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특정펀드 가입 종용설 파문 진상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8일 보고펀드사는 시중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투자제안서를 배포했다. 자사에서 출범하는 보고펀드에 투자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제안서에 의하면 보고펀드는 10여개의 투자대상을 정해 8%의 연 수익률을 투자자에게 우선 배분하며 향후 투자대상으로 외환은행, 우리은행, LG카드 등 10여개 후속투자 기업을 이니셜로 나열해 이들로부터 발생되는 초과수익의 20%를 펀드사가 가져간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에 금융업계는 투자제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그리고 실무진들 사이에서 나온 결론은 대부분이 ‘노(No)’였다. 겉으로 보기에 문제없는 제안서였지만, 펀드 운용사가 신생회사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금융업계 실무진들은 “국내 사모투자펀드의 전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돈을 선뜻 투자하기는 어렵다”며 “수수료 등 투자조건이 다른 PEF에 비해 나은 것도 아니고, 펀드를 운용할 실무진에 대한 파악조차 안 돼 투자하기엔 불안하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은 그러나 결국 이 펀드사에 막대한 자금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 펀드와 관련 투자를 결정하는 실무진들에게 CEO급에서 ‘보고펀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실무진에서 주저하는 보고펀드 출자를 CEO들이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금융계 인사들은 이에 대해 “보고펀드를 출범시킨 변양호 대표가 투자업계에서 거물급으로 알려져 있으며, 변 대표와 함께 펀드사를 이끌고 있는 이재우 리먼브러더스 서울대표와 신재하 모건스탠리 전무 등 화려한 ‘투자귀재’들이 이끌기 때문”이라며 “펀드 수익률은 운용 주체에 따라 변하는데 이들이라면 충분한 성공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 실무진들 사이에서는 “CEO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재경부의 숨겨진 압박”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보고펀드의 대표인 변양호씨는 재경부의 국장출신으로 한때 재경부 차기수장으로까지 꼽혔던 인물”이라며 “시중 은행장들이 그에게 신세진 것을 갚으려는 ‘보은마인드’와 재경부의 ‘제 식구 챙기기’가 완벽히 맞아 떨어지면서 보고펀드의 출자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 이들의 말을 정리하자면, 관료와 금융인으로서 유능했던 인물들이 새로운 영업인 사모펀드 사업에서 성공할지는 미지수지만 변 대표의 경우 나중에 어떤 자리에 오를지 몰라 금융기관장들이 결국 ‘긍정적 검토’란 지시를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결정을 한 금융기관들에서조차 보고펀드 출자와 관련 예민한 상태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막상 큰돈을 출자하려하니 고민되는 게 사실”이라며 “자산운용의 대안으로 사모펀드 투자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검토 중이지만 국내투자의 전례가 전혀 없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표했다. 결국 실무진뿐만 아니라 경영진급에서도 변 대표의 ‘보고펀드’ 출자에 대해 예민해져 있다고 그는 전했다.금융업계가 ‘보고펀드’로 혼선을 빚고 있는 사이 정작 보고펀드의 ‘투자자 모집’은 현재 순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변 대표는 “사모펀드임에도 언론보도가 지나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현 상황을 자세히 밝힐 수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이달 말까지 7,000억~1조원 자금모집 계획에 대해선 자신감을 내비쳤다.
#보고펀드 3인방은 누구?
보고펀드에는 한 때 국내의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인물들이 포진해있다. 변양호씨와 이재우씨, 신재하씨 등이 바로 보고펀드의 3인방.보고펀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변양호 대표는 재경부에서 금융정책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핵심요직을 두루 거친, 이른바 앞길이 보장된 잘 나가는 관료 출신. 외환위기 직후 외채협상과 뒤이은 외평채 발행 협상을 주도했으며,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및 매각 작업에도 참여한 변 대표는 지난 2001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세계 경제를 이끌 1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펀드의 공동대표인 이재우 전 리먼브러더스증권 한국대표의 이력도 화려하다. 그는 씨티은행 등 외국계 금융사에서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금융베테랑. 1998년 H&Q라는 미국계 사모펀드회사를 만들어 굿모닝신한증권(당시 쌍용증권)을 인수한 뒤 신한지주에 매각한 경험이 있는 국내 사모펀드 1세대로 알려져 있다. 신재하 보고투자자문사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인수합병(M&A) 전문가로 모건스탠리 기업금융부 한국 대표를 역임하면서 조흥은행의 신한금융으로의 매각, 외환은행의 론스타로의 매각, 대우종기의 두산중공업으로의 매각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인수합병을 성사시킨 ‘M&A업계의 대부’로 불린다.
서종열 snikers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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