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후 최고위층의 시나리오 있나
총선후 최고위층의 시나리오 있나
  • 이상봉 
  • 입력 2004-04-21 09:00
  • 승인 2004.04.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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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당시 우리당 국민참여운동본부 문성근 본부장은 <미디어 다음>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정국에 아주 민감한 발언을 했다. “개인적으로 열린우리당이 분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략)현재로는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는데, 정치 개혁이라는 대의로 뭉친 다음에는 이념 성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분리돼야 한다고 본다. (중략)현재의 열린우리당은 말 그대로 ‘잡탕’이다. 나도 말이 안 되는 사람들이 후보로 많이 뽑혔다고 생각한다. 비판받아도 마땅하다”고 공개적으로 우리당 내부 사정을 공개 비판했다. 문 전본부장 못지않게 노무현 정부 출범과 우리당 창당에 크게 관여했던 명계남씨도 서울대 강연에서 비슷한 요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 저지선을 확보해야 한다는 처지에서,… 정체성에 혼란이 있는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더군다나, 탄핵 이후에 역풍이 불어서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왕창 올라가니까 똥 묻은 사람, 뭐 흙 묻은 사람이 더 많이 몰려오죠. 열린우리당에는 보수와 진보가 섞여 있어요. 빨리 쪼개져야 됩니다. 쪼개져야 돼요”라고 노골적으로 분당을 주장했다. 이런 발언이 일부 보수 신문에서 아주 선정적인 제목으로 보도되었고, 파문이 확대되자 문성근, 명계남씨는 장문의 보도 자료를 내고 6일 탈당했다.

그 보도 자료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둘은 직업 정치인이 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2)열린우리당 내에는 보수와 중도, 진보 등 다양한 성향이 존재하고 있다. 3)서울대 강연에서 명계남은 한국 정당 정치의 현실과 정당 정치의 중장기적인 발전 방향에 관해 ‘개인적 의견’을 언급한 것뿐이다. 문성근의 발언도 이와 유사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한국 정치가 합리적 보수와 진보진영으로 분화되어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취지이다.그런데 둘의 ‘선의’를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 언론이 왜곡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즉 한나라당의 승리를 염원하는 일부 보수 언론이 우리당 내 세력들이 심각한 갈등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면서 편가르기와 이간질을 조장하고 있으며, 우리당이 총선 후 곧바로 분당되는 것처럼 비치게 하여 우리당 당원 및 지지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둘은 파문의 책임을 지고, 탈당하여 ‘개인적 차원에서’ 열린우리당 지지 시민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성근씨와 명계남씨 모두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또 우리당 창당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존재인지라 그들의 ‘분당론’은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항간에서는 이들의 발언이 거의 동시적으로 튀어나온 것으로 미루어 이미 정권 최고위층에서는 총선 이후의 상황에 대해 어떤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 게다가 개혁 성향의 유시민 의원조차 사실상 이들의 ‘분당론’을 뒷받침하는 발언을 하여 더욱 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 의원은 6일 분당론은 부인했지만 “총선 후 당내에서 노선 경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듣기에 따라서는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명계남씨나 문성근씨가 정치적 아마추어로서 ‘원론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했다면, 유시민 의원은 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볼 수 있다.

유 의원은 그 근거로 “열린우리당은 중도개혁정당이고 건전 보수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정당이다.…당내 다수파가 되기 위한 노선 경쟁, 토론, 절충, 타협을 통해서 건강한 정당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문성근씨가 언급했던 ‘잡탕론’의 보다 세련되고 정치적인 해석인 것이다. 우리당 김기만 선임부대변인은 ‘이혼하는 부부’의 예를 들어 우회적으로 착잡한 당의 심정을 표현했다. 즉 부부가 이혼할 때는 싸우고 서로 원한 관계에서 헤어지는 수도 있지만 서로 아끼고 애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해 잠시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둘의 탈당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김 부대변인 역시 이번 사태를 일부 보수 언론의 여론 몰이 탓으로 돌렸다. “조선일보의 잘못된 ‘의제 설정 메커니즘’에 우리가 또 다시 당한 것입니다. 문성근씨와 명계남씨는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당의 ‘분열’ 조짐이 확산되고, 이것이 총선 가도에서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나자 스스로 당을 떠나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당 밖에서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일개 시민’ 입장으로 순수하게 자원봉사하면 문제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는 붉은 마음 때문입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결코 분당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당 내에서 다시는 ‘분당론’을 꺼내지 않기로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습니다. 수구 언론이 ‘의도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에 다시는 놀아나지 않겠다는 것이죠. 유시민 의원이 ‘노선을 다시 얘기하겠다’는 것도 분당은 있을 수 없다는 표현입니다. 우리 당은 결코 획일적인 군사 체제가 아닙니다. 당 내에서 여러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입장의 충돌이나 민주적 토론, 경쟁은 가능한 것입니다”고 당 내부의 봉합책을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당이 서둘러 이번 ‘분당론’ 파문을 진화하려고 하지만 우리당은 언제라도 이런 ‘분당론 시비’가 재연될 수 있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서로가 크고 작은 이질적 집단이 모여 만든 정당이 ‘우리당’이기에 언제라도 이런 ‘분당론’은 제기될 수 있으며 또한 그 ‘분당론’이 현실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가능성’은 비단 우리당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우리당보다 내부 사정이 더욱 더 복잡하다.

이상봉  pneuma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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