 수갑을 차고 검찰로 이송됐습니다.” 검찰로 이송된 김 대표는 결국 구속적부심사에서 풀려났다.
검찰 측이 주장했던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전혀 없다는 게 심사를 맡은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김 대표는 “사법부에 끌려왔다는 당황함보다는 그동안 정기주총을 위해 위임장을 써주었던 분들과의 약속을 못 지키게 될까 봐 걱정했다. 이런 사정을 판사에게 설명하면서 위임장을 증거로 제출하자 결국 풀려났다”고 털어났다. 결국 김 대표는 지난 3월에 있었던 정기주총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돼 ㈜아세아조인트의 신임사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회사에는 여전히 구 경영진이 출근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새로 선임된 사장과 과거 사장 두 명을 모시게 된 직원들의 혼란은 그야말로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아세아조인트의 구 경영진이 주주총회 철회소송을 제기하면서 김 대표이사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사회로부터 해고를 당한 구 경영진들이 여전히 회사에서 결재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었고, 직원들은 두 명의 사장의 눈치를 보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였죠. 게다가 구 경영진이 제기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인해 제가 회사에 나올 수 없게 되면서 ㈜아세아조인트 인수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었습니다.”그러나 구 경영진의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은 결국 김 대표에게 득이 됐다.
법원에서 온 법정관리인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구 경영진에게 사내 출입금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구 경영진은 김 대표에 대한 소를 취하했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에 약간의 프리미엄을 붙여 사달라고 요청했다. 구 경영진의 이런 요구를 김 대표가 수락하면서 결국 ㈜아세아조인트는 김수일 대표체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 대표는 ㈜아세아조인트의 지분 44%를 가진 1대주주로 올라섰다. 적대적 M&A 1호로 불리는 ㈜아세아조인트는 코스닥시장에서 벤처기업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IT기업은 아니다. 베어링과 LCD관련 배관부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반면 ㈜아세아조인트를 인수한 김수일 대표는 제조와는 전혀 관련없는 증권맨 출신이다. 그는 한때 대신증권을 비롯해 하나증권 압구정점 지점장을 맡는 등 소위 ‘잘 나가는’ 증권회사 점장 출신이다. 그렇다면 증권사 직원이 왜 제조업체를 인수합병했을까. 김 대표는 “증권회사에 근무하면서 소위 대주주들의 횡포와 전횡을 몸소 체험했었다”며 “이 같은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직접 사업을 할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사업가는 어릴적 꿈”
김 대표의 일가친척들은 김 대표가 ㈜아세아조인트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말렸단다. 하지만 김 대표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형님들과 부인도 내가 제조업체를 인수하려 한다고 밝히자, 상당히 놀라며 인수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사업가가 되는 것은 어렸을 적 내 꿈이기도 했으며, 제조업이 있어야만 금융업과 같은 서비스업종도 존재한다고 설득했죠.”회사를 인수한지 이미 넉 달이 됐지만, 여전히 김 대표는 분주하다. 새로운 인수합병 대상기업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세아조인트는 업계3위의 업체로, 말 그대로 ‘중소기업’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개발과 홍보가 절실하게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규모를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이런 이유로 ㈜아세아조인트와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업체를 물색 중입니다.” M&A가 이번 한번이 아니고 계속될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사실상 제 전문분야가 제조업이 아닌 금융서비스이기 때문에 회사의 재무에 관한 사항은 내가 계속 챙기겠지만, 기술에 대한 부분은 전문경영인제 도입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적대적 M&A를 통해 제조업계의 기린아로 떠오른 김수일 ㈜아세아조인트 대표. 그의 거침없는 행보가 기대된다.
# (주)아세아조인트는 어떤회사?
1965년 ‘현대공업사’ 창업이래 40년 동안 산업과 건설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배관자제업의 강자로 군림해온 ㈜아세아조인트. ㈜아세아조인트는 4년여에 걸친 오랜 경영권 분쟁 속에서도 안정적인 재무구조와 실적을 유지하며 전년대비 9.5%가 늘어난 23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227% 늘어난 26억원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굴뚝산업의 이미지를 벗어나 반도체, LCD 등 전문부품사로의 변신을 시도 중이다.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오랜 경험과 기술력을 통해 기술혁신을 준비하고 있는 것. 특히 피팅밸브로 진출할 계획인 ㈜아세아조인트의 김 대표는 “이미 생산중인 기존 제품은 지속적인 기술개발로 단가를 낮춰 경쟁력을 지켜갈 것이며, 앞으로는 고부가가치 산업부품에 몰두할 것”이라며 “수년 내 천억원의 매출의 전문 부품회사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수일 대표이사 일문일답
- ㈜아세아조인트의 인수 방식이었던 적대적 M&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내에는 적대적M&A가 남의 기업을 빼앗는 강탈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대주주의 전횡을 막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엄연한 회사의 주인인 소액주주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소액주주들의 힘을 합쳐 경영권이 바뀌게 된다면 대주주들도 소액주주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면 적대적 M&A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소액주주들이기 때문이다.
- 금융회사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굳이 제조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꿈이 사업가였다. 증권사를 그만두기 전 증권사에서 익힌 금융노하우를 사업과 접목시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이 과정에서 ㈜아세아조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발전가능성이 충분하고, 자체 유통망을 갖춰 자금유동성도 상당하며,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확신이 들어 퇴직금과 적금 등 개인자금을 들여 ㈜아세아조인트의 주식을 매입했다.
- 아세아조인트 인수과정에 대해 말해달라.▲ 2002년 8월부터 거래소를 통해 ㈜아세아조인트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5월 회사를 방문해 경영참여를 요구했다가 묵살 당했다. 이후 2003년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선임을 재차 요구했지만, 표대결에서 밀렸다. 결국 소액주주들을 일일이 설득한 끝에 우호지분 56%를 확보해 지난해 9월 우리측의 감사를 먼저 선임했다. 그리고 올해 초 3월 내가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회사를 인수했다.
-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새로운 인수합병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 기업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유통망과 자본이 없는 중소기업을 선택해 상생의 길을 택할 것이다. 또한 자체적으로는 LCD관련 베어링에 대해 연구개발이 진행중이다. 이 같은 연구개발과 기업의 홍보, 주가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면, 아세아조인트가 업계 1위는 물론 코스닥 굴뚝주의 황제주로 군림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종열 snikers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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